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기 인터뷰

interview 2013. 7. 10. 02:55

The other side of her

그녀를 믿지 마세요

요즘 욕을 자청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욕을 해댈수록 주가가 상승하는 <SNL 코리아>의 헤로인 김슬기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장기는 욕이 아니다. 배우 김슬기의 연기가 제대로 먹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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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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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햇살을 받고 정제된 소금과 맑고 깨끗한 천연의 물, 기름진 토양 위에서 자란 콩. 깊은 맛이 우러나는 좋은 된장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재료들. 하지만 이 모든 재료들이 마련된다 하여 꼭 좋은 된장이 빚어질 수는 없는 법. 이 모든 재료를 빚어낼 손의 정성도 중요하고, 오랜 시간 제 몸에 된장을 품을 장독대가 튼실해야 하며 풍부한 햇살과 적절한 바람을 맞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춘다면 필히 깊고 풍부한 맛이 담긴 된장을 빚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모든 조건을 다 갖췄다 해도 다다를 수 없는 궁극의 맛을 선사하는 특별한 된장의 비결 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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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일개 개인이 아니라서 (개인적인 처신까지도) 국민적 동의와 수반적 회의를 거쳐야 하거든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등장하는 대사는 일면 의미심장하다. 국민의 손과 발이 되겠다던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취임사처럼 대통령은 국민을 대신해 국가를 운영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직책이자 전국민적 동의를 등에 업고 대표성의 권위를 등에 업은 권력자다. 그만큼 대통령은 어느 개인으로서의 삶을 전면에 내걸 수 없는 대의적 존재로서 의무를 지닐 때 그만큼의 권력을 함께 보장받는다. 그리고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국민적 동의를 통해 절대적 권력을 얻었다는, 그 대통령에 관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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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어쩌면 볼 수 없는 세 명의 대통령이 등장한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명백한 판타지다. 장동건과 같은 오로라적 외모를 지닌 대통령이 존재한다는 가설만으로도 이미 명백한 판타지지만 전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을 격려하는 그 세상은 이미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아닌 거다. 그렇다고 그것을 손가락질할 필요는 없다. 때로 영화란, 혹은 예술은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혹은 보고 싶어하는 것을 묘사하는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렇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우리가 꿈꿀만한 거짓을 현실처럼 위장한 영화다. 특히 올 한 해 두 명의 전임 대통령을 잃은 우리에게 뼈에 사무칠만한 감상을 부를 정도로 ‘인간적’인 대통령을 그리는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분명 우리가 보고자 하는, 혹은 봤으면 싶은 이상적인 지도자들을 나열한다. 그 판타지가 때때로 과잉적인 감정을 유발하고 지나치게 전형적인 타입의 이상을 그려나감에도 감히 그것이 잘못 됐다 말하기 힘든 건 그 때문이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서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분명 어느 정도 위안이 될만한 손길로서 기능하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다만 <굿모닝 프레지던트>장동건의 코믹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이기 이전에 장진이라는 네임밸류를 걸고 나온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일면 아쉬움이 남는다. 전형적인 예상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수순으로 나아가는 소동극의 양상은 장진 영화라고 부르기에 지나치게 평범하다. 물론 현실정치에 던지는 발언이 미묘하게 감지되는 가운데 대중적 공감대를 이룰만한 코미디 연출은 무난한 웃음을 부를만한 것이다. 그러나 재기발랄함이건, 치기어림이건, 취향적인 호불호를 감안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감각적으로 낡은 영화다. 세 대통령의 임기 중 굵직한 세 사건을 각각 나열하는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마치 인터미션이 없는 연극 세 막을 연달아보는 것과 같은 옴니버스적 장편영화다. 매 에피소드마다 나름의 클라이막스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나름의 특이성을 확보하지만 그 순간마다 과잉된 음악으로 감정적 공감대를 자극하려는 영화의 태도는 오히려 소재로부터 발생하는 기본적 흥미를 반감시킨다. ‘인간적인 대통령’이라 제시되는 세 인물의 성격 또한 지나치게 보편적이다. 주제나 소재의 압박에 작가적 취향을 양보한 인상이다. 때때로 절묘한 소동극을 자아내긴 하지만 해피엔딩을 직조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은 듯 경직된 스토리는 대통령 훈화를 듣는 것만큼이나 식상하다. 지나치게 공익적 의무에서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랄까. 무엇보다도 대중적 평준화를 지향하는 장진 영화는 호불호의 기준을 떠나 분명 심심한 일이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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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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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순차적으로 따지자면 <공공의 적 3>에 해당한다. 하지만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이 본래 타이틀 대신, ‘강철중’이란 캐릭터의 네임밸류를 앞세우고 ‘1-1’이란 번거로운 순번을 꼬리에 붙인 건 다름아닌 캐릭터의 정체성을 복구시키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이틀로 전면에 내세운 ‘강철중’은 그 앞에 ‘원조’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1-1’이라는 순번이 붙은 부제는 전작인 <공공의 적 2>를 시리즈로부터 분가시키는 동시에 <공공의 적>으로 돌아가 가문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강철중>이 ‘공공의 적 1-1’이 된 사연은 이렇다. 결국 <강철중>은 <공공의 적>이란 브랜드를 재건하는 작업이다. 무리한 확장사업으로 인해 훼손된 캐릭터의 정체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시에 <강철중>은 동어반복의 함정에서 탈피해야 한다. 가문의 정통성을 계승하되, 개별적인 존재의미를 확보하는 것은 속편이 맞이해야 할 숙명과도 같기 때문이다.

<강철중>에 주목할만한 점은 설경구의 출연, 강우석 감독의 연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강철중>에서는 장진 감독 특유의 촌철살인적인 대사들이 4열 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2바퀴만큼은 아니지만 드물지 않게 눈에 띤다. 또한 강철중과 상대하는 이원술(정재영) 역시 전작에서 등장한 악인 캐릭터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조규환(이성재)과 한상우(정준호)가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절대 악인으로써 강철중과 대척점에 놓였다면 이원술은 전자들에 비해 인간적인 냄새를 풍긴다. 물론 그는 고등학생에게 태연하게 칼을 쥐어주는 악인이긴 하지만 조직적 의리를 중시하고, 자가수성적 대범함을 갖추고 있으며, 가족적 자상함마저 갖추고 있다. 강철중을 주목하게 만들던 전작의 단선적인 악인들에 비해 이원술은 좀 더 입체적인 선을 지닌 캐릭터로 완성됐다.

동시에 <강철중>의 강철중은 <공공의 적>의 강철중에 비해 성장했다. 물론 그는 여전히 양아치만큼 껄렁껄렁하고 애처럼 멋대로이며 손발이 자동 반사되는 폭력적 습관도 여전하다. 그러나 자신의 철없음을 타이를 수 있을 만큼 똑똑하게 성장한 딸이 있고, 15년 차 경찰 공무원 월급으로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는 빈곤한 현실적 고민에 사로잡혀 있다. 게다가 세월에 장사 없듯, 나이를 먹어서인지도 모르지만 <강철중>에서 강철중은 철없이 막무가내이던 <공공의 적>시절에 비해 성숙한 인상을 준다. 문제는 그 지점에 있다. 위트가 감소한 강철중 앞에 인간적 매력을 갖춘 악인 이원술을 대립시키면서 캐릭터 구도가 종종 역전되는 뉘앙스를 준다는 것. 사실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이 조규환을-<공공의 적 2>는 논외로 치고- 미치도록 잡고 싶어한 건 강철중이 정의에 목숨 거는 인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조규환이 인간적으로 혐오스러운 인면수심의 탈을 쓴 악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원술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악인이다. 특히 그가 사시미 하나를 쥐고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들어가 그 두목(문성근)과 담판을 짓고 나오는 장면은 인상적인 카리스마가 구사되고 인간적인 유머까지 겸비한다.

단선적이던 캐릭터 나열방식에 불분명한 혼선이 발생했다. 강철중은 강우석 감독의 것이지만 이원술은 분명 장진 감독의 것에 가깝다. 결국 두 감독의 조합은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쉽게 융합하지 못하고 겉도는 위트에 도취되기도 한다. 수위가 넘칠 것 같은 웃음의 타이밍에 좀처럼 쉽게 반응할 수 없는 건 융합될 수 없는 스타일의 간극 때문이다. 선이 굵고 묵직한 강우석 감독의 판을 지탱하기엔 장진 감독의 스타일은 가볍게 들뜬다. 동시에 캐릭터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공공의 적>의 단선적 관계는 공익적인 메시지를 얹으며 다소 번거로워졌다. 학교 폭력과 청소년 문제에 관여하는 조폭들의 실상을 그리는 <강철중>은 누가 봐도 공익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작게는 상도덕의 윤리부터, 크게는 기업의 경영 윤리가, 게다가 대한민국의 조직적 위계질서에 대한 풍자까지, 넓은 현실관념의 메시지가 펼쳐져 있다. 문제는 이런 측면들이 더더욱 <강철중>을 경직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장진 감독의 유머가 녹아 들지 못하는 것도 이 심각한 사안들이 주제의식과 무관하게 극적인 유연성을 방해하는데 있다.

결과적으로 <강철중>은 ‘<공공의 적> 혹은 강철중 리턴즈’라 명명돼도 상관없는 작품이다. 하는 꼴을 봐서는 깡패인지 형사인지 구분하기 힘들 것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던 강력계 형사 강철중에게 호감을 보였던 이라면, 게다가 양복 차려 입은 검사 강철중이 정의를 주창하던 경직된 모습에 뻣뻣해진 뒷목을 주무르던 이에겐 더더욱 반가운 사실일 수도 있다 게다가 오리지널 <공공의 적>을 계승하는 만큼 본래 <공공의 적>을 채우던 캐릭터들도 고스란히 돌아왔다. 삼류양아치였던 산수(이문식)는 강철중 덕분에 학교(!)에 다녀온 뒤, 유흥업으로 성공해 외제차를 몰고 다니고 칼잡이 용만(유해진)도 정육점을 운영하며 건실하게 살고 있다. 또한 강철중과 애증을 나누는 엄 반장(강신일)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공공의 적>의 중요한 관점포인트가 다양한 조연 캐릭터들을 통해 얻어지는 굵직한 재미였음을 간과하지 않았다는 점은 <강철중>의 장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강철중은 서민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한국형 안티히어로에 가깝다. 그가 상대하는 악인은 언제나 부자이며 그들은 하나같이 비열하다. 게다가 강철중은 가난하고, 심하게 강직하지 않다. 계급적 정체성에 대한 풍자가 막연한 단상처럼 녹아있는 강철중은 분명 대한민국 서민들을 통감시킬 만한 자의식을 걸치고 있다. 게다가 그의 공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기 보단 아래에서 위를 향한다. ‘형이 돈이 없다 그래서 패고, 말 안 듣는다 그래서 패고, 어떤 새끼는 얼굴이 기분 나빠, 그래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애들이 4열 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2바퀴다.’ 다소 길지만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내뱉는 강철중의 대사는 결코 선한 이들을 향한 것이 아니다. 사회를 부패시키고, 이를 좀먹고 자라는 무리들을 향해 그는 주먹을 날리고 맞짱을 뜬다. <공공의 적> 그리고 <강철중>에 어떤 쾌감을 느낀다면 분명 이 때문이다. 게다가 권력친화적이고 부에 관대한 대한민국의 알량한 공권력과 달리 강철중은 공권력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허구적이지만 실존적인 심판을 몸소 실천한다. <강철중>에 호감을 부여할만한 요인은 영화 외적인 환경에서 기인하는 바도 (분명) 존재한다. 게다가 미국산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광우병’ 위협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본의 아니게) 시의 적절한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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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덕환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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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여우니까 조심하라더라.
나를? 왜지? 그런데 사실 그런 말은 많이 듣긴 했다. 여우 같다고. (웃음)

어쨌든 <우리동네>를 보고 나서 그런지 지금 마치 가면을 쓴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외모가 오히려 가면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솔직히 지금같이 인터뷰하는 것처럼 내가 비쥬얼적으로 보여질 때만큼은 개인적으로 꾸미려고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영화상 캐릭터로 류덕환을 보자면 특정하게 뭔가 떠오르는 게 없다는 게 내겐 조금 더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림그릴 때 검은 종이에 그리는 것보다 하얀 종이에 그리는 게 더 그림이 잘 나오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메리트가 없는 게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캐릭터를 잡거나 이런 부분들에서는 가끔 도움이 될 때가 있고 남들보다 접근이 더 쉬울 때도 있다. 물론 항상 쉬운 건 아니겠지만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단 조금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이하, <마돈나>)의 동구처럼 <우리동네>의 효이같은 경우도 연기 이전에 캐릭터를 위한 어떤 준비가 필요했을 것 같다.
일단 <마돈나>때는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감독님들과 약속을 했던 것처럼 살을 찌우는 게 일단 목표였고, 그 다음에 씨름을 익히고 트랜스젠더 분들을 만나면서 그들만의 여성적인 감성을 찾아내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동네>같은 경우는 뭔가 자꾸 따라 하고 싶지가 않았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싸이코패스들을 따라 하기 보다는 내 것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보편적인 모양새까지 무시할 순 없었을 텐데.
물론 그걸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대중성도 무시하면 안 된다. 내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내 나름대로의 싸이코패스를 했는데 관객들은 ‘저건 싸이코패스가 아니잖아’ 라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대중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면에서는 분명히 싸이코패스적인 어떤 성격이나 표정, 행동 같은 것들이 나와야 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그런 걸 준비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효이라는 인물을 내면적으로 들여다봤을 때, 그의 성장 배경이나 어떤 전사(前史)들을 내 나름대로 조금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기존의 싸이코패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효이에겐 분명히 나름대로의 어떤 아픔이나 슬픔, 기쁨 같은 감정이 있다는 거, 태어났을 때부터 싸이코가 아니란 거다. 분명히 성장환경에 대한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자극을 받았던 이유가 컸지.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싸이코패스라기 보단 손가락질했다가도 그 아픔이 어느 정도 이해되고 공감 받을 수 있는 싸이코패스가 되길 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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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초등학생이 할머니를 망치로 때려죽이고 나서 그게 잘못된 건지 모르더라는 사건 기사를 접했을 때의 묘한 감정이 생각나기도 한다.
효이가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그게 나쁘다고 생각을 안 하는 것에 대한 아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했을 때 그에게는 아픔인 셈이지. 그 아픔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싸이코패스로 비춰졌으면 하는 바람이 컸던 거 같다.

