리부트를 결정한 <스파이더맨>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발탁된 건 앤드류 가필드였다. 많은 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새로운 연출자로 선정된 마크 웹은 말한다. "비록 그의 이름이 아직 낯설겠지만 그의 연기를 본 사람들은 그의 탁월한 재능을 이해할 것."2007년, 가필드는 첫 주연작 <보이 A>에 출연한 뒤, <로스트 라이언즈>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며 <버라이어티>에서 ‘주목해야 할 배우 10인’으로 선정됐다. 이듬해에는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며 자신의 경력에 자랑스러운 초석을 세웠다. “내 모든 목표는 단지 내 스스로 표현하길 허락 받는 것이었다.”그는 대단한 갈망만으로 희망을 이룰 수 없음을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성과는 15살부터 무대에 오르며 연기적 가능성을 닦아온 노력의 산물이었다. 지난 해에 공개된 <소셜 네트워크>와 <네버 렛 미 고>에서 모든 건 확실해졌다. 그가 자신의 재능으로 이름을 닦아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앤드류 가필드는 빛나고 있다.
‘저 배우를 어디서 봤더라?’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비단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기시감을 부르는 대부분의 배우들은 언젠가 다시 당신의 눈에 들게 돼 있다. 샘 록웰이 바로 그런 배우다.
70년대 TV게임쇼의 유명 제작자이자 진행자였던 척 베리스가 CIA요원으로서의 살인 경력을 고백한 자서전을 영화화한 <컨페션>(2002)은 조지 클루니의 첫 연출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클루니를 비롯해서 드류 배리모어, 줄리아 로버츠와 같은 할리우드 톱배우가 등장하는 이 작품의 주연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샘 록웰의 것이었다. “영화가 완성된 건 샘 록웰이 처음부터 매우 용감한 배우였기 때문이다. 비열한 짓을 많이 한 캐릭터지만 보는 이들은 그를 지지해야만 한다. 적임자를 찾기란 어려웠고, 새미가 바로 그였다.” 클루니의 말처럼, <컨페션>은 록웰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했다. 그 신뢰란 전적으로 그의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1968년 11월 5일, 캘리포니아 댈리시티에서 배우를 지망하는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록웰은 두 살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한다. 다섯 살이 되던 해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그는 여름 동안 뉴욕에서 사는 어머니와 시간을 보냈고 그녀가 일하는 뉴욕 시내 극장가의 문화를 일찍 경험할 수 있었다. 심지어 10살의 록웰은 이스트 빌리지의 한 극장 관계자의 제안으로 오디션을 치른 뒤, 곧바로 험프리 보가트가 출연하기도 했던 즉흥 코미디 촌극 무대에 어머니와 함께 오른다.
“나는 열 살부터 극장에서 이상한 짓을 했지만 내 시간 대부분을 보통의 10대가 하는 것을 하며 보냈지. 당신도 알다시피, 나를 흑인이라 생각하며 브레이크 댄스를 연습하거나 대마초를 빨아댔으니까.” 농담 섞인 스스로의 말처럼 록웰의 십대는 파란만장했다. 어머니 덕분에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일찍 발견했지만 그녀의 자유분방한 생활양식은 록웰의 학업을 방해하고 십대를 잠식했다. 습관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여자를 찾아 파티를 전전하던 록웰의 방탕한 10대는 결국 부모님의 노력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배우로서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제작사가 만든 TV호러영화 <클라운하우스>(1989)로 데뷔한 록웰은 배우로서 미래를 걸고자 다짐했다. 뉴욕의 연기스쿨 ‘윌리엄 에스퍼 스튜디오’에서 트레이닝을 받던 록웰은 틈나는 대로 영화 오디션에 참여했고, <브룩클린으로 가는 비상구>(1989)나 <인 더 수프>(1992) 등과 같은 독립영화의 출연기회를 얻어냈으며 몇 편의 TV시리즈에 단역으로 출연하거나 극단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한편 생계 유지를 위해 레스토랑 서버나 사립탐정 조수와 같은 일을 전전하기도 한 록웰은 1994년, 맥주회사 밀러와 광고 계약을 맺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그 영화는 확실한 터닝 포인트였다.”여기서 록웰이 말하는 ‘그 영화’란 바로 톰 디칠로의 <달빛 상자>(1996)다. 존 터투로가 연기하는 이성적인 엔지니어를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괴팍한 히피 역할이란 록웰의 지난 경험을 비춰봤을 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중적인 흥행을 얻지 못했지만 인상적인 평가를 얻은 록웰은 미샤 바튼의 데뷔작 <론 독스>(1997)로 다시 한번 더 큰 주목을 얻는다. 