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승패로 기록된다. 하지만 거기 사람이 있었다. 전쟁은 승패보다도 생사의 문제로 기억돼야 한다. 전쟁이라는 명분에 휘말리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너야 하는 인간들의 존재는 승패로서 기록되는 역사적 명제 아래 손쉽게 지워진다. 전쟁은 영문도 모른 채 생사의 기로로 떠밀린 인간들의 지옥도다. <고지전>은 이를 대사로서 명확하게 전달한다. “빨갱이가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거다. 그러니 살아남는 게 전쟁으로부터 진짜 이기는 길이다.” 전쟁이 승패가 아닌, 생존의 문제임을 강력하고 확실하게 피력하고 환기시킨다. 물론 이는 숱한 전쟁영화들이 다루고 언급해온 이야기다. 하지만 <고지전>은 사람 죽이는 전장의 비극을 전시하고 눈물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 지옥도 속에서 이유도 알 길 없이 서로를 죽이고 죽어나가는 이들의 참혹한 비극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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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뭐든 하나 던져주고 싶다. <혈투> 박훈정 감독

 

마치 내친 김에 달린다는 말처럼 박훈정은 시나리오 작가에서 연출자로 성큼 올라섰다. 김지운이 연출한 문제작 <악마를 보았다>와 현재 제작 중인 류승완의 차기작 <부당거래>의 원작자로서 유명세를 탄 박훈정의 <혈투>는 단순히 그 유명세의 상승곡선에 올라탄 기획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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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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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태균 출연 박희순, 고창석, 조진웅 개봉 6월 예정

 

그 사내는 절박하다. 모든 것을 잃었다. 그가 걸어온 뒷길에는 좌절의 발자국들이 길게 늘어섰고, 온 몸은 실패로 얼룩졌으며, 인생은 누더기처럼 해진 지 오래다. 한때 축구선수로서 기대를 얻던 몸이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실패의 꼬리를 달고 다니는 인생에 불과하다. 발 딛고 선 땅에서조차 밀려나듯 길을 떠나다 보니 다다른 곳은 끔찍한 내전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가난한 영혼들의 땅, 동티모르. 인저리 타임밖에 남지 않은 듯한 인생의 끝자락에서, 여전히 절망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그라운드 복판에서, 회심의 만회골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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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안에서 자신의 부인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청년의 눈에 수심이 서려 있다. 하지만 메일을 검색하던 청년의 눈이 곧 진지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핸드폰을 내려놓고 톨스토이의 ‘부활’을 집어 든다. 메일을 빼곡하게 채운 텍스트의 행간 사이에 놓인 단어들을 유심히 살피던 청년은 자신의 앞에 놓인 책과 대조한 뒤 관계가 모호한 단어들을 끄집어내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에 나열한다. 청년은 저마다 독립적인 의미의 단어들을 나열하지만 그 단어의 나열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읽어내고 있다. 그와 동떨어진 또 다른 장소, 국정원에서는 어떤 이들의 동행을 주시하는 요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국정원의 요원들은 북에서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전문암살자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선상으로 연결된 두 개의 공간에서 움직이는 서로 다른 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을 향해 수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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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명확한 제목처럼 <이태원 살인사건>1997년 이태원에서 벌어졌던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에 대한 기록에 의거한 영화다. 이 사건의 첫 번째 문제는 진범을 밝히지 못한 미제라는 것이며 두 번째 문제는 그것이 한국과 미국이라는 지정학적 영향력을 근거에 둔 음모론적 해석의 개입이 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마치 잘 빠진 장르물 제목처럼 보이는 <이태원 살인사건>의 핵심도 그 지점에 놓여있다. 영리한 서사 구조나 빠른 속도감 따위는 철저히 배제된 영화는 묵묵하게 그 사건이 한국 사회의 무엇을 건드리고 관통하는가에 치중한다. 문제의식은 좋다. 하지만 영화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지점이 애매하다. 기록적 사건을 재현하는데 있어서 <이태원 살인사건>이 동원하는 건 진실을 둘러싼 윤리적 공방이다. 스릴러적 오해를 부를만한 제목이지만 그것보단 법정드라마에 가까운 현장성을 지닌 <이태원 살인사건>은 정작 재현의 수준 이상의 무언가를 증명하지 못한다. 사건 자체가 지닌 충격이 전달될 뿐, 영화의 의도는 정작 흐릿하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수직적인 한미 관계를 어필하고, 윤리적 문제에 천착하면서 이성적 판단이 필요한 지점에선 느슨해지고 만다. 팽팽해야 할 법정신엔 두서가 없고, 좀처럼 긴박감을 얻기가 어렵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법제도의 맹점을 파고 들어야 하는 영화다. 하지만 자꾸 지루한 도덕 선생님의 훈계처럼 스스로를 치장한다. 결국 남는 건 현실에 대한 찝찝한 단상뿐이다. 그런 감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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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견딘 예술품은 보존적 가치를 발생시키고 개인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예술품에 물질적 단위의 가격을 매기게 된 건 그 소유욕 때문이다. 희귀성이 인정될수록 책정되는 화폐 단위가 올라간다. 본질적인 아름다움보다도 금전적인 저울질을 통한 소유욕이 예술을 장악한다. 예술이 금전적 가치로 규정될 때 예술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시키는 굴절된 욕망이 파생된다. 진품을 베낀 위작들이 눈먼 소유욕을 등에 업고 시장에 유통되고 진가를 해독할 수 있는 감정가의 판단이 예술적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변수는 그 모든 과정에 개입하는 사람의 속내가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붓도, 예술적 가치를 판명하는 혀도, 예술적 가치를 구입하는 돈도,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결국 사람이 변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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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 인터뷰

interview 2008. 9. 20.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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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패(소지섭)와 수타(강지환)라는 이름은 깡패와 스타에 대한 노골적인 직유지만 동시에 현실과 영화에 대한 은밀한 은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다>는 그 제목만큼이나 도발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현실을 잊게 만드는 리얼리티를 구사하려 하지만 카메라의 슛이 들어가고, 슬레이트를 내려치는 순간 현실의 탈을 쓴 프레임의 파편으로 변질된다. <영화는 영화다>는 제목 그대로 현실을 넘어설 수 없는 영화적 한계에 대한 인정, 혹은 현실이 이룰 수 없는 영화적 선언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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