항상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쓴다고 들었다. 효이의 시나리오도 썼나?
사실 효이란 인물에 대해선 쓸 수 없었다. 예전 같은 경우는 내 나름대로 그런 것들을 써나가고 그랬었는데 <우리동네>는 효이가 왜 이런 아픔을 가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성장 배경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인물이 어떠한 상황에서 자랐는가에 대한 것들을 내가 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단지 정할 수 있었던 건 효이에게 어떤 아픔이 있었을지, 그리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리고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그게 전혀 악이라는 걸 모르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심정적 근거들, 그런 것들만 내가 정할 수 있었지, 얘가 어떻게 자랐고, 어릴 때는 어땠고, 누구와 만났고, 그런 것들을 내가 정할 수 없었다. 이미 시나리오상에 그런 다이어리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감히 그렇게 건드리는 걸 차마 할 수 없었던 거다.

이미 인과관계가 시나리오에 명백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사실 효이라는 인물의 정체를 감춰서 반전의 효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동네>는 이미 누가 범인인지를 알고 보게 된다. 이럴 경우에 영화의 스토리가 맡아도 될 몫을 배우가 떠맡아야 한다. 결국 <우리동네>는 배우에게 부담이 큰 작품이라고 생각되는데 본인은 어땠나?
난 항상 부담이 커야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씩 커지는 거 같다. 그 부담감 때문에 계속 파고들려는 집요함이 생겨서 더욱 노력을 하게 된다고 할까.

그렇다면 본인에게 <우리동네>는 좋은 자극이 됐을 것 같다. 그런데 범인이 누군지 알고 가는 상황에서 장르적 긴장감은 많이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부담되지 않았나?
<우리동네>같은 경우는 방금 말한 것처럼 범인이 누군지 이미 밝히고 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보기 전에 긴장감이 없지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누가 살인을 저질렀고, 누가 범인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들이 왜 이래야 했고, 왜 이렇게 상황이 전개가 되느냐가 <우리동네>에선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누가 범인일까에 치중을 하는 기존의 스릴러 영화들과는 다르게 <우리동네>는 이 두 사람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 것이며, 세 사람의 감정관계나 인과관계가 어떻게 엮이는지, 그 매듭이 도대체 어떻게 풀릴까에 더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긴장감이 중요했다. 솔직히 난 효이가 어디서 어떻게 살인을 저지를까, 여기서 누가 죽을 거 같다는 식의 긴장감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오히려 비중을 두고 싶었던 건 인물간의 갈등과 관계가 어떻게 풀리고,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는가라는 것들이었다.

효이는 사악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순수한 존재다. 너무나 순수해서 사악한 거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양면적 성향을 동시에 표현해야 한다는 것도 고민이었을 것 같다.
난 그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누군가의 힘을 빌렸다.

누구 말인가?
그게 그 아역 친구다. 왜냐면 사실 내 능력이 좀 더 좋았다면 현재의 효이를 통해 내가 직접 그런 것들을 보여줬어야 되는데 난 거기까진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그 아역친구의 도움을 빌렸다. 영화상에서 아역 친구의 분량이 많진 않지만 꽤나 임팩트가 있다. 아역 비중에서 그 아이의 순수함과 살의를 갖게 된 동기 같은 것들이 모두 밝혀지기 때문에, 그 친구의 씬이 없었다면 내가 그렇게 효이라는 캐릭터의 양면성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류덕환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말도 듣지 못했을 거다.(웃음) 그 친구(아역 시절의 효이)가 없었다면. 물론 떡볶이 집에서의 순수한 청년의 이미지 같은 것들도 있었지만 그건 어떻게 봤던지 간에 단면성이니까, 이 아이가 왜 아픔도 없고 살인을 저질러야 했는가의 동기는 내가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친구에게 더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친구 덕분에 양면성이 또렷해졌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청룡영화제 때, 황정민 선배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밥상은 남들이 다 차려놨는데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다 받는다고, 그거랑 비슷한 얘기다. 나도 다른 배우가 있었기에 그렇게 주목 받은 것뿐이지, 난 내가 혼자 다 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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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결국 <우리동네>에서 류덕환의 밥상은 어린 효이가 고양이 목을 비틀 때 다 차려진 건가? (웃음)
내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도 나오지만 그렇게 살인을 저지르는 긴장감의 출발점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지. 외로울 때 항상 자기 곁에 있었던 고양이가 자기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 고양이를 죽였는데 이상하게 불쌍하지도 않고, 밉지도 않고, 자기가 무섭지도 않고, 그냥 단순한 쾌감, 혹은 그에 대한 어떤 즐거움만 있으니까. 그런 씬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 이후에 효이의 어떤 행동들이나 그런 사건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관객들이 공감하게 되는 거라고 난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선균이나 오만석 같은 배우들의 안정적인 서포트가 효이란 캐릭터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건 아닐까.
일단 만석이형과 저 같은 경우는 분명히 살인마라는 세 글자를 건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다른 연기가 나왔다. 연기 스타일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건 캐릭터상의 문제다. 서로 연기를 하면서 대치했던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경주라는 인물과 많이 부딪히지는 않지만 마지막 씬에서 본격적으로 부딪히면서 긴장감이 팽팽히 도는 가운데 과연 누가 이길지 지켜보게 되는 건데, 어떻게 보면 내가 계속 쏘아붙이고 혼자 얘기하니까 마치 경주가 진 것처럼 표현됐다. 물론 둘의 긴장감은 끝까지 있었고 누가 효이를 죽인 건지는 결국 모른다. 효이가 자살했는지, 경주가 죽였는지 나도 모르고, 감독님만 아는 거겠지. 감독님께서 아직도 말씀해주시진 않지만 난 처음엔 경주가 그 힘을 못 이겨서 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왠지 효이가 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그 쪽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쏘아붙이던 효이의 모습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지는 건 아닐까 싶다. 그에 반해서 선균 형의 연기는 일단 너무 편안하다. 사실 난 영화 보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내 연기를, 우리 영화 자체를 보면 항상 긴장되고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어깨가 여기까지 올라가고(어깨를 펴면서)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선균 형의 힘이 컸단 생각이 들더라. 그나마 관객들을 편안하게 해주시니까. 목소리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연기 스타일을 갖고 계시니까. 나라도 저렇게 했을 거야, 나라도 저 상태에서는 저렇게 감정이 나왔을 거야, 라고 생각될 만큼 중립적인 입장을 너무나 잘 표현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너무나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더라. 효이가 굉장히 극단적이고 재신이 굉장히 스무드(smooth)한 역할이라면 경주는 그 가운데서 치고 받고 하는 인물이다. 그런 조합이 어떻게 보면 연기적으로 잘 맞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긴장감을 갖게 되는 반면,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구도로 완성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효이가 자신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긴 것 같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난 효이가 전신주에 붙은 자신의 몽타주가 자신과 닮지 않았냐고 묻는 장면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했다. 자신을 과시하는 듯한 이런 행위는 결국 누군가의 관심을 얻고 싶어하는 것이고 자학을 통해서라도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로 느껴졌다. 이는 한편으로 그 거리의 무관심을 조롱하는 행위라고도 생각했다.
자꾸 아역 때만 말하니까 내가 한 게 없는 거 같아서 좀 그런데,(웃음) 사실 아역 분량에서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엄마의 무관심 속에서 자랐고, 그래서 살아있는 동물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의 모습, 그리고 소연이라는 여학생을 좋아해서 나름대로 관심을 표했지만 돌아오는 무관심, 그로부터 느껴지는 아픔들, 그런 주변 인물들로부터 보여지는 무관심한 아픔들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몽타주 씬에서도 그렇고 자기가 살인자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는 건 좀 더 관심을 받고 싶어했던 부분들이 컸기 때문인 거 같다. 그 타깃은 일단 경주였지만 그 외에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의 무관심을 하나씩 접하게 되고 그런 게 쌓이다 보니까 광기가 더욱 커진 것일지도 모르고. 그리고 동물 병원에서의 충동적인 살인도 명보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거다. 명보에게 거짓말로 소연이랑 살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그는 그녀가 죽은 것조차도 모르고 있지 않나.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소연이에 대해서 상처를 받았던 건 정작 명보 때문이었는데 그런 당사자의 무관심이 충동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효이의 그런 모습들이 무관심에서 출발한 셈이라고 봐도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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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전원일기>에 출연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웃음) 연기 경력이 나이에 비해 상당하더라.
여섯 살 때부터 시작했다. 시작하게 된 동기는 내가 너무 숫기가 없어서 어머니께서 웅변을 시킬까 연기를 시킬까 고민을 하셨던 것에서 출발한다. 병적으로 숫기가 없었다고 하더라. 이 세상에 어머니와 할머니 말고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심했다. 그러다가 어떻게 아는 분을 통해서 소극장에서 연극을 배우다가 한번 대회를 나갔는데 심사위원으로 유인촌 선생님이 계셨다. 그런데 날 좋게 봐주셨는지 관심 있으면 오디션을 보라고 하시면서 어느 연락처를 알려주셨는데 그게 <전원일기>오디션이었다. 그래서 오디션 보고 어떻게 하다가 <전원일기>에 들어갔다. 그렇게 TV쪽을 들어가게 되니까 여기저기서 얘기가 나오고 그를 빌미로 다른 오디션 보고 하니까 <허준>이나 <왕초>같은 드라마도 나오게 됐다. 그러던 중, 영화 일을 몇 번했는데 그게 매번 잘 안됐다 개봉 못한 영화도 있었고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까 난 정말 영화랑 안 맞나 보다라는 생각까지 했는데 <묻지마 패밀리>라는 옴니버스 영화를 하게 됐다.

‘내 나이키’ 편에 출연했던.
장진 감독님과 박광현 감독님과의 인연이 그때부터 시작이 됐다. 아마도 그때부터 시작된 거 같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무모하지만 배우라는 길을 택하고, 해야만 한다고, 해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던 게 <묻지마 패밀리>이후부터였다. 사실 그 전에는 내 주위의 아역배우들을 이겨야겠다는 열등감이 강했다면 그 때부터는 내 의지대로 해나가는 식이었던 거 같다. 그 이후부터 스스로 (필름있)수다 사무실 찾아가서 계속 인사 드리고, 돌아다니면서 나 장진 사단이라고 떠들고 다녔고 그러고 싶었다.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내 욕심이었고, 의지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영화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커졌던 거 같다.

하지만 결국 배우로서 확실히 각인시킨 건 필름있수다에서 제작하지 않은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서였다.
<웰컴 투 동막골>하고 나서 <마돈나>라는 작품을 택했던 건 물론 내 욕심도 있었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들도 있었는데 그 남들 중에 가장 첫 번째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장진 감독님이었다. 장진 감독님한테 ‘저 이번에 형 도움 없이 영화 하나 찍었어요. 한번 봐주세요.’라고 한번 말하고 싶었었다. 그런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물론 지금은 이제 그런 특정한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는 의지는 없지만 내 스스로가 해야만 한다는 의지가 마음속에 남아있다는 게 앞으로 중요한 거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 같은 건 크게 중요한 거 같진 않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그냥 어머니가 시키니까 했던 거 같고.(웃음) 이제부터 시작인 거 같다. 내가 이제 보여줘야 하는 것들, 조금 더 공부를 해야 하는 것들도 많고.

평소에 조승우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많이 피력한 것으로 안다. 여전히 조승우는 류덕환에게 이상형인가?
내가 조승우 형을 너무 좋아해서 <웰컴 투 동막골>(이하, <동막골>)당시에 (강)혜정 누나와 친분이 있으니까 몇 번 물어보기도 했었고, 매니저 형 아는 분들 통해서도 몇 번 인사도 드렸지만 친해지거나 그렇진 않았다. 너무나 친해지고 싶었었다. 대학교 시험 볼 때도 조승우 형의 '지킬 앤 하이드'를 가지고 종합 연기 준비도 할 정도로 애정이 너무 깊었었다. 언제는 한번 누가 (조승우와) 닮았다는 소리를 해서 난 정말 날아갈 정도로 기분이 좋았었다. 너무 행복했지, 그땐. 내가 좋아하고 우상으로 섬기는 배우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기분은 정말 어떻게 말을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한편으로 이젠 나도 나중에 내가 조승우 형을 닮고 싶어하는 것처럼 누군가 나를 닮고 싶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 같은 게 오히려 지금은 더 큰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분을 안 닮고 싶다는 건 아니다. 게다가 그걸 따라가긴 어렵겠지. 다만 그 분의 연기에는 그분의 스타일이 있고, 분명히 나만의 스타일도 있기 때문에 존경은 하지만 이젠 내 길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더 커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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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엉뚱하지만 효이가 ‘나, 괴물이지?’란 대사를 할 때 <마돈나>의 동구가 했던 ‘나 장만옥닮지 않았어?’라는 대사가 생각났다. (웃음) 왜냐면 괴물이나 장만옥은 효이와 동구에겐 누군가에게 이렇게 인정받고 싶다는 어떤 구체적인 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류덕환은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은 어떤 구체적인 상이 있나?
음…글쎄. (골똘히 생각하다가)그들은 어쨌든 간에 둘 다 한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다. 둘다. 오동구 같은 경우는 자기가 짝사랑하는 일본어 선생님한테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고, 효이도 다른 사람이 아닌 경주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다. 그런 것처럼 나 같은 경우도 인정받고 싶은 특정 인물 같은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 인물들에 대한 심리 상태를 나에게 비교하자면 어느 한 특정인물한테 주목이나 인정을 받고 싶다기보단 내 자신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거 같다. 난 항상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을 충족하기 위해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물론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지적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런 것들을 다 새겨듣지도 않는다. <마돈나>때도 안 좋다고 하셨던 분들도 있었고, 좋다고 하셨던 분들도 있었다. 사실 <아들>같은 영화를 찍었을 때는 내 나름대로 굉장히 무난하고 조용히 연기했다면 <우리동네>에서는 감정이 극단적인 상태로 치닫는 그런 연기를 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연기를 했을 때 칭찬이 더 많이 나온다. 솔직히 <아들>때 편안하게 연기했는데 이건 그냥 그랬구나, 하고 지나갔는데 <우리동네>같은 영화는 잘한다고 하는 모습들이 난 일차적으로 보여지는 어떤 시각적인 부분에 의해 내가 보여진다고 생각했다. 일단 겉모습을 통해 보여지는 것들, 표정이 굉장히 많이 나타난다거나, 연극적인 요소로 억지스럽게 표현한다거나, 이런 것들을 통해 인정받는다는 게 과연 정말로 내가 인정을 받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스스로를 아직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긴가?
사실 칭찬해줬을 때, 그런 것들을 굉장히 기분 좋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결국 내 자신으로서는 인정할 수 없을 때도 있는 거니까. 왜냐면 <우리동네>나 <아들>이나 <마돈나>나 <동막골>이나, 내가 임했던 연기의 자세는 똑같았다. 내가 어떤 연기를 하든 내가 노력한 부분에 대한 퍼센트 지수는 항상 똑같았다. 물론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 같은 것들은 분명히 다르겠지만 내가 했던 연기적 태도는 분명 똑같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굳이 캐릭터가 뚜렷해야만 인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일 거다. 한편으로 다음 영화에서는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하게 가도 아, 류덕환 정말 연기 잘한다, 이번 영화 참 좋았다, 라는 얘기가 과연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 내 자신 스스로 한번 실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래서 그 특정인물을 굳이 정하자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기보단 나인 거 같다. 오히려 나한테 인정받고 싶고, 내가 내 자신에게 죽어도 만족을 못할지라도 한번쯤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연기가 나올 때까지 해보는 게 내 모습인 거 같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겠다는 거지.