선댄스에서 호평을 얻은 이 작품으로 록웰은 다양한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저예산의 독립영화를 통해 록웰은 경험과 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우디 알렌의 <셀러브리티>(1998)에 참여한 록웰은 이듬해 톰 행크스가 출연한 <그린 마일>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쇼생크 탈출>(1994)에 이어 다시 한번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프랭크 다라본트의 <그린 마일>에서 그는 비열한 사형수 와일드 빌을 연기한다. “나는 그를 사탄을 만난 허클베리 핀처럼 보았다”고 밝힌 록웰은 게리 올드만이나 존 말코비치를 참고하며 “구역질 나는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성아소애 변태라고 생각하는 와일드 빌”을 연기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의 연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그리고 록웰은 이를 통해 할리우드에 한 발을 걸치게 된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TV시리즈를 동명 그대로 영화화한 <갤럭시 퀘스트>(1999)와 <미녀 삼총사>(2000)에서 연이어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런 과정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샘 록웰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 <달빛 상자>였다면 그의 전환점이 된 인물은 조지 클루니일 것이다. <오션스 일레븐>(2001)의 얼간이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웰컴 투 콜린우드>(2002)에 출연한 록웰은 스티븐 소더버그와 공동기획자로 이름을 올리고 단역으로 등장하기도 한 클루니로부터 클리블랜드에 있는 어느 바에서 그의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록웰은 말했다. “그래, 좋아, 무엇이든, 어떤 것이라도 해주지. 하루라도 배우가 된다면.” 그리고 한 달 뒤, 소더버그의 ‘섹션 8’에 있는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조지가 혹시 당신이 10월에 시간이 있는지 알고 싶다더군.”록웰의 첫 단독주연 이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배역에 너무 유명한 누군가를 원치 않았다”는 클루니의 바람대로 <컨페션>의 적임자였던 록웰은 “무엇보다도 그는 그 역할에 대한 권리가 있는 배우”이기도 했다. 그리고 <컨페션>은 록웰의 권리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결과물이 됐다. <컨페션>의 트레일러를 본 리들리 스콧은 <매치스틱 맨>(2003)에 니콜라스 케이지의 상대역으로 록웰을 캐스팅했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2006)에 출연한 것도 조지 클루니를 통해 얻은 브래드 피트와의 인연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그렇게 록웰은 흔히 비주류와 주류의 진영으로 구분되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를 건넜다.
“나는 항상 조금 이상해지거나 약간 삐뚤어지는 것을 느낀다. 나만큼 괴짜인 사람도 없을 거다.”정형화되지 않는 그의 성향은 어떤 캐릭터나 장르에도 곧잘 어울리는 능력으로 승화됐다. 2007년작인 <조슈아>와 <스노우 엔젤>과 같은 스릴러에 출연한 바 있는 록웰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나 <더 문>(2009)과 같은 SF장르에도 익숙한 배우다. <컨페션>이나 <매치스틱 맨>과 같이 범죄물을 바탕으로 둔 코미디는 물론 <에브리바디스 파인>(2009)과 같은 가족드라마에서도 썩 어울리는 연기를 선보인다. 또한 “나는 끊임없이 우울한 연기적 접근을 꾀함으로써 나를 채우는 유형의 배우다.”는 스스로의 말처럼 고독하고 우울한 감수성이 짙게 드리운 록웰의 인상은 독설적인 언변으로 유머를 이끌어 내는 그의 태도와 어울리며 작품 전반에 입체적인 감상을 부여한다. 특히 근작인 <더 문>에서 광활한 우주의 달기지 속에서 홀로 생활하는 샘 벨을 연기하는 록웰의 존재감은 단 한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 정도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확실한 건 이제 록웰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연기를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는 사실이다. <아이언맨 2>(2010)와 같은 대작 블록버스터로 할리우드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는 여전히 <위닝 시즌>(2009)과 같은 독립영화로 선댄스나 시체스에서도 존재감을 자랑하는 전방위적인 배우로 거듭났다. “나는 내 스스로를 캐릭터로서 인식하는 배우다”라고 말하는 그를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가늠할 수 없기에 더욱 흥미로운, 지울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닌 배우. 그가 바로 샘 록웰이다.