동구나 준석이나 효이가 아니라 그냥 류덕환이라는 자체로 인정받고 싶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럴 수도 있다. 내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배제하지 않고서 연기에 임했던 게 <아들>이었다. <아들>같은 경우는 반전에 대해서 좋다고 생각하시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게 별로 안 좋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런데 어쨌건 반전에 대해서 뒤통수 맞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난 오히려 그런 반응들이 내 개인적으론 굉장히 좋았다. 왜냐면 그 전 상황까지는 그만큼 승원형이랑 내 모습이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으로 보여졌기 때문에 그만큼 뒤통수 맞은 게 큰 타격이 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부분들이 내 의도처럼 최대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으로 비춰지길 원했고, 그 둘의 모습이 너무나 예뻐 보이길 원했었다. 어떻게 보면 <마돈나>나 <우리동네>와는 다르게 <아들>때는 최대한 그런 모습에 류덕환의 모습으로 다가가길 원했고, 류덕환의 모습이 조금 더 많이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통해서 내 나름대로 치밀하게 반전을 준비했었다. 앞으로는 내가 그런 연기를 했을 때도 <우리동네>나 <마돈나>를 통해 받았거나 받고 있는 어떤 칭찬들이 똑같이 나올 수 있는 그런 방법이 뭐가 있을지, 그런 것들이 내가 풀어나가야 하는 과제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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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서 여자가 되야 했던 동구처럼 류덕환은 살기 위해서 연기를 하고 있는 건가?
배우가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살기 위해서 배우가 된다는 것보다는 배우는 나에게 너무 하고 싶은 낙인 거다. 내가 아까도 말했다시피 연기를 하면서 분명히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스트레스를 비롯한 여러 가지 난관들을 계속 헤쳐나가고, 그런 과정들이 쭉쭉 나아가다가 결국 결과물을 봤을 때 느끼는 것들. 이번에도 하나 해냈구나, 100% 마음에 들진 않지만 오늘도 하나 해냈구나, 이런 감정들을 느끼기 위해서 계속 이렇게 하는 거 같다. 이런 것들을 말로 풀어내자면 내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즐거움 때문에 배우를 한다기보단 배우를 하면서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이 일을 하는 거 같다. 어떻게 보면 그게 내가 연기를 하는 정답일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즐거움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 계기는 뭐였나?
그러니까 그 정체성이라는 게, 옛날에 이휘재 씨가 하셨던 인간극장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래, 결심했어’ 뭐 이런 거? (웃음) 정체성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작품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걸 보는데 이 느낌을 한번만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마냥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짜릿한 것도 아니었고, ‘우와’도 아니었고, 경악도 아니었고, 그냥 이게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한번만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로 나에게 영화에 대한 어떤 집요함이 생기게 된 계기인 거 같다. 물론 난 이러니까 배우를 해야만 한다고 내가 지금도 느끼고 있는 건지 잘은 모르겠다. 배우라는 이 한 단어가 제 이름에 붙여질 때, 배우 류덕환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 사실 난 아직 창피하다. 그건 아직 내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많이 배우고 있는 입장이니까. 물론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직업상으로는 배우 류덕환이 맞겠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떤 전문용어로 배우 류덕환이라고 불렸을 때는 난 아직 창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난 배우라는 정체성을 앞으로도 계속 살려나가야 될 것 같다. 내가 이렇기 때문에 배우 류덕환이라는 정체성은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계속 찾아나가면서 만들어나가야만 할 것 같다. 내가 그 만족감을 언제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그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 찾아나가야만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단순히 지수로 표시한다는 게 힘들겠지만 효이는 본인에게 몇 %의 만족이었나?
(골똘히 생각하다가)난 모르겠다. 사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번에 <우리동네>를 보고 나서 그 때 찍었던 씬이 몇 테이크였는지 알 것 같더라. 영화를 보면서도 감독님이 몇 번째 테이크를 썼겠구나라는 걸 느낄 정도로 내가 너무 생각을 많이 했던 작품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사실 영화를 보면서도 몇 번 테이크를 썼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물론 그렇게 테이크를 많이 간 것도 아니고 연기도 즉흥적으로 나왔지만 모니터를 이렇게 많이 본적은 진짜 처음이었다. 모니터를 계속 돌려서 보고 또 보면서도 하나하나 꼼꼼히 봤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도 몇 번째 테이크를 썼는지도 알 것 같더라. 그래서 이번에 이 씬에서는 그 테이크를 썼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된 작품이었던 거 같다.

결과적으로 영화에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인가?
내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거 같다. 가령, 내가 왜 이 감정을 생각 못했지? 그러니까 영화 전개상 보다 보면 저 감정은 안 맞는 거 같다는 그런 느낌들이 있었다. 내 연기부분에서는 그런 것들이 있었고, 오히려 연기적으로 걱정했던 부분에서 음악이 비중을 많이 살려준 부분도 있었다. 음악이 깔리고 나니까 오히려 그 씬의 시니컬한 느낌이 더 살고, 그래서 조금 더 좋아진 부분도 있었다. 사실 내 연기 부분에 대해선 항상 나는 만족할 수 없는 거 같다. (웃음) <천하장사 마돈나>때도 그랬고. 내가 (신)하균 형이랑 조금 비슷한 성격인데 내가 찍은 영화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못 본다. 영화를 보면서도 계속 이렇게(손으로 눈을 가린 채로) 가리거나 중요한 장면 나올 때는 유심히 봐야 되는데 오히려 옆에 있는 사람을 본다. 어떻게 볼까, 어떤 반응이 나올까, 그런 것들이 궁금해서,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족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소심함 때문에.

스스로를 자학하는 경향이 약간 있는 거 같다.
그런 게 조금 있다. 어쩌면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완벽주의자?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내가 자꾸 자학을 하는 거 같다. 예를 들어서 커피를 마시는데 커피의 농도가 딱 80%라면 그 80%에 맞춰야 된다. 누가 봐도 80%에 맞는 거 같다고 하는데, 내가 맛을 봤을 때 79%밖에 안 되는 거 같다면 그 1%를 만족하기 위해서 나는 계속 농도를 맞추려고 할 거다. 내 입 맛에 맞는 그 1%를 만족하기 위해서. 어떻게 보면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을 통해 내 자신을 자학하는 것 같기도 하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 중 자학했던 사람이 많다더라.
아, 그런가? 그럼 좋게 받아들여야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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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야기해보니 여우보단 애늙은이 같다. (웃음)
애늙은이도 많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전원일기>라는 드라마를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웃음) 너무 높으신 선배님들이다 보니까 난 정말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계속 몸에 배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셨던 게 네가 인사를 했는데 저 선배님이 모르고 지나갔다면 네 인사를 모른 척하고 간 게 아니라 못 보고 갔을 수도 있기 때문에 너는 끝까지 인사를 해야 된다는 것. 그래서 무조건 나는 내 인사를 못 받았을 때는 내가 쫓아가서 인사를 해야 된다.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몸에 배어있다 보니까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스텝 한 분들한테까지 가서 인사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떻게 보면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여우라는 말이 나왔던 것도 상대방의 반응을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말을 하나씩 커트한다거나 농담도 함부로 못하는 거 같고, 농담을 했을 때도 그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이런 것들을 자꾸 안으로 소심하게 생각하다 보니까.

너무 배려가 심하다 보니까?
좋게 말하면 배려고, 나쁘게 말하면 나 혼자 망상에 빠지는 거지.(웃음) 그러니까 얘기를 하다가도 가벼운 농담을 할 수도 있는데 제 딴에는 기분이 나쁠까 봐, 그게 어떻게 보면 칭찬의 의미일 수도 있는데 괜히 했다가 뭐야, 이사람, 이럴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혼자서 자꾸 상상을 하게 되는 거다. 그래서 말하면서도 자꾸 생각하게 되고, 이 정도 수위면 기분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따르기 때문에 여우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계속 조심스럽게 말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대선배님들을 통해 몸에 밴 습관이 눈에 띠어서 애늙은이처럼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역 시절부터 쌓아왔던 연기적 학습능력, 즉 필모그래피가 지금의 연기적 자양분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난 아역 때도 내가 아역 취급 받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난 지금 아역 친구분들한테도 처음에 만났을 때는 무조건 존댓말을 쓴다. 어쩌면 내가 그걸 겪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본의 아니게 기분 나쁠 때가 있다. 무조건 어리다고 해서 반말하고 그냥 너는 대기하다가 조금 이따 나오라고 할 때 나와,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말하고, 이런 부분들이 어떻게 보면 무시당한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최대한 배려해준다고 하는 게 일차적으로 나오는 말이다. 누구나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인격이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친해지기 전까진 존댓말을 한다. 무시당하는 것까진 아니라도 내가 이렇게 보이면 너무 약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것들을 내 나름대로 소심하게 표현했겠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강하게 계속 쌓여왔던 거 같다. 그래서 주연, 조연 같은 걸 따진다기 보단 현장에서의 내 모습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고 난 언제나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한 씬을 나오더라도 두 씬을 나오더라도 언제나 나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주연급 배우로서 빠른 나이이기도 하다.
<우리동네>는 사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분량으로 따졌을 때 조연급이지만 난 내 마음속으로 항상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자신감을 잃지 않아야 내 연기에 대한 어떤 신조나 정확한 어떤 연기관 같은 게 흐트러지지 않고 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내 중심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아역 때부터 그런 생각이 쌓이다 보니까 주연, 조연, 단역 배우에 대한 개념이 다 사라진 거 같다. 누구는 주연, 누구는 조연, 또 혹은 누구는 단역, 난 이런 것들을 정해놓은 거 자체가 너무 싫었다. 물론 우리가 구분을 위해 배역을 나누겠지만 영화 일을 하면서 만큼은 주연이 조연이 될 수 있고, 조연이 주연이 될 수 있듯이 항상 누구든지 그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주연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이라도 빠졌을 때 영화가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다 주인공이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주연이 훨씬 더 많이 고생하고 그에 대한 대우도 물론 다르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신조만큼은 항상 주인공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주연이나 조연, 그런 거 생각 안 하게 되는 거 같다.

그런데 솔직히 난 스물 다섯은 넘었을 줄 알았다. 항상 연기를 보면서 스물 한 살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거지. 연기를 통해서 막연히 생각했던 나이와 실제 나이 사이의 괴리감을 알고서도 놀란 부분도 있다.
아~! 정말?

요즘 학교에서 연극 준비했다고 하는 거 같던데.
어제 끝났다. 어제 쫑파티도 했고. 그래서 지금 사실 상태가 별로 안 좋다. (웃음)

사실 그 연극도 졸업작품이라도 준비하는 건 줄 알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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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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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손병호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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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오면 감회가 새롭겠다.
그렇지. 사실 내 텃밭이야. 텃밭. (웃음)

그런데 한참 연극하던 예전에 비해서 대학로의 경관이 많이 달라졌다. 낯설진 않나?
많이 달라졌지. 건물들이 점점 고급화되는 것 같고. 물론 이렇게 되는 건 좋은데 연극무대는 이제 옮겨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제 연극공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거든. 왜냐면 연극 극장이란 게 건물에 속해 있는데 이렇게 건물들이 주점화되고 상업화되다 보니까 건물주들이 건물 임대료를 점점 올려. 임대료가 올라간다는 건 연극의 제작비가 올라간다는 거고, 제작의 여건이 힘들어진다는 거고, 그만큼 연극을 하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거지. 그니까 지원금을 못 받으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거야. 4~5년 전만 해도 소극장이 한 달 공연하기 위한 예산이 한 3~4천(만원) 정도였는데 요즘은 억 단위까지 가더라고. 그만큼 배로 뛰었지. 옛날엔 그래도 오백(만원)에서 천만(원)이면 했거든. 요즘은 꿈도 못 꿔. 지원금 없이 절대 안되지. 쉽게 말해서 요즘에 영화 한편을 단 돈 1억만으로 찍기 힘든 것과 똑같아.

그런데 대학로 같은 공간적 대안이 없다는 것도 문제 아닐까?
여기는 이동 인구는 많은데, 그 사람들이 다 극장에 오는 건 아니라고. 어쩌다 극장에 왔다가도 술집 보고 ‘야, 여기 분위기 좋네’, 하고 이쪽으로 다시 오는 거지. 난 문화적 공간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한곳에 딱 포진된 예술의 전당 같은 곳처럼, 거길 갈 땐 아예 문화라는 체험 그 자체를 마음먹고 가는 거잖아. 난 그래서 용산 같은 곳으로 옮겨지면 어떨까란 생각을 자주해. 물론 거기에 극장 용도 있고 국립박물관도 있지만, 거기에 중소극장들이 옮겨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 공원도 가까우니까 어느 극장 갈까 둘러보다가 자연도 보고, 그런 공간으로 좀 이동했으면 좋겠어. 음주문화와 거리를 둔 순수한 예술적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게.

그런 의견을 주변의 지인과 나눠본 적은 없나?
지금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집단들이 ‘우리 떠나야 된다’는 마음을 많이 갖고 있어. 그래서 실제로 대학로에서 공연 안 하겠다는 친구도 많고. 사실 대학로의 처음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문화 공간이 많이 생겨야지. 갤러리가 생기든, 극장이 들어서든, 그래서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서 대학로를 느낄 수 있어야 되는데 요즘은 그저 술집 많고, 먹거리 많고, 그저 그런 공간으로만 변질되어가니까 아쉽지.

대학로가 지닌 문화적 정체성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체성이 많이 없어지고 있다고 보지. 사실 극장이 좋아야 공연을 좋아하게끔 끌어들일 수도 있는데 어렵게 저런 지하에 극장을 만들었다 이거야. 얼마나 옹색하겠어. 물론 소극장이 나쁘다는 건 아니야. 그런 소극장도 필요하지. 하지만 그것이 소극장이 지향하는 하나의 컨셉에 걸맞은 필요성에 따른 크기와 규모인가란 것이지. 질적으로 향상돼야지, 그게 아니라 단지 열악한 이유 때문에라면 힘든 거잖아. 작고 아담해서 단순히 귀엽고 예쁘다 할 수도 있지만 막상 의자 불편하고 그러면 다시 오고 싶지 않지. 솔직히 영화도 의자가 편한 극장에서 보고 싶어하잖아. 물론 진실되게 땀 흘리는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되겠어. 그런 면에서 우리도 좀 더 좋은 소극장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좀 찾아야겠다 싶은 거지. 그래서 어딘가로 이동해서 다시 한번 포진을 잡던지 해야 되는데 아직까지 그러기엔 우리 여건이 열악하지. 사실 문화에 대한 인식이 열악한 탓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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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젠 연극 배우보단 영화 배우란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작품 수가 어마어마하던데.
이젠 그렇게 돼버리네. 연극을 하도 못하니까. 이제. 그렇다고 어마어마하진 않을 텐데. (웃음)

물론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도 있지만 어쨌든 출연 편수가 상당하더라. 그리고 인상적인 작품들도 눈에 띠고. <야수>는 정말이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야수>가 잘됐어야 했는데. 아~! (웃음)

흥행은 실패했지만 손병호란 배우 개인에겐 상당히 많은 것을 남긴 작품일 법 한데.
진짜 영화 배우라는 각인을 시켜줬으니까,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고마운 작품이지. (권)상우와 (유)지태가 들으면 미안하지만, 솔직히 자기들도 잘 알아! (웃음) 지태는 특히. 지태는 욕심이 많은 친구야. 그래서 지태가 내 역을 너무나 하고 싶어했지. 지태가 정말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는 게 마인드가 참 좋아. 젊은 시절의 청춘 스타보단 진짜 배우가 되고 싶어하는 거야. 배우로서 막 이기고 싶은 거야. 그래서 유강진을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거고. 자기가 조금만 더 늙었다면 그 역을 했을 거라면서 ‘선배님, 전 정말 빨리 늙고 싶었어요’ 그러더라고. (웃음) 며칠 전에도 전화 왔었어. 대학로에서 술 먹다가 전화해서, ‘형님, 형님 최고야!’ 이러더라고. 그래서 대답했지. ‘미안한데, 그래도 나 못나가.’ (웃음)

그런 이야기 들으면 그래도 뿌듯하겠다.
그런 말만 해줘도 고맙지. 사람이 만나면 서로의 장단점이나 모자란 점도 다 보이는 건데 서로가 그걸 다 이해하고, 격려해주고, 보완해주면 그게 다 좋은 거잖아. 미운 사람보단 예쁜 사람을 더 챙겨주고 싶은 것처럼, 그런 인간적인 면에서.

가끔 연기를 통해서 사람의 선과 악은 백지장 차이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래서 말인데, 사람은 본래 선하다고 생각하나, 악하다고 생각하나?
난 항상 성선설을 주장하지.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올 거야. 선천적으로 인간이 나쁘다고 보지 않아.

그렇다면 왜 사람이 악해진다고 생각하나?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거지, 특히 어릴 땐 부모와 환경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 가정 교육도 그래서 필요한 거고. 지금 문제아라고 불리는 청소년들 보면 그 친구들 가정의 절반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야. 부모가 이혼했거나 자식에게 어떤 애정이 없어서 방관했거나, 어릴 때 다독거려줘야지. 스킨쉽이 부족한 거야. 인간은 체온을 느끼면서 마음의 정서가 열린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그렇게 교감이 트이면 내 마음도 훈훈해져. 이런 교감이 차단되고, 마음이 차가워지고, ‘너 뭐하는 거야! 저런 자식을 내가 왜 나아가지고.’ 이런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의 마음은 이미 비뚤어지기 시작하는 거지. 그럼 그 사람이 사회를 보는 눈이 어떻겠어. ‘그래, 나 비뚤어진 놈이야. 누가 날 낳았어. 사회가, 너희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그래서 사회에 반항하고, 뭔가 불만만 터뜨리게 되고, 보는 사람마다, ‘왜, 나한테 뭐 불만 있어?’ 이렇게 되는 거지.

후천적이란 말인데, 그럼 다시 선한 사람으로 교화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그 사람과 다시 한번 정서적인 교환을 하거나, 조금씩 좋은 생각을 하게 만들면 교화시킬 수 있어. 결국 난 충분히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단지 그런 환경 자체가 그 사람을 몰아세우는 것이니까. 민기자가 한 달간 배가 고팠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저 안에 먹을 거리가 있어. 그럼 결국 장발장이랑 똑같을걸. 장발장이 무슨 나쁜 사람이라 빵을 훔쳤나, 정말 배고파서 빵 하나 먹었을 뿐인데. 물론 훔친다는 게 죄겠지만 순순히 부탁하면 안 주는걸. 배고픈 사람에게 뭔가 줄 수 있어야 될 거 아닌가, 사회가, 아니면 인간이. 그러면 그 사람 감동받을 거야. 은혜를 입어서. 그렇지 못한 사회니까 훔쳐야 된다고. 사람을 자꾸 그렇게 만드는 거야. 환경이. 옛날엔 시골에서 잔치 있으면 거지도 불러서 먹였다고 하잖아. 그게 정이거든. 없는 사람, 있는 사람 같이 나눠먹는 정. 근데 점점 각박해지는 거지. 더군다나 요즘 사회는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점점 빈부차가 심해지고, 또 일류끼리만 놀고, 거기에 못 끼면 완전 무시하고.

사회가 점점 몰인정해지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연기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영화마다 이 친구가 왜 이 지경으로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요인을 찾는다. 그게 시나리오에 직접 나와 있기도 하지만, 숨어있기도 하고, 그걸 내가 찾아서 내 마음 속의 적절한 지점에 담는 거지. 어떤 것에 의해 내가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런 불만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어떤 욕망이 생긴다는 것을, ‘그래, 네가 날 이렇게 했어?’라는 생각을.

결국 환경에 따라서 악함도 정의된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떤 똑같은 환경인데도 사람에 따라 ‘내가 어떻게 할까’란 생각은 다 다르겠지. 그리고 행동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래도 악한 사람은 없어. 단지 생각이나 마인드가 부여하는 가치의 차이지.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어. 내가 <무방비도시>에서 형사를 연기해서 이번에 강력반 형사를 만났는데 형사님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거든. ‘형사님은 인간이 악한 거 같나요, 선한 거 같나요?’ 그럼 나하고 반대야. 형사가 되기 전엔 인간이 선하다고 생각했는데, 강력반 형사가 되니까 인간은 악하다고 생각이 변했대, 자기는. 내가 만약 형사여서 수많은 범죄자를 대하고 악한자만 상대하면 ‘정말 인간은 악한 놈이구나. 정말 태어날 때부터 악마가 있는 게 아닐까?’ 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감히 말하기가 두렵긴 하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는 난 선한 쪽이라고 생각해. 난 선해, 아직까지. 결국 그런 생각도 환경에 따라서 이렇게 틀릴 수가 있겠단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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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솔직히 <야수>의 유강진은 선천적으로 악하다고 느껴졌다. (웃음) 물론 그 완벽한 악함이 한 순간 무너지던 순간이 있었지. 자식 앞에 있을 때만큼은 어쩔 수 없더라.
자기 가족 앞에서는 누구도 악인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아버지들은 있겠지. 가족을 버리고, 책임지지 않고. 대신 그런 아버지라면 보스가 될 수 없겠지. <대부>를 보면 패밀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잖아. 그리고 유강진이 그렇지. <야수>에서 ‘나는 이 사람이 날 배신해도 이 사람을 버리지 않아.’라는 유강진의 대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만큼 유강진은 힘이 있었고, 그 힘이 보스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버리지 않고 날 배신한 이조차 내가 감싸 안는 것. 얼마나 노력했겠냐고, 뭐든지 어떤 식으로도 노력하지 않으면 이루어낼 수가 없어. 리더라는 건, 내가 먼저 보여주고 내가 먼저 베풀지 않으면 날 안 따라와. 안 그렇겠어? 친구들한테도 내가 먼저 베풀고 내가 먼저 전화해야지, 날 더 기억해주지. 그렇지도 않으면서 이 친구들이 날 사랑해 줄거라 믿으면 그건 천만의 말이지. 그런데 유강진은 그런 인물이라고. 그럼 가족은 당연히 지키지. 가족이 생명인 걸, 가족 때문에 그러는 걸. <가족>을 지키고자 하니까 욕망이 생기는 걸.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유강진은 국회의원 될 필요도 없었을 거야, 아마. 그냥 군림하다가, 흥청망청 살다가 망가졌겠지. 마약이나 하고. 하지만 가정이란 게 있으니까 욕망이 꿈틀거리지. 아버지로서 사회적 신분을 얻고 싶은, 자기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어떤 이들도 깡패라고 함부로 말하지 못하거든. 그게 다 자식을, 가족을 위한 거죠. 그러니까 국회로 가는 거야. 난 그게 자식을 위해서라고 생각해.

가족을 명예롭게 하기 위해서?
그렇지. 난 아직까지 어린애가 다섯 살 밖에 안돼서 잘 모르는데, 우리 선배 중 한 분이 애들을 다 유학 보내고 기러기 아빠야. 왜 보냈냐고 하니까, 그것 참 신기하대. 그냥 TV에서 악역을 좀 많이 하다 보니까 아이가 학교에서 그렇게 놀림 당한다는 거야. ‘네 아빠 나쁜 놈이지’ 이러니까 얘는 충격이지. 몰랐어. 나도 그 정도까지 심할 줄은. 그런데 애들은 그렇게 놀린다고 하더라고. ‘너 나쁜 놈이지, 너희 아빠 나쁜 놈이니까 너도 나쁜 놈이야.’ 이런다는 거야. 그래서 그 애가 아버지랑 말도 안 했대. 그래서 ‘너 왜 그러냐?’ 물어보니까 ‘아빠, 그런 역 좀 하지 마요. 나 학교 가기 싫어.’ 이랬다는 거야. 거기에 충격을 받아서,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떠나 보낸 거지, 캐나다로, 가족 다. 그만큼의 환경이 중요하더라니까.

그런데 본인도 악역을 많이 하지 않나? 걱정 좀 안되나? (웃음)
그래도 내 딸은 아직 어리니까. (웃음) 다섯 살 유치원 짜리니까. 그리고 난 영화 하니까! TV는 잘 안 하잖아! (웃음)

부인께서는 악역을 자주 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던가?
내 와이프가 송일곤 감독의 첫 영화 <소풍>에 같이 나왔잖아. 그전에 자기도 무용 공연하고. 물론 이제 내 와이프는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거 알잖아. 그런데 뭐 영화적인 면에서 강인한 연기 코드를 지녔을 뿐이니까 괜찮아. 대신 마음속엔 조금 있겠지. 조금 더 좋은 역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겠지.

그럼 요즘엔 더 뿌듯하시겠다.
그런데도 사람의 욕심이란 게 참 끝이 없어. 성이 안 차는 거야. 물론 내가 원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도 생활인이잖아. 경제란 게 필요하고, 가정이 있으니까. 필요해서 할 수 밖에 없는 배역이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될 때가 있고. 다만 고마운 건 날 이제 만났던 감독이나 모든 사람들이 욕하지 않는다는 거. 조연출들이 만날 때마다, ‘저희 조연출들의 첫 상대가 선배님이신 거 아시죠. 입 봉하면 선배님 꼭 잡고 싶은 배우 선배님이 1위입니다.’ 라고 하면, ‘꼭 입봉하쇼.’ (웃음) 그런 말들이 고맙더라고. 그런 말이 내 힘이 되지. 하지만 배우는 항상 염려스러운 게 있어. 수많은 배우들이 그렇지만 어느 날 주목 받다가 어느 날 사라질 수 있거든. 진짜 두렵잖아. 내가 지금은 이렇게 인터뷰하고 그래도 어느 순간 날 아무도 안 찾아주면 난 두렵다니까. 그런 강박 관념이 있어, 배우들은. 그건 어쩔 수 없어. 그런 것들과 계속 싸워야 되는 거지. 생각보다 힘들어. 그게.

아무래도 인상이 강한 것이 그런 캐릭터를 자주 맡게 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혹시 그로 인해서 손해 본 건 없나?
조금 괴로웠다. 어릴 때부터 눈매가 좀 강해서. 흰자위가 너무 많으니까. 조금만 눈을 부릅떠도 사람을 잡아먹을 듯 해 보인다는데. 어쩌겠어. 생긴 게 이런 걸. (웃음)

반면 우직한 신뢰감도 느껴진다.
고집스러워 보이니까. 자기 신념을 지킬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보면 또 나쁜 건 아닌 것 같아. 어쨌든 배우로서 강렬하게 보인다니까.