안정된 삶을 뒤로 하고 불현듯 여행을 떠나버린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2010)의 리즈처럼 줄리아 로버츠는 <클로저>(2004)이후로 한동안 스크린에서 모습을 감췄다. 할리우드의 톱여배우라는 무거운 수식어를 내려놓고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자아를 돌보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된 지금도 그녀는 거창한 꿈을 키워나가는 것만큼이나 소소한 일상을 돌보는 것에 큰 가치를 느끼고 있다. “우린 얼마나 운이 좋은가. 서로를 많이 사랑함으로써 세 아이를 가질 수 있었으니.” 이처럼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이들의 삶을 돌봄으로써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배우로서 자신의 삶을 가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로버츠는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특별한 직업을 지닌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저 겸손한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 그건 그녀가 깨달은 진정한 성공이었다.
15살의 나이로 데뷔한 캐서린 헤이글은 변변치 않은 스크린 출연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기회는 찾아왔다. 그녀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TV시리즈 <로스웰>에 출연하게 된 것. 하지만 헤이글의 이력에서 결정타가 된 건 그녀를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여우조연상 후보로 올린 <그레이 아나토미>였다. “지금 나는 5년 전과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됐다고 느낀다"는 말처럼 그녀는 불과 몇 년 사이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처럼 다른 삶을 얻었다. 첫 주연작 <27번의 결혼리허설>(2008)을 통해 백치미를 발산한 그녀는 <어글리 트루스>(2009)나 <킬러스>(2010)에 거듭 출연하며 할리우드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그녀는자신의 유리구두가 깨질까 조바심내지 않는다. “당신의 세계는 변할 수 있고 삶의 모든 양상은 다르다. 그러니 더 나은 것을 위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긍정'을 신고 현실을 걸어나간다.
기회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그 기회의 뚜껑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지나쳐버리는 대부분의 사람과 달리, 어떤 이는 그 내용물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거머쥔다. <트와일라잇>시리즈로 근육질 ‘짐승남’의 매력을 전세계에 전파한 테일러 로트너는 분명 후자에 해당하는 1인이다. 하지만 “그건 <트와일라잇>이지, 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로트너는 그 대단한 관심이 온전히 자신을 증명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잘 안다. <본>시리즈의 맷 데이먼을 보며 “내가 저런 걸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며 감탄하거나 <노트북>(2004)과 같은 로맨틱한 영화에 대한 취향을 내보이기도 하는 로트너는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을 품은 원석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조지 클루니와 같은 대배우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10대 배우의 순진함을 감출 수 없지만 이는 곧 소년이 품은 야망을 드러내는 좋은 예시가 아닐까.
제이든 스미스의 유명세는 분명 윌 스미스의 아들이란 사실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출연한 <행복을 찾아서>(2006)를 통해 제이든 스미스는 혈연 관계보다 뛰어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했다. 여전히 아버지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말할 수는 없지만 스미스는 분명 아버지의 이름으로 힘입은 아이만은 아니다. <베스트 키드>(2010)는 그 확신의 새로운 근거로서 유효하다. 유명 배우의 아들에서 유망한 아역 배우로,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그렇게 시작됐다.
<원티드>(2009)를 본 소녀는 말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엄마, 나는 안젤레나 졸리와 같은 액션 키드가 될래요!” 꿈은 이루어졌다. 불과 한 달 뒤, 딸과 함께 대본을 본 어머니는 말했다. “맙소사, 클로이. 네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구나. 정확히 네가 원하던 환상적인 역할이잖니.” <킥 애스: 영웅의 탄생>(2010)의 ‘힛 걸’은 그렇게 태어났다. 클로이 모레츠는 마치 <킬 빌>(2003)과 같은 잔혹한 세계에서 귀여운 얼굴이 무색할 정도로 태연하게 칼을 휘두르고 방아쇠를 당긴다. 깜찍한 아역 여배우의 패러다임을 비웃듯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터프한 매력을 각인시켰다. 최근 <렛 미 인>(2008)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촬영을 마친 모레츠는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을 비롯해서 다양한 러브콜에 시달리는(?) 중이다. ‘핫 걸’의 질주는 이제 시작이다.