<바르게 살자>의 경찰서장 이승우 역할은 좀 애매모호한 역할이다. 얄팍한 듯 하면서도 강직해 보이고, 얼핏 보면 악역인 척하는 인물처럼도 보인다.
악역인 척한다기 보단 얘가 좀 명석하고 두뇌가 빨랐던 거지. 정치를 너무 잘 한다는 거야. 매스컴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놈이고, 이걸 어떻게 이용해야 대중들의 심리를 잘 구슬려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러니까 그걸 감행하는 건 매스컴을 통해서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던 거지. 그래도 정직한 놈이야. 아무래도 이승우가 내가 연기한 캐릭터들 중에서 저하고 좀 비슷한 거 같아. 그니까 본질에 대해서 어떤 것이 옳다는 걸 분명히 알지만 내가 이걸 옳다고 주장만 한다고 해서 되진 않는다는 거지, 이 사회가. 그래서 어떤 이슈를 벌려야 돼, 매스컴을 통해서 한마디 했을 때, 이게 더 천파만파란 거지. 내가 백날 혼자 떠들어봤자 미친 놈 취급만 당하고 앉아있어야 하는 거야. (웃음) 그런데 똑똑한 놈이라면 어떤 걸 통했을 때 진실이, 아니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명확성이 더 정확히 꽂힐 수 있는가를 아는 거야. 그런 면에서 이승우는 명쾌한 놈이고 똑똑한 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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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위기에 직면한다.
일단 이승우는 나쁜 놈은 아니라는 거지. 너무나 똑똑하고, 사회의 구조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끌어들였는데 그게 잘못이었어. 한 인간의 진짜 정직성에 이승우의 명석한 수가 반대로 당한 꼴이니까. 왜냐면 이승우는 정도만이 정직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선택한 거잖아요. 어수룩하게 선택한 게 아니라 그런 고집 있는 애가 필요하고,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거죠. 물론 한 켠엔 얘가 제대로 해낼 까란 의심도 있었겠지만 그 안에선 정도만 밖에 없었던 거지. 그런데 얘가 예상 밖으로 앞서갈 때, 화는 나지만 그를 통해서 깨닫게 된 거죠. 그래서 놔두지. ‘끝내라면 끝내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아니야. 어차피 이제 다 포기했고, 어디 한번 가보자. 내가 굴복하든 나도 한번 너하고 싸우고 싶다. 진정으로 싸움하자. 너 같은 애가 없어서 내가 못 싸워 본거다.’라고 마음먹은 거야. 그래서 그냥 적당히 보여주고 풀려고 했는데 정말 정직한 놈을 만나서 진짜로 가는 거지.

어쩌면 정도만을 통해서 이승우란 인물의 본질이 복원되는 것 아닐까?
도지사와 대화하는 씬에서 도지사가 내가 와서 어쩌고 하는데, ‘도지사님, 방해하고 계시거든요. 가시죠.’ 냉정하잖아, 이승우가 나쁜 놈이라면 벌써, ‘아 오셨어요~.’ 이러면서 아부 떨었겠지. 그건 아니라고. 일에 대해 철저한 놈이야. 너무 철저하다 보니까 그 철저성에 대한 자신의 가오, 무너뜨리기 쉽지 않은, 자존심이 많은 사람이지. 대신 자존심을 건드리니까 거기서 이제 끝까지 가는데 결론적으로 옳은 건 옳다고 인정하고, 대신에 자신의 임무가 있으니까 잡아들이자고 애쓰는 거지. 그리고 다시 복권시키고, 복직시키잖아. 그러니까 참 메리트 있는 인물이야, 이승우가. 그래서 난 처음에 시나리오 보고 너무 좋았어. 철저하게 필요한 사람이야, 현실적으로. 현실적인 처세에 능하지만 마음속에는 바르게 살자고 하는 정도만 같은 색깔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 단지 그렇게 살아봤자 이 세상 날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마음속으로 그리던 정도만 같은 인물을 봤을 때, 끝까지 한번 가고 싶은 거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그걸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 멋있잖아. 크으~! (웃음)

그런데 항상 리더역할을 많이 하는 듯싶다.
그게 아무래도 성향 같아. 실제로 내가 회장직을 세 개 맡고 있거든. (웃음)

아니, 어떤 회장직을 세 개씩이나.
그러니까 <먼 길>팀의 회장직을 맡고 있고, 산악회 회장직하고 스쿼시 동호회 회장직을 맡고 있지. 그게 성격 때문 같아. 리더라는 건 좀 나서고 싶어하고, 어떤 일을 할 때 결속적으로 책임감 있게 밀고 나가는 사람이잖아. 리더는 말보다 행동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 그런 면에서 내가 제일 신뢰하는 건 말보다는 행동이거든. 말은 누구도 다해, 사실. 말로만 아프냐고 묻는 사람보단 캔 하나 사가지고 말없이 먹으라고 하는 사람이 더 따뜻한 사람이잖아. 말없이 그런 사람이 정말 리더거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큰지도 모르겠지. 또 하나는 이제 모임을 갖다 보면 내가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하게 되더라고. 연기자를 한 10년 하다 보면 무당 된다고 그래. 그래서 어떤 사람과 한 시간 동안 얘기하다 보면 ‘저 친구는 어떤 성격이구나, 저 친구는 어떻게 치고 들어가야 편하겠구나, 이렇게 하면 이 친구가 되게 불안해하겠구나’ 이런 걸 내가 빨리 아는 거 같아. 그러니까 빨리 친숙해지는 거지. 빨리 끌어오는 편이야. 내가.

그래서인지 나도 처음 만났는데도 참 편하다. (웃음)
그러니까 이게 편하게 사람을 끌어오는 거야. 끌어오다 보면 모이게 되고, 그런 다음엔 계속 모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모든 사람들이 회장을 맡아라, 그러는 것 같아. 그리고 난 정말 내 말에 책임을 지려고 하거든. <먼 길>팀도 신년회 때 내가 건방진 말을 했었는데 결국 했어. 내가 제작해서 우리가 단편도 만들었거든. 어차피 우린 영화 만남이니까, 우리 <먼 길> 영화팀 거기 다 있거든. 다들 프로페셔널이야. 우리 <먼 길>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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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이라면 <엄마>말인가?
그렇지. <엄마>팀이 다 모인다. 지금도 한 달에 한번씩 만나는데, 그게 벌써 2년 넘었잖아. 그 모임을 갖고 오다 보니 내가 한가지 깨달은 건 우리가 다 프로들인데 가격으로만 따져도 이게 지금 몇 백억의 자산 아닌가, 근데 우리가 술만 마시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 영화로 만났는데 뭔가 좀 영화적으로 후배들한테 본보기가 되려면 우리도 영화작업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 해보자, 우리끼리. 우리가 배우 다 있고, 촬영감독, 조명, CG 감독, 녹음실 대표 다 있으니까 못하는 게 없지 않나.

모임 자체가 거의 프로덕션 급이다. (웃음)
프로덕션이지. 그래서 그런 꿈이 생기더라고. 왜 우리가 투자에 목숨을 걸고 우리가 끌려가야만 하나, 난 영화는 아직도 감독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감독이 다 죽었잖아. 자기 색깔 내는 감독이 별로 없어. 이창동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 같은 성공한 몇 명을 제외하면 없지. 하지만 그 분들도 투자자들한테 동의를 얻어야 되거든. 난 구성주 감독이 갖고 있는 힘이나 재치, 상상력이나 인간적인 마인드가 너무 좋아. 그래서 그 사람과 친숙해지고 용기 주고, 같이 어울려서 다음 작품 기약하고, 담에 또 만나면 해보자, 이렇게 되다가 이제 다음 작품을 단편으로 만들어보자 까지 온 거지. 그래서 이제 일이 추진되고, 단편을 만들었잖아. 그건 너무너무 행복한 거야. 그런 행동이란 게 난 중요하다고 생각해.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본인의 말에 대한 어떤 책임감을 많이 느끼나 보다.
내가 말을 뱉은 이상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게 중요하지. 물론 다 지킬 수 없을지도 몰라. 나도 인간이라 그럴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10가지 중엔 한 8가지 정도는 지켜야지. 그니까 말이 중요하다니까. 그러니까 말을 함부로 뱉지 못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있을 거 아냐, 또 내 얘기를 들을 거 아냐, 또 글을 읽을 거 아냐, 그럼 정말 저렇게 하는지 볼 꺼 아냐, 물론 내가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건 아닌데 하여튼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거지. 정말 옛말이 그른 게 없어,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고, 사람을 울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고. 하여튼 말을 뱉은 이상 그 책임을 분명히 져야 된다라는 거.

그런 면에서는 이승우란 캐릭터가 상당히 와 닿는다.
그렇지. 이승우는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해서 책임을 졌으니까!

물론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긴 했지만 끝까지 지켜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안 그런 놈이라면 다른 수습을 했겠지. 머리가 빠른 놈이니까. ‘넌 정리하고 뒤로 돌아가’라고 명령했겠지만 정작 내 가슴은 쓰라리겠지. ‘난 이런 적 없었는데’라고 생각했을 테니. 한편으로 이승우는 저런 친구를 만난 적이 없었는데 ‘아직 시대가 살아있구나’라고 생각했겠지. (웃음) 기분 좋았을 거야. 그 친구가 드러내진 않았지만.

<바르게 살자>는 장진 감독 특유의 연극적 코드가 강한 작품이다. 그런데 <바르게 살자>가 하나의 연극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은행은 하나의 무대라고 볼 수 있고, 이승우란 역할은 그 연극의 연출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그럴 수도 있지. 맞네. 밖에서 다 연출하는 거지. 그런데 연출이 잘못된 거지! (웃음) 가끔 그럴 때 있거든. 연기자는 무대에 생활화되려 하고 그 인물이 돼버려, 완전. 사실 그 인물이 되면 안되거든. A도 아니고 B도 아니고 C의 인물을 만들어내야 되는데 그에 몰입해버리면 그 인물이 된다고 생각해버리는 사람도 있거든. 그건 연기가 아니야. 그건 나쁜 연기지. 연기를 그럴 듯하게 만드는 것이지, 내가 그 사람이 될 순 없어. 그건 잘못된 상상이고, 연기 안에서 저 사람은 저 사람이야. 손병호도 아니고 이승우도 아닌 걸 합쳐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는 게 연기자지, 그게 좋은 연기고. 어떻게 내가 이승우가 돼. 손병호가 어떻게 완전히 없어져. 안 없어지지. 내 눈이, 내 코가 있고, 버릇이 있고, 목소리 톤이 있는데 어떻게 변해. 단지 이승우의 마인드 자체가 내가 갖고 있던 마인드에서 내가 그 사람을 닮아가려고 각자 분량의 소스를 바꾸는 거지, 비율을. 여럿 비율을 바꿔서 이 사람화되려고 노력하지만 내 비율의 반은 내가 갖고 있어. 이 사람 반의 비율을. 생각의, 마인드에 대한, 철학에 대한 비율도. 그래서 그게 교차돼서 새로운 생각과 사고가 생기고, 그 때문에 행동하게 되고 보게 되는 거지.

그래도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캐릭터에 동화되기도 힘들지 않나? 그런 경지에 오르면 그게 진짜 엄청난 연기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물론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그런 경우에 연출만 잘 하면 될 것 같은데, 흔한 말로 ‘이거 또라이 아냐’란 말 하잖아. 왜 군대에서도 뭐라 하잖아, 고문관이라고, 고문관. 그런 사람 있다니까. 연극하는 후배들 중에도 어느 날 같이하다 보면 완전 몰입해서 앞뒤 계산 없어지는 녀석들도 있거든. 연극은 연극다워야 좋지만 또 하나의 약속이 있는데 그걸 넘어서는 사람이 있는 거지. 영화 촬영 중에도 카메라가 여기 있는데 혼자 저기 쳐다보면서 몰입하면 좋겠어? 안 되잖아. 연기자는 그걸 지켜줘야지. 그런데 지나치게 몰입해서, 평상시에도 그 역에 빠져가지고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그냥 때려주고 싶지! (웃음) 정도만이 그런 거야. 연출을 해야 하는데 너무 빠져버린 거지. 근데 어쩔 수도 없는 거야. 연극은 시작됐어. 무대는, 관객 앞에서 시작했다고. 연습도 안 했지만, ‘너 괜찮지. 할 수 있지. 자, 너 믿고 간다. 진짜 네 맘대로 해봐.’ 그런데 거기까지 갈 줄은 몰랐지. (웃음) 무대에서 약속대로 안 하는 거지. ‘야! 너 왜 그래! 임마!’ 이러는데 관객이 그걸 또 봤잖아. 미치는 거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거야. 계속 ‘야, 네가 들어가서 쟤 끌고 와.’ 그런데 그것도 안 되니까 미치는 거지. 무대에서. 그거랑 똑 같은 거 같아. 어쨌든 딱 맞는 비유네. 연극과 연출이라, 하나 건졌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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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도만이란 인물이 연출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혼자 즉흥적인 연기를 펼친 셈인데 궁극적으로 연극 자체는 성공한 것 아닐까?
살았지! 연극은 살았어! 그 예측할 수 없는 파장이 재미있지! 그것도 내가 어쩔 수 없는 거야.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데 관객들이 재미있어하거든. 처음엔 별 반응을 안 보이던 관객도 너무 재미있어한단 말이야. 그럼 여기서 끌어낼 수도 없고, 막을 내릴 수도 없어. 그럼 관객들 미쳐. 막 내리면 이거 우리가 다 환불해줘야 돼. 그럼 안 되잖아, 그건. 어떻게든 가보는 거지. 그래서 가잖아. 관객들 눈치보고. ‘야, 끝까지 조심해. 일단 못나가게 막고 보자. 그리고 쟤도 그 이상은 못하게 해. 이 정도 선만 지키게 만들어. 자기가 결정짓게 해봐. 일단 잘 가고 있어. 그냥 끝까지 가.’ 그래서 끝까지 지켜보는 거지. 그리고 끝나고 나서 엄청 박수가 쏟아지는 거고. 하지만 연극으로 따지면 롱런 했지만 결국 대박은 안 나는 거지. 연극이 일관성이 없잖아. 다시 만들 수 없는 무대야. (웃음)

하지만 배우로서는 인정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난 끝나고 나서 배우로서 자격을 인정해주는 거지. ‘인정한다. 너 정말 배우로서 아주 뛰어난 놈이고, 넌 배우 자격 있어. 하지만 이제 너하고 다시 작품할진 모르겠다.’ (웃음) 그렇게 되겠지. 무서워서 다시 하겠어? (웃음)

<바르게 살자>엔 연극 무대 출신 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 비슷한 계보를 걷고 있는 배우들과 함께 촬영한다는 게 반가웠을 것 같은데.
장진 사단만의 영화들이 그런 독특한 형태나 구조를 낼 수 있는 건 이유가 있어. 한 달간 연습을 하거든. 무대에서 씬 하나를 놓고 계속 만들어보는 거야. 연극 연습이랑 똑같지. 장진 감독하고 라(희찬) 감독도 보면서, ‘뭐, 불편한 거 있어요?’라고 묻고, 그럼 ‘이 구조가 좀 뭔가 그렇지 않나?’ ‘아, 그런가?’ 이런 식으로 배우와 감독이 의견 교환하면서 새롭게 고치고, 쓰고. 이렇게 연습하니까 뭐 그냥 영화 찍는 거지. 연극 연습한 걸 그대로 찍는 거 같은 거야.