전세계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고 영상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009)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샘 워싱턴, 그는 현재 할리우드의 새로운 블루칩이다. 영국 태생이나 호주에서 성장한 워싱턴은 미술을 전공했지만 학교를 그만 두고 건설 현장에서 벽돌을 날랐다. 그러다 호주국립예술학교에 입학했다. 호주에서 제작된 영화 <탭탭탭>(2000)으로 데뷔한 뒤, 몇 편의 TV시리즈와 영화로 자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할리우드 데뷔는 쉽지 않았다. 몇 편의 할리우드 작품에서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2009년, 그 모든 것이 시작됐다. 제작부터 주목을 얻었던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2009)에 출연하며 눈길을 끈 그는 <아바타>와 <타이탄>(2010)과 같은 대작 블록버스터에서 주연을 차지했다. 호주의 별은 전세계의 별이 됐다.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배회하는 남자는 평범한 행색과 달리 눈초리가 심상찮다. 곧 한 여자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지던 남자는 곧 접근을 시도한다. 두 번에 걸친 부딪힘은 남녀를 동상이몽의 비행으로 유도하고, 두 사람의 우연적인 혹은 필연적인 인연은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 안에서 범상치 않은 관계로 발전을 거듭해나간다.
<나잇 & 데이>는 스파이물과 액션, 로맨틱 코미디 등 기존의 할리우드 오락영화들의 클리셰들로 총공세를 펼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오락물이다. 그만큼 <나잇 & 데이>는 기존의 할리우드 오락영화들의 결핍을 고스란히 떠안은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실수라기 보단 고의적인 의도에 가깝다. 공항 한가운데서 두서 없이 출발하는 오프닝 이후로 급행열차처럼 달려나가는 <나잇 & 데이>의 서사는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쾌감을 상승시키기 위해 마련됐던 수많은 오락영화들의 전략들을 밀고 나가기 위한 레일처럼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나잇 & 데이>는 지능이 떨어지는 할리우드 오락영화들의 야심에 갇힌 영화가 아니라 그 야심들로부터 형성된 어떤 전형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영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스파이물에서 시작해 로맨틱 코미디로 매듭을 짓는 <나잇 & 데이>는 시종일관 액션과 유머로 범벅이 된 혼합장르물로서 스케일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오락적 묘미를 극대화시키는 볼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가운데 대단한 물량공세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나잇 & 데이>가 오락이라는 핵심적인 목표를 겨냥할 수 있는 건 영화의 모든 풍경을 배회하는 두 인물로부터 비롯된다. <나잇 & 데이>의 스케일이 영화의 충분조건에 해당된다면 로이 밀러(톰 크루즈)와 준 헤이븐스(카메론 디아즈)는 이 영화의 가능성을 책임지는 필요조건 그 자체다.
<나잇 & 데이>의 로이 밀러(톰 크루즈)는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과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로부터 고독함과 진지함을 온전히 삭제한 뒤, 그 빈 공간에 낙관과 긍정을 채워넣은 듯한 캐릭터다. 그리고 그 상대역인 준 헤이븐스(카메론 디아즈)는 마치 기억 상실에 걸려 자신의 능력을 잊어버린 <미녀 삼총사>의 나탈리 쿡처럼 보인다. 두 캐릭터는 <나잇 & 데이>의 쾌감을 발생시키는 원천이자 기폭제다. 음모의 중심에 놓인 스파이와 이에 휘말려 동행하게 된 여인은 생명을 위협하는 적들과 긴박한 추격전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감정적 교감을 이뤄나간다. 두 캐릭터가 이뤄내는 사연의 형태보다도 두 캐릭터가 사연의 형태 속에 어떻게 놓여있는가가 먼저 발견된다. 두 캐릭터는 영화의 단점을 가리는 위장막이자 장점을 부각시키는 방점이나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나잇 & 데이>를 이루는 대부분의 요소란 과거로의 회귀에 가까우며 이는 흔히 말하는 복고의 의미에 가까운 가치를 품고 있다. 사실 두 캐릭터의 만남으로부토 얻어지는 사연들의 대부분은 낭비적이거나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잇 & 데이>는 좀 더 천연덕스럽고 뻔뻔한 방식으로서 그 낭비적인 신들을 제 입맛에 맞게 버무린다. 중간중간 몽타주신을 이용해서 긴 설득이 필요할 만한 서사를 일거에 압축해버린다거나 세계 각지를 도는 로케이션은 어떤 액션들을 연출하기 좋은 병풍처럼 나열된다. 백치스럽지만 명확하고, 단순하지만 간단하다. <나잇 & 데이>는 명확하게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오락영화다. 빈 구석이 눈에 띄지만 그 빈 공간마저도 하나의 전략적인 형태를 띄고 있는 영악한 작품인 셈이다. 백치와 백치미가 다르듯, 멍청한 척하는 것도 일종의 전략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혜성처럼 등장했다. ‘맘마미아!’를 외칠 만큼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이프리드는 ‘깜짝 스타’가 아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이프리드의 현재는 스스로를 갈고 닦은 노력의 보답이다.
1985년 생인 사이프리드는 1995년, 9살의 나이에 연기에 입문했다. 자신이 거주하던 펜실베니아주 앨렌타운에 있는 시빅 극장에서 연기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11살 때 즈음, 몇몇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아역 모델로서 활동을 해나갔다. 그리고 17살까지, 모델로 활동하면서 5년에 걸쳐 꾸준하게 브로드웨이 보이스 트레이닝에게 발성 훈련을 받았다. 이는 훗날 사이프리드가 “어린 나이에 배우로서의 삶을 꿈꾸긴 했지만, 그 꿈이 실현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사이프리드는 일찍이 다양한 TV시리즈를 통해서 경력을 수집해 나갔다. 아역 시절 크레디트에 오르지 못했던 작품을 제외하면 그녀에게 공식적인 경력이라고 할만한 작품은 2000년부터 2001년까지 고정 출연했던 TV쇼 <As the world turns>였다. 2002년부터 2003년 사이에는 ABC의 <All my children>에 고정으로 출연했다. 사이프리드의 스크린 데뷔작은 그 다음 해 선보인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다. 이 작품에선 ‘플라스틱’이라 불리는 백치스러운 소녀 카렌을 연기한다. 애초에 사이프리드는 카렌의 퀸카 친구 역할로 오디션에 참여했지만 레이첼 맥아담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하지만 사이프리드를 눈 여겨본 프로듀서는 그녀에게 카렌 역을 제안했다. 데뷔작은 흥행했고,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후 그녀에게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 작품은 바로 <나인 라이브즈>(2005)였다.
<나인 라이브즈>를 연출한 로드리고 가르시아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들이다. <나인 라이브즈>는 서로 다른 아홉 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옴니버스 영화다. 아홉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로빈 라이트 펜, 글렌 클로즈, 홀리 헌터와 같은 ‘진짜’ 여배우들의 리스트만으로도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히 사이프리드에게 시시 스페이섹(<케리>의 여주인공)과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처음엔 겁을 먹었지만 더 이상 그녀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너무 환상적이었다. 그녀와 함께 작업할 수 있어 기쁘다.” 사실 <나인 라이브즈>에서 사이프리드는 단 일곱 테이크만에 촬영을 끝냈지만 분명 그녀에겐 남다른 작품이다. 로드리고는 사이프리드를 생각하며 사만다를 구상했고, 로드리고의 제안은 그녀에게 선물과도 같은 영광이었다. 로드리고는 이미 사이프리드의 재능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 앞서 2004년, 사이프리드는 UPN의 TV시리즈 <베로니카 마스>의 타이틀롤 캐릭터 오디션에 참가한다. 하지만 역할은 크리스틴 벨의 차지였다. 사이프리드는 베로니카의 ‘절친’으로 기억되는 릴리 케인을 연기한다. 일찍이 살해당한 릴리는 베로니카의 기억을 통한 플래시백 시퀀스에서만 등장했지만 첫 시즌에서 미스터리의 핵심적인 단서나 다름없는 역할이었기에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베로니카 마스>에 출연하는 사이, 사이프리드는 <하우스 M.D>나 <로 앤 오더: 성범죄 전담반> <CSI 라스베가스> 등과 같은 TV시리즈에서 게스트로 등장해 얼굴을 알렸다.