하지만 무대와 현장과의 괴리감도 발생할 법한데, 그런 건 어떻게 극복하나?
물론 현장에 오면 카메라 구도에 신경을 써야 하지면 동선이나 연기적인 약속이 다 되어있으니까 훨씬 더 편하고 연극적일 수 밖에 없지. 상호 다 아니까. 단지 그걸 어떻게 영화적인 표현으로 카메라에 담을 것인가는 우리가 고심을 못 했겠지. 그건 이제 스텝 쪽에서 할 일이고, 라 감독이나 촬영 감독이 할 일이니까. 그러면서 이제 그 쪽은 우릴 믿으면 되는 거고. 그쪽도 리허설 보면서 어떻게 찍을까, 어떤 표정이 나을 것인가, 어떻게 가야 한다는 걸 아니까. 그니까 하나의 소재가 연극적으로 다 나오는 거지.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연습해보니까. 하나하나 아이디어들까지 검토해보고. 결국 감독만의 영화도 아니고 배우들이 감독의 생각만 따라가는 것도 아니지. 배우와 감독이 함께 연습하며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색깔들이 나오니까 독특한 거야. 일반적으로 영화는 그냥 콘티 짜 온대로 맞춰가면 되는데, 우린 그 전에 이미 어떤 게 좋을지,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직접 고민해보고, 함께 만들어보니까.

단단한 팀워크를 구축시키는 과정이라 볼 수 있겠다.
일단 우리끼리는 재미있겠단 믿음이 생기지. 다만 이게 실제로 관객에게 재미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건 한번 해보자는 믿음이 생기지. 그래서 장진 사단의 매력은 충분한 연습을 한다는 것, 씬 분석부터 시작해서 연극처럼 모여서 한 달간 연습해. 그게 너무 신나더라고. 그리고 나중에 실제로 촬영할 땐 편안하지. 그러니까 안정된 연기가 나오고.

그런데 요즘 스크린에서 맹활약하는 배우들 중 연극 출신 배우들이 많이 눈에 띈다.
좋은 현상이라고 봐. 나는 연극 무대가 영화나 TV, 그 밖에 모든 매체에서 활동하는 연기자를 위한 기본적인 보고라고 생각하거든. 배우는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를 다져야 되고, 그를 통해 다져지는 거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그렇게 성숙하게 자라난 배우들이 영화나 드라마 가서 자리를 잡아야지, 좋은 영화가 나오고 좋은 드라마가 나온다고 생각해. 우리가 신성일 시대의 영화와 지금 영화를 단순히 비교하면 배우들의 연기가 많이 향상됐지. 그게 다 연극 배우들이 향상시켜놓은 거라고 생각해. 물론 분야적으로 접근하는 생각이 많이 변해서 전문적인 공부도 많이 한 덕분에 작품의 질이나 감독들의 기량도 많이 발전했지. 하지만 제반적 조건으로 봤을 땐, 연기자들이 중심이 되는 거지. 결국 배우의 힘이 제일 중요한 거잖아. 결국 그 영화를 만든 배우들이 다 연극했던 사람들이야. 드라마도 마찬가지지. 다 연극에 있다가 TV로 가고, 영화로 가고. 물론 옛날부터 잘 생긴 사람들이 기회를 얻기 쉬웠지. 옛날에도 외모가 주가 된 건 사실이니까. 근데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적인 면이 중요하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그게 어느 정도 무너진 거 아냐. 진짜 연기자가 필요하게 된 거지. 그럼 연극 무대만큼 풍부한 연기자가 어디 있겠어, 없지. 그러니까 그만큼 풍부한 영화를 만들어내고 보여줄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런 배우들을 쉽게 찾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영화 투자자나 프로듀서나 감독이나, 무조건 연극 무대는 지켜봐야 된다고 생각해. 찾아야 된다고, 좋은 배우를. 그래서 (설)경구도 찾고, (송)강호도 찾았고, 다 찾은 거 아냐. 처음부터 누가 스스로 나왔겠어. 찾아 다녔다고. 근데 왜 지금은 그 몇몇만 가지고 투자하려고 하느냔 거지. 지금도 찾아 다녀야 한다는 얘기야. (박)해일이도 그렇고, 다 연극에서 찾아낸 거 아니야. 지금도 강호 같은 인물, (최)민식이 같은 인물, 해일이 같은 인물을 또 찾아야지. 물론 지금도 누군가는 찾고 있겠지만 계속 찾아내야 하는 거지. 뭔가 투자가 있어야 돼. 그래야 젊은 후배들이 연극을 통해서 열심히 자기 모습을 다듬어야겠단 생각을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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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대를 거치지 않고 데뷔하는 연기자들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내가 선배로서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건, 대학만 졸업하면 모든 것이 다 됐다고 생각하는 모습들, 그냥 무대에 잠깐 서면서 영화나 갈 수 있을까 생각하고. 난 그게 좀 안타까운 거야. 난 아직까지 대학이란 건 그냥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고 이제 사회에서의 시간이 그걸 제대로 공부해야 시기라고 생각해.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연출가나, 좋아하는 극단이나, 아니면 좋아하는 작품이 있거나, 아니면 자기들만의 마인드가 맞는 사람이 있는가를 찾으면 일단 5년에서 10년간은 그 안에서 실력을 쌓고 있어야지. 내 풍성함을 위해서.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연기가 지향할 수 있는 정점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나도 연기의 규정은 모르겠어. 연기가 잘 됐다 생각하는 어느 순간 딜레마에 빠지고, 그런 딜레마가 3~4년 가다가 다시 또 깨달음이 올 때가 있지. ‘아, 이런 거였구나!’ 그걸 믿었다가도 다른 순간되면 또 그냥 빠져. ‘어,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이게 아니라 다른 거 같은데, 뭘까? 모르겠어.’ 또 그러면서 바꿔. 그렇게 끝없이 바뀌는 게 연기라고. 그런데 고작 대학교 연극영화과 나왔다고 자기가 무슨 다 아는 양 구니. 물론 빠른 친구도 있어. 끼가 많은 친구들. 기본적인 연기를 위해서 우리가 노력도 하고 수행도 해야 되지만 선천적인 끼로 그걸 넘겨버리는 애들도 있어. 선천적인 재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들도 재질만 가지곤 안돼. 재질을 통해서도 노력이 있어야 되고 자신만의 후천적인 경험이 있어야 그 재질도 꽃이 피는 것이지. 재질만 가지고 믿으면 안돼. 오래 못 가, 그건. 깊이가 없거든.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젊었을 때 신구 선생님이 오셔서 그러시더라. ‘그냥 10년 동안 옆도 보지 말고, 뒤도 보지 말고, 널 믿고 그냥 가. 열심히 무대에서만 해. 그 뒤에 널 돌아보면 널 지켜보는 사람들, 네가 가야 할 길들, 다 보일 거야.’ 그때 그게 정말 딱 옳으신 말씀이셨어. 그 시기엔 내가 몰라. 아직 철학도 없었고, 날 다그칠 시간도 없었으니까. 진짜 서른이 넘어야 돼. 서른이 넘어야, 산도 보이고, 사회도 보이고, 인간도 보이지. 성숙한 만큼 내 가치관도 생기고, 어떤 철학도 생기고. 철학이 없는 사람은 예술가 못 해. 자기 철학은 뚜렷해야 돼. 연극 연출가든, 연기자든 자기 철학이 뚜렷해야지, 정확한 내 마인드를 가지고 어떤 코드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아무것도 못해. 자신이 생각해본 인간적인 철학들이 분명히 무르익었을 때, 그 때 정말 또 하나의 연기적인 경험이나 풍부한 눈빛이 나올 수 있는 거라 생각하지. 그런 면에선 후배들이 좀 급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 그런데 하도 초스피드한 빠른 시대라서. (웃음) 예를 들어보자고. 젊은 가수들만 봐도 금방 나왔다가 사라지고. 노래는 안 하고 그저 춤이나 외모만 신경 쓰니까 금방 질려서 그러는 거 아냐. 솔직히 그런 애들 홍대 앞이나 클럽만 가도 수두룩한데 오래 가겠어?

최근에 부산영화제에 대한 말도 많다. 개막식 날 과열된 열기부터. 어떻게 생각하나?
부산영화제 얘기가 잘 나왔는데, 이대로 가면 부산영화제 정말 위험하다. 이번에 유명한 감독들도 많이 왔잖아. 유명한 해외영화제 위원장들도 왔고. 그런 분들 정도는 알아서 잘 모셨어야지. 솔직히 우리 대중이 해외의 유명한 감독은 잘 모르잖아. 그러니까 솔직히 기자들도 그냥 아는 사람만 포토 하지. 수많은 배우들 중에서도 모르는 배우는 안 찍는 판에 그 사람들을 챙기겠어? 그거 무시당하면 얼마나 아픈지 알아? 그래서 안가는 배우들도 많을걸. 위원장을 비롯해 영화제 관계자들이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야 돼. 경호업체부터 시작해서 자원봉사자들까지. 이번에 누가 온다는 걸, 사진부터, 경력부터, 필모그래피까지 다 교육시켜야지. 왜? 문화를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모르는데 그 사람 예술에 대해서 누가 알겠어. 엔니오 모리꼬네? 잘 모르지, 대중은. 연예인보고 소리지르는 20대 애들이 뭘 알겠어, 그 분을. 외국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그 감독이 어떻게 생겼는지, 몇 살인지, 깊게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 거야. 근데 그런 유명인사들을 다 데려다 놓기만 하고 무식하게 수행을 한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거지. 그럼 그 사람은 뭐가 돼. 사실 영화제가 제일 인정해줘야 할 사람인데, 얼마나 정말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겠냐고. 진짜 영화인을 무시하면서 어떻게 영화제라고 할 수 있어. 제대로 교육을 시켰어야지. 경호업체부터 자원봉사자까지. 최소한 엔니오 모리꼬네 같은 감독이나 선댄스 영화제 위원장 왔을 땐 기본적으로 동시 통역사까지 2명 정도 붙이고 수행했어야지.

내실을 다지기도 전에 규모가 너무 커져버린 건 아닐까란 인상이 들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있었고.
실속은 없고 뻥튀기만 됐지. 과장만 하고 실제로 뒤에 보면 아무것도 없어. 옷만 화려하게 입으면 뭐하냐고, 안에 때가 잔뜩 있는데. 올 해 부산영화제 정말 문제가 많다니까. 반성 많이 해야 돼, 정말. 사실 어제도 부산영화제 갔다 오신 이명세 감독님과 만나서 우리끼리 토로를 했어. 토로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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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일선에 계시는 분들의 느낌이 그렇다면 정말 심각한 거라고 생각된다. 이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상에서 두드러지게 활약하는 중년 배우들이 단순한 희화화의 역할을 하거나 혹은 단순한 보조 역할로 소비되는 쪽에 치우쳤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도 한편으론 옛날보단 참 좋아졌다. 그것이 방금 말한 대로 하나의 피상적인 볼거리, 아니면 끼워 맞추기라 치더라도. 다만 그 중간이 없어서 안타까운 거지. 그래도 남자 배우들은 좀 괜찮아. 근데 우리 여배우들의 아픔이 뭐냐, 한 이십 대에서 삼십대로 올라오면 막 없어지는 거야. 한때만 해도 강수연 씨도 있었고, 심혜진 씨도 있었고, 옛날엔 배우들이 다 있었다고, 여배우들이. 그런데 젊은 애들이 오지, 그럼 갑자기 사라지는 거야. 이건 감독,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이 문제라니까. 그 깊이나 삶을 쉽게 생각 안 하려고 해. 영화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자체가 질서가 없는 거야. 위계질서도 없고, 모든 게 없어. 그러니까 이렇게 되는 거야. 위계질서를 지켜줘야 되고, 존중해줘야 되고, 전통을 이어가야 되는데 우리는 전부 다 어느 순간 무너져 버렸잖아. 그래서 이번에 오현경 선생님께서 영화 들고 부산영화제에 가셨다가 후배들한테 쓴 소리 많이 하셨잖아.

나도 그 소식은 들었다.
그 말씀이 맞아. 나도 요즘 배우들이 왜 그렇게 폼 잡고 다니고, 자기 맘대로 스케줄 조정해서 배우들에 맞춰서 영화들이 찍히고, 이게 뭐야. 정말 잘못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 그건 우리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 자체의 문제이기도 해. 한국의 모든 체계가, 위계 질서가, 질서가, 전통이 하나도 지켜지는 게 없어. 기성 세대가 그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다 그런 거지. 매니지먼트가 커지고, 매니저들의 힘이 점점 생기고, 그러면서 배우를 지들이 그렇게 만들어. 왜, 그것이 자본주의의 논리니까. 물론 이해는 해. 자본주의에 대해서. 하지만 일본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도 분명히 전통은 존재한다고. 그걸 인정하는 가운데 새로운 게 또 나오는 거지. 이렇게 다들 전후가 공존해 가는데, 우리는 그게 없어. 수요가 사라지면 그에 맞춰서 이상한 것들이 나오는 거지.

오래 지속되기가 힘든 것 같다. 전반적으로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말이다.
내가 연극할 때부터 일간지 기자들한테 이야기하는 게, 단순히 문화부 기자를 잠깐 컨택해서 넘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정말 문화부일 때 고작 5년만이라 해도 문화부 공부 좀 해라. 연극이 뭔지, 책도 보고, 인물도 누가 있는지 옛날 자료도 좀 찾아보고. 예를 들어서 인터뷰 올 때 그 사람의 모든 연극은 못 봤더라도 그 사람의 기본적인 색깔이나 사진, 예전에 인터뷰한 거라도 읽어서 그 사람을 다 이해하고 와서 이야길 해야지. 대뜸 이름 뭐냐, 나이는 몇이냐, 이런다니까. 게다가 예전에 나의 스승인 오태석 선생한테 그렇게 해서 정말 그 사람 때려 죽이고 싶었던 적도 있어! (웃음) 정말 그건 기본 예의가 없는 거 아냐? 그렇게 이게 만들어져 온 거야. 이런 판에 우리가 다시 질서를 지킨다는 건, 물론 좋은 마인드지. 그렇지만 너무 아픈 거야. 힘들거든.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이렇게 되는 거지, 부산영화제처럼.

그렇다면 전통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나?
선별이 있어야지, 선별의 기준도 있어야 하고. 그게 바로 전통을 이해하는 모습이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전통이 없는 문화에서 살다 보니까, 모든 현실이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일본만 해도 잘 지켜지는데. 우리가 일본 무시하면 안돼. 우리도 배울 건 배워야 되니까. 일본만 해도 위계질서가 있거든. 커리어에 따라 틀려, 매니지먼트라도. 예를 들어서 내가 20대에 스타가 됐다 이거야. 그럼 다 필요 없어, 그냥 올인해! 이게 현실이야. 물론 배우는 자기한테 올인하니 좋지. 그러다가 결국은 이용당해. 배우로서 그 사람이 인간이고, 깊이를 만들어줘야 되잖아. 매니저란 게 작품 선택을 잘 해주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훈련시켜 줘야 그게 진정한 매니지먼트지. 잘 나갈 때 어떻게든 팔아먹으려고. 그러니까 권상우가 아프잖아. 상우가 나쁜 친구 아니거든. 남이 그렇게 만드는 거야. 그러다가 나중에 이용당한 거지. 돈만 벌어먹고. 배우로는 안 키워주고. 그래서 고소하고 고발하고.

결국 시스템의 문제다?
배우들도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되겠지만 배우들도 어쩌겠어, 매니지먼트가 없으면 안 되는걸. 매니지먼트가 다량으로, 이 배우면 끼워주기 세네 명. 다 그런 식으로 팔아먹어, 지금, 매니지먼트에서. ‘우리 배우 누구? 그럼 두세 명 더’ 그럼 다 해줘야 돼. 그럼 감독도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러면 투자를 안 해주니까. 그니까 투자자의 문제지, 이거 문제가 많아.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근데 확실한 건 자본이 들어오면서부터 잘못된 거야. 자본이 들어오면서 자본에 대한 권력들이 좌지우지하다 보니까 감독들이 힘을 잃고, 감독이 원하는 색깔대로 시나리오도 못 쓰고. 흔한 말로 어떤 영화감독이 시나리오를 써서 갔더니 잘 고쳐오라고 해서 입봉을 해야 하니까 계속 조건대로 한 세네 번 걸쳐 그 짓을 하고 막상 뚜껑을 딱 열어보니 제 작품은 하나도 없고 이상한 영화가 됐다잖아. 그래서 못하겠습니다 하고 나왔대. 지금 그게 현실이라니까. 입봉하려면 어쩔 수 없이 웃기는 코미디나 해야 되고, 어떻게든 투자 받아야 되고, 일류 배우를 잡아야 되고. 자기가 아는 좋은 배우가 연극에 있어서 그 배우를 좀 데려가고 싶은데, 힘이 없으면 안 되는 거야. ‘쟤는 누구야, 모르는 애잖아, 투자 안돼!’ 이러니까. 그러니까 좋은 배우를 찾기 힘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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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가수들조차도 다들 연기로 전향하는 상황이다.
그걸 난 이해 못하겠어. 도대체 가수 애들을 왜 데려와서 연기하는지. 그런 게 다 매니지먼트 힘이라니까. 가수가 돈이 얼마 안되니까 연기로 다 튀는 거야, 요즘 가수 다 죽었잖아. 음반 시장 죽으니까 다 연기하잖아. 우스운 거지. 연기자가 수두룩 한데, 정말 잘 하는 애들 있는데 다 놔두고. 그 자체가 잘못된 거야. 벌써 영화 판에 전통이 무너진 거지. 배우란 개념도 무너진 거고, 이미, 이 판에서. 거기에 뭘 어떻게 하겠어. 그럼 결론은 생존게임이야. 어떻게든 먹고 살려면 인맥을 건지든지, 좋은 매니지먼트에 적을 두던지, 감독을 막 구슬려보던지, 뭐, 그것도 아니면 인터넷에서 옷을 벗던 사고라도 쳐서 이름을 내던지. (웃음)

연기자가 되겠다는 의식보다 스타성에 집착하는 게 문제 아닐까. 그러니까 젊은 배우들한테 지나치게 스포트라이트가 몰리는 것 같다.
그저 스타가 되면 된다는 생각이지, 검색 1위면 떴다 이거야. 이런 식의 사고를 갖고 있다고. 특히 인터넷도 문제야. 사람을 가볍게 만들어버려. 이게 어디서 잘못 된 거냐고 물으면 답답하지. 나도 메릴 스트립 같은 여배우들이 우리나라에도 나왔으면 좋겠어. 근데 지금 선생님들 다 웃기는 캐릭터밖에 못하잖아. 김수미 선생님조차도. 하지만 그나마 그거나마 다행인 거야.

다행이다? 어째서?
그 분들이 그나마 그 나이에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거지. 왜? 그래도 영화적으로 다양해진 거니까.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면 정말 다양성의 측면에서 좋은 배우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뭔가 역할을 맡을 수가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지. 또 이렇게라도 보여져야 관객들도, 저 어른들도 대단하구나, 연기 잘 하시는 분들이구나, 애들만이 연기하는 게 아니구나, 라고 느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중년연기자들한테 익숙해지면 40대, 50대, 60대까지 점점 연령의 폭을 늘려도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겠지. 익숙해져야 되니까. 개인적으로 난 좋은 청사진을 보기 위해서 이런 시기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것이 아까 말한 대로 어떤 매개체가 될지언정 그래도 다양성의 면에서 배우들이 어떤 가능성을 염두에 둘 테니까. 나도 배우로서 열심히 생활하다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나 긍정적인 마인드가 생길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는 참 좋은 거 같다.

<바르게 살자>에서 이승우의 본질적인 의도는 쇼맨십이었다. 그런데 그런 의도가 전복되면서 오히려 훈련의 본질을 회복한다. 지금까지 말한 어떤 지적들이 어쩌면 본질을 훼손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안들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수상이었던 처칠을 교통경찰이 교통위반으로 잡고 벌금 부과했다고 통보한 예가 있다더라. 우리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야. 근데 정도만은 했잖아. 경찰서장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세상이 돼야지. 그걸 또 인정해줘야 되고. 그런데 자기의 어떤 일말에 대한 양심이 없고, 자기가 맡은 바에 책임을 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모든 구조에 있기 때문에 그게 힘든 거야.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야.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마시고. 다만 너무 만연해있기 때문에 그렇단 거지. <바르게 살자>는 우리가 잃었던 본질성에 대한 이야기지. 내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할 수 있게 그 책임을 인정해주는 사회 구조에 대한, 정확한 정직성을 바탕으로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책임을 다했을 때, 거기에 대한 배려, 그리고 인정, 그런 체제가 되야 된다. 그래서 이 사회가 따뜻해져야 된다라는 것. 그니까 결론은 바르게 되야 된다는 거지. 그런 구조에서 전통도 지켜지고, 내가 어떤 걸 해도 올바르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고, 그렇게 하고 싶단 욕망도 생기고. ‘나도 정직하게 하면 돼. 저 사람도 됐잖아. 나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 거야.’ 이런 꿈이 생길 수 있는. 그게 없으면 안돼. 정의가 없으면 그런 꿈을 못 그려. 정도만이 정말 인정받는 사회가 돼야지. 나도 저렇게 바르게 살면 복을 받는구나. 내가 저렇게 바르고 옳은 행동을 하거나 내 신념을 굽히지 않고 가면 언젠가 내게 돌아올 몫은 있겠구나 라는 믿음, 그런 믿음을 주는 꿈 있는 사회. 그래서 <바르게 살자>는 정말 따뜻한 영화인 거 같아. 그리고 난 아까 말했던 복원의 힘이 난 분명히 있으리라고 생각해. 게다가 상업적인 재미도 있잖아. 본인이 보기엔 어땠어? 복원의 힘이 느껴지던가? (웃음)

개인적으론 사회적인 불신감이 크기 때문에 <바르게 살자>같은 영화에 감정이입이 되는 게 아닌가 싶더라. 그런데 김지훈 감독과 마찬가지로 경상도 출신으로 알고 있다. <화려한 휴가>에 출연했는데 개인적으로 그 시대에 광주의 외부에서 그 사실을 직접 접한 이들 중 하나 아닌가? 어떤 감회가 있을 법하다.
나도 죄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80년대는 나도 방관자 입장이었으니까. 그 당시엔 알려진 대로 진짜 적색분자들, 빨갱이들이 데모하는 줄만 알았었다. 진상이 밝혀지면서 나도 뒤늦게 알게 된 거지. 아마 김지훈 감독님도 방관자적인 아픔이 있었거나 아니면 그에 대해서 학창 시절에 선배들하고 많이 접하다 보니 언젠가 그 얘기를 해봐야겠단 생각을 했나보더라.

지금 <무방비도시>에도 출연하는 걸로 알고 있다.
지금 한 60% 정도 찍었다. 부산 내려가서 찍었고, 서울 올라와서 찍으면 끝난다. 11월 초쯤 크랭크업될 듯 하네.

거기서도 경찰 역을 맡았다고 하던데.
형사반장! 나 이제 악역 안 하려고. (웃음)

하긴 따님도 학교 가실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 근데 아무래도 대화를 나눠보니 국회로 보내드려야만 할 것 같다.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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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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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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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의 원년 멤버다. 아직도 <난타>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너무 오래했다. <난타>를. 5년 동안 했으니까. 사실 난 영화 하려고 프로필 찍어본 적도 없고, 오디션을 본 적도 없다. 내가 <난타>이후로 접한, 대사가 있는 정극이 연극 <웰컴 투 동막골>이었다. 알다시피 장진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었고. 장진 감독은 한번 연을 맺으면 끌고 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진 감독의 다음 영화에 합류하다 보니까 또 자연스럽게 영화 쪽으로 합류하게 된 거 같다.

초창기 멤버라서 자부심이 강할 것도 같은데. 브로드웨이도 다녀왔고.
브로드웨이 뿐 아니라 외국을 너무 많이 다녔지. 누구도 안 부러울 만큼. 유럽 17개국은 그냥 기본이었고.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두바이. 여기저기 막 다녔지. 너무 좋았다. 국가대표라는 마인드가 생길 정도로 자부심도 엄청 컸고. 난 등에 태극기까지 오바로크해서 달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사실 지금은 로컬 쇼(local show)나 코리아 하우스처럼 관광객을 위한 쇼 형식이 돼버려서 약간 아쉽긴 한데, 어쨌든 외화를 벌어들이는 문화 상품이니까.

장진 감독과 1년 차 선후배 사이라던데. 대학 시절부터 친분이 돈독한 사이였나 보다.
그렇지. 졸업작품도 같이 했는데. 내가 주인공을 맡은 <길>이라는 작품이 있다. 전위극 <까>를 만든 강만홍 교수 작품. 그 때 우리 반 멤버가 황정민, 정재영, 장진 감독, 임원희. 와~! 진짜 빵빵 하지 않아? (웃음) 다 우리 반이었어.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최고네. (웃음)

전에 장진 감독이 <거룩한 계보> 시절 인터뷰 때 류승용 씨가 대학 시절 연기가 좋았다고 칭찬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의외로 졸업 후 선택한 건 <난타>였다. 대사 한마디 없는.
배우마다 시작하는 지점과 정점, 그리고 하향 곡선 같은 게 각각 있잖아. 난 그시기가 내 동기들이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조금 다르거나 늦었을 뿐이지. 나이를 먹거나 안주하게 되면 할 수 없는 작업이 있다. 그게 <난타>같은 거지. 사실 영화는 배우의 길을 걷고자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물론 지금 이렇게 된 게 당연한 결과라거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하다 보면 언젠간 할 수 있겠단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난타>같은 건 나이가 들면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 직접적인 계기는 뉴욕의 라마마 극장에 <두타>가 초대받아서 공연하러 갔다가 거기서 <스톰프(stomp)>와 <튜브(tubes)>같은 넌버벌 퍼포먼스(non verbal performance) 공연을 봤다. 막 두들기는. 그리고 왜 우리나라엔 저런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귀국했는데 송승환 대표님이 <난타> 오디션을 보더라.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오디션 본거지.