2006년은 사이프리드에게 특별한 해였다. 그 해 사이프리드는 HBO가 새롭게 기획한 TV시리즈 <빅 러브>에 출연하기로 결정한다. 일부다처제를 신봉하는 몰몬교 집안의 가풍에 저항하는 장녀 사라 역할을 맡은 사이프리드의 연기는 2006년 3월 12일 첫 방송 이후로 3시즌에 걸쳐 2009년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2009년 12월, 사이프리드는 HBO와 새롭게 거듭될 시즌에서의 출연 의사를 약속했지만 계획은 2011년까지 미뤄졌다. 당시 그녀는 <맘마미아!>(2008)의 성공 이후, 수많은 영화 제작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상태였고 스케줄의 조율이 쉽지 않았다. 지난 해 사이프리드는 <300>(2006)과 <왓치맨>(2009)을 연출한 잭 스나이더의 신작 <서커 펀치>(2011)의 히로인 역할을 맡기로 결정했지만 결국 스케줄 문제로 하차해야 했다.
대작 뮤지컬 <맘마미아!>의 영화화 관건은 두 가지였다. 무대 위의 정교한 세트를 대신할 진짜 장관과 ‘아바’의 명곡과 안무를 온 몸으로 소화할 배우들. 무엇보다도 <맘마미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모녀, 도나와 소피를 책임질 배우로 누가 지목될 것인가는 희대의 관심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도나 역의 메릴 스트립이 기대를 부추기는 ‘느낌표’였다면 소피 역의 사이프리드는 의심을 낳는 ‘물음표’였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I Have a Dream’을 완벽하게 소화한 사이프리드를 본 제작진은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스포라데스 제도를 병풍 삼아 펼쳐진 배우들의 가무는 전 세계적인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오래 전부터 갈고 닦은 목소리로 아바의 명곡을 재현한 사이프리드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은 셈이다.
<맘마미아!> 이후 최근 2년 사이, 사이프리드는 무려 네 편의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근작 <디어 존>(2010)을 비롯해, 지난 해에는 세 편의 작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내가 한 순간에 등장했다고 말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모든 작품이 동시에 공개됐기 때문일 뿐이다.” 이 모든 작업은 2~3개월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진행됐지만 대중에겐 순서를 다투듯 등장했다. 현재 사이프리드가 얼마나 ‘핫’한 배우인가를 증명하는 사례다.
아톰 에고이안의 <클로이>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그녀는 매혹적인 페로몬을 발산한다. 순수하고 발랄한 소녀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 던진다. 심지어 옷조차 벗어버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숨막히는 뒤태를 드러낸 그녀는 단호하게 결심했다. “단지 옷을 벗는 건 어렵지 않지만 베드 신만큼은 대단한 도전이었다.” 그녀는 그 도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클로이>가 리암 니슨과 줄리안 무어라는 걸출한 배우들을 출연시킨 영화임에도 온전히 사이프리드를 위한 영화처럼 보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클로이>는 사이프리드를 감싸고 있던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걷어내고 그녀에게 잠재된 성숙한 매력을 과감하게 끌어냈다.
사이프리드는 <디어 존>에서 직접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자신이 작사한 노래로 또 한번 가창력을 뽐낸다. 사실 그 연주는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사실 그 연주는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그는 내가 무언가를 연주하길 원했고, 나는 그저 내가 아는 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가사가 평소보다 더 잘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 곡을 스튜디오 녹음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부른 ‘Little House’는 사실 아일랜드의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의 미완성곡이다. “나는 실제 데미안 라이스가 사는 곳에서 지난 가을과 이번 4월에 함께 작업했다. 우리는 <디어 존>을 위한 노래를 결코 끝내지 못했지만 나는 데미안 라이스와의 작업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차기작 <레터 투 줄리엣>(2010)의 개봉을 기다리는 사이프리드는 현재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원작을 영화화 하는 <A Woman of No Importance>(2011)와 글렌 클로즈와 올랜도 블룸이 출연한 브로드웨이 연극 <The Singular Life of Albert Nobbs>를 영화화 한 로드리고의 신작 <Albert Nobbs>(2011)를 비롯해 이미 세 작품의 출연을 결정지었다. 내년부터 시작될 <빅 러브>의 새로운 시즌에도 출연을 재개한다. “지난 해에 내가 볼 수 있었던 대본의 대부분은 나쁜 것이었지만 그 중에 몇몇 괜찮은 것이 있었다면 올해에는 정말 훌륭한 몇몇 대본들 사이에 수많은 나쁜 대본들이 들어왔었다. 만약 당신이 정말 훌륭한 대본을 받았거나 그런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제법 괜찮은 위치에 서 있는 셈이다.” 스스로의 말처럼, 그녀는 지금 제법 좋은 위치에 서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의 가능성을 만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