뉴욕에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닐 테고.
여비를 우리가 대서 고생했지. 밥도 다 사먹고, 비행기표도 우리가 사서 갔으니까. 그래도 그냥 뉴욕이란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것도 연극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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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그게 지금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필모그래피 적으로도 특별해 보이고.
사실 필모그래피 적으론 전혀 도움이 안 되지. 왜냐면 영화감독이나 영화 관계자들은 대사와 연기를 원하기 때문에. 물론 지금에 와선 도움되는 프로필이 됐지만, 아무 경력이 없는 배우에겐 되려 도움이 안 된다. 만약 <난타> 배우 출신이 영화오디션을 보러 와서, “저 <난타> 했습니다.” 그러면 도움이 안 되지~! 대사를 한마디도 안 했는데~! (웃음) 그런 면에 있어서 내가 <난타>를 좋게 홍보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면 좋겠다. 그런 배우들도 얼마든지 잠재력이 있다는 걸. <점프>나 <난타>에 출연하는 배우들처럼, 배고프지만 열정을 가진 친구들을 돌아볼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나로 인해서.

재미있는 이야길 들었다. 장진 감독과 10년 동안 별다른 연락을 안 하다가 연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갔었다고.
사실 난 그때 대안이 장진 감독밖에 없었다. 내가 장진 감독한테 간 그때가 서른 둘 정도였으니까. 내가 다른 극단에 가기에는 나이가 굉장히 애매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극단은 동인제 시스템이라 오디션 봐서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그때 학연이란 것에 처음으로 도움을 받았지. 장진 감독을 통해. 그리고 그 전엔 장진 감독도 바빴고, 나도 바빴고. 사실 그땐 내가 술을 많이 마시던 때였다. (웃음) 장진 감독은 지금의 직함을 위해서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나도 <난타>로 창작 욕구를 한참 풀어내고 있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되기 위해서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거 같다. 언젠가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만날 인연이었는지도 모르지.

정재영 씨와도 대학 동기다. 거기서부터 이어진 인연이라 <거룩한 계보>에서의 어울림은 당연히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고. 정준호 씨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정준호보단 류승룡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표면적으론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근데 지금 <황진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황진이>가 <거룩한 계보>처럼 마케팅하는 게 당연하다. 솔직히 그게 자본주의니까. 아무래도 스타들이 관객의 눈길을 끌기엔 적합하지. 물론 <거룩한 계보> 당시에 조금 서운한 감은 있었지. 사실 세 친군데~! (웃음) 근데 지금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만약 장진감독이 날 밀어준답시고 ‘정재영, 정준호, 류승룡’ 이렇게 올렸는데, “어? 누구야?” 이러는 것 보단 나중에 영화를 보고 “어? 정재영하고 정준호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류승룡도 눈에 띠던데? 왜 이 배우는 포스터에 없지?” 이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말 듣는 게 더 통쾌하다! (웃음) <황진이>도 마케팅 팀에서 필요한 만큼만 나를 적당히 활용하는 것 같다. 솔직히 마케팅은 상업적이어야 할 자본주의적 메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마케팅이 날 활용하는 게. 그리고 이런 모습은 내가 어느 정도에 와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기자시사 때 무대인사를 하느냐, 그리고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느냐 뭐 이런 것들 있잖아. 무대 인사만 하고 기자 간담회 때 빠지느냐 안 빠지느냐. 이게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황진이> 때도 기자 간담회 후 포토 타임 때, 사진 기자들 요청으로 다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마케팅 팀이 실수를 했다. 되게 당황했지. 내 차례를 빼먹다니. (웃음) 그런데 많이 겪어본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덤덤했지. 오히려 그런 걸 겪어봐서 다행인 거 같다. 나중에 꼭 그런 후배들한테 배려하고 싶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왜 그, 뻘쭘한 거 있잖아! 뻘쭘한 거! (웃음) <천년학> 때는 어떤 기자가 “이번 작품을 임하면서 임권택 감독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조재현 씨, 오정해 씨, 오승은 씨 이야기해 주세요.” 이러더라. 물론 무비스트는 아니었고. (웃음) 그러니까 재현이 형이 마이크를 들더니 어디 기자냐고 묻고 “배우도 기본이 있어야 되듯 기자도 기본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넷이 앉아있을 때 똑같은 질문을 할 땐 나중에 (코멘트를) 자르는 한이 있어도 넷에게 질문을 하는 게 예의다.”라고 하더라. 후배에 대한 배려였지. 재현이 형도 연극 출신이니까.

내심 고마웠겠다.
꽤 고마웠지. <거룩한 계보> 때, 현장 공개를 처음 해봤다. 갑자기 장진 감독이 “야, 승룡이! 너도 해!” 그래서 얼떨결에 끌려갔지. (웃음) 근데 그때 얼굴 표정 다시 보면 되게 슬프다. 기자 간담회 때 파란 마이에 흰 와이셔츠 입었는데, 재영이가 옷 빌려줘서 입은 거다. 내가 이런데 서도 될지 싶을 만큼 너무 어색했다. 그런데 재영이가 갑자기 정준호씨와 자기 가운데에 날 껴 넣는 거다. 그러더니 양쪽에서 막 어깨동무하고. 사실 그때 난 삐뚤어져 있었던 것 같다. 열등감이란 게 사람을 추하게 한다. 사실 난 열등감이 없는 남자라고 자부했었는데 아니더라. 결국 <거룩한 계보> 관련 사진에 그게 남더라. 만약 정재영, 정준호, 나 이 순으로 섰으면 난 잘렸겠지. 사실 요즘에 <황진이> 때도 많이 느끼거든. (웃음) 재영이가 그걸 안거지. 그래서 날 못 자르게 하려고 가운데 넣고 어깨동무까지 한 거다. 나중에 재영이가 그 얘기를 하더라. 그런 자그마한 배려가 솔직히 고맙더라.

그렇겠다. 지금 그 때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겠다. <황진이>에서는 중심인물 중 한 명 아닌가.
그런데 앞으로 그런 후배들이 많이 올라오겠지. 무대 인사엔 오고 기자 간담회 때는 안 오는. 이번에 <황진이> 때도 (오)태경이나 (정)유미 같은 애들이 막 뻘쭘한 게 보이더라. 왜냐면 올라가야 되는지 안 올라가야 되는지 헷갈리니까. 내가 막 당황했던 거 있잖아.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아무도 말을 안 해주는 거야. 홍보 팀이던, 마케팅 팀이든. 알아서 빠지라는 식이지. 근데 무대인사는 하라 그러고. 이번에 태경이나 유미한테도 그런 모습이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도와줬지. 그러니까 무대 인사를 시키던 나중에 간담회에 빠지던 그 기준에 따라서 준비가 안 된 배우들한테는 사전에 적절한 코멘트나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당황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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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가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유명세를 탈만한 작품이 많았다. 물론 본인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감독이나 동료 배우를 잘 만난 덕인 것 같기도 하고.
난 복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내 뒤에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덕분이지만. 일단 장진 감독처럼 유니크(unique)한 글을 쓰는 사람의 작품으로 첫발을 디딘 것부터가 복이었지. 그리고 <열혈남아>하면서 설경구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고. <소나기는 그쳤나요>를 보고 캐스팅을 하셨단다. 어쨌든 감독님께서 총명하실 때 그분의 작품을 했다는 게 영광이지. 흥행의 성패를 떠나서. 가을에 겨울잠을 자려고 먹이를 많이 먹듯이, 에너지 충전을 굉장히 많이 한 것 같다. 앞으로 연기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에너지들을, 임권택 감독님을 통해서. 촬영장에서 해야 되거나 하지 말아야 될 행동들, 또한 임하는 자세들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배웠지. 임권택 감독님한테. 그리고 거기서 조재현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또 <황진이>의 장윤현 감독님은 정말 조용한 카리스마다. 배우의 감정선을, 특히 여배우의 감정선을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런 감독인 것 같다. 그리고 또 송혜교 씨나 (유)지태란 친구를 만났고. 계속 그렇게 연결이 되는 것 같다.

배우나 감독에 상관없이 영화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돈독해지는 편인가 보다. 실제로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그건 내가 스타가 아니기 때문인가? (웃음) 영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잖아. 화가나 시인이나 음악가들과 달리 영화는 철저하게 같이 하는 작업이니까. 차승원 씨도 같이 하는 배우들하곤 일단 굉장히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하거든. 왜냐면 연기할 때 불편하니까. 물론 촬영 후에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남는 건 아니지만 한번이라도 지방에 내려가서 동거동락하며 지낸 친구들은 다 담는 편이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당시 느낌은 어땠나?
너무 편했다. 아마도 처음엔 <아는 여자>였기 때문에 너무 편했던 것 같고. 가벼운 씬이었으니까. 두 번째는 <소나기는 그쳤나요>의 농부 연기였는데 그것도 너무 편했다. 시골이잖아. 난 그런 게 편하거든. (웃음) 사실 난 개인적으로 <고마운 사람>이 너무 편했던 것 같아. 텐션(tension)이 없잖아. 나도 편한 호흡의 연기가 어울릴 수 있겠다고 느낀 게 <고마운 사람>이었지. 사실 긴장하기 시작한 건 <거룩한 계보> 때였지. 아무래도 앞의 영화보단 역할도 커지고 상업적인 성격이 강해지니까 내가 씬을 책임져야 된다는 걸 느꼈거든. 그리고 눈앞의 카메라가 관객과 소통하게 되는 지점이란 걸 깨달았거든. 저 렌즈가 10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지만 백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또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눈도 있지만 DVD를 통해서, 아니면 추석날 TV를 통할 수도 있잖아! (웃음) 렌즈를 눈으로 딱 느끼는 순간,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더라. 그만큼 촬영 기간 동안 자기 관리도 중요하게 되고. 대사나 이런 것도 자연스럽거나 그렇지 못하게 그 날 현장 분위기 때문에 대사도 연기가 어색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평생 남을 장면이라 생각하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더라.

단순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연극의 무대와 스크린의 카메라의 차이를 느꼈다면?
일단 영화는 이야기의 흐름과 무관하게 상황에 따라서 뒤죽박죽으로 씬을 가져가니까 그런 부분이 힘든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을 제일 처음 찍기도 하고, 첫 장면을 제일 마지막에 찍기도 하고. 근데 그게 영화만의 마력인 거 같아. 마치 퍼즐처럼 맞춰가는 작업이니까. 그리고 각각의 분야를 지닌 수십 명의 사람들과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도 연극과 달리 영화를 리얼리티에 가깝게 만드는 작업이지. 또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결과를 보게 된다는 것도 재미있고. 인터넷 관객 수치 등으로 평가를 살필 수 있다는 것도 묘하고. 연극은 관객과 그때그때 다이렉트(direct)로 호흡하고 느끼니까 그날그날에 따라 틀리잖아. 그런 짜릿함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연극과 상대적으로 영화만의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나? 영화는 이런 거구나 싶은.
정말 짜릿한 건, 영화가 배우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조명이나 기타 여러 가지 효과들이 배우를 돕는다. 사실 연극은 배우들과의 호흡, 연습량, 즉 배우들의 역량이 작품을 판가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현장 디렉션에 따라 상황이 변하기도 하고, 분장, 조명 같은 장치적 효과가 배우의 결점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있으면 그걸 잘 모르지. 스크린의 결과를 보고 그분들한테 감사하는 거지. 그래서 갑자기 막 문자 보내게 되고. (웃음) 분장이나 빛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더욱 깊고 진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고. 내 부족한 연기를 채워주는 사람들한테 감사할 수 밖에.

영화의 장치적인 효과를 많이 느꼈나 보다.
많이 느꼈지! 음악도 그렇고. 무엇보다 <황진이>를 통해 조명과 카메라를 알게 됐다. 이제야 비로소! 그 전엔 그냥 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황진이>는 촬영하고 조명, 분장 이런 효과에 유난히 공을 많이 들이길래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촬영 기간이 길기도 했지만. 감정을 따라잡는 조명, 그거 알아? 분위기에 따라서, 반전에 따라서. 배우의 눈빛을 살려주는. 놈이가 옥사에서 이야기하다가 눈가가 갑자기 은빛이 되는 순간, 소름이 쫙 끼치더라. 그건 조명의 힘이거든. 못 느꼈나?

음..솔직히..
그럼 안 되는데! (웃음) 황진이와 옥사에서 대화를 나누는 씬에서 눈가에 은빛이 쫙 돈다. 눈물이 올라오는 순간을 조명으로 딱 잡아준 거지. 그때 너무 소름 끼치더라.

앞으론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도 많아지겠다. .
먼저 영화 캐릭터 전체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어야 되겠지. 전체 영화에서 내가 해야 될 몫이 있으니까. 물론 혼자만 잘 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건 보기 싫고, 영화에 내 캐릭터를 잘 녹여낼 수 있게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야겠더라. 그리고 현장 당일 날은 정말 베스트를 해야지. 후회 없이. 한 컷,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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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열은 <황진이>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다. 비열하지만 가장 솔직한 인간적 욕망을 드러내는 캐릭터. 그리고 내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사극이니까 그 시대에 걸맞은 외관을 위한 노력도 있었을 거다.
<스캔들>에서 배용준 씨 캐릭터를 만든 분장 팀 한필남 팀장님이 외피적인 모습 때문에 굉장히 많이 고민했지. 왜냐면 내가 너무 없어 보이니까. (웃음) 재력가이자 권력가이며 쿨한 바람둥이고, 샤프한 척도 해야 되고, 그런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없어 보이는 거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외피적인 모습을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 살도 많이 빼고. 사실 극 초반이 힘들었다. 희열이란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속내, 까놓고 말하면 바람둥이지. 난 술도 안 마시고, 룸싸롱 같은데 가서 여자 끼고 놀아본 적도 없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너무 어색한 거야. (웃음) 그래서 그걸 이겨내려고 초반엔 노력했었고, 그 뒤로는 쉽게 풀렸던 거 같다. 희열 같은 인물은 지금 이 시대에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결국 옛날부터 계속 있었던 거지. 그런 놈 죽으면, 그런 놈 하나 태어나고. 권력에 대한 야망과 여자에 대한 소유욕을 지녔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는 이중적인, 이런 인물들은 항상 있었지. 평소엔 평강(平康)하지만 외부적인 자극이 닥치면 분노가 일어나고 막 질투도 일어나는 건, 인간 누구에게나 있거든. 나도 있고, 기자님에게도 있고. 난 그런 지점에서 접근했다. 주변 환경에 따라서 누구나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지.

희열이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난 충분히 그럴 수 있단 생각이 든다. 그 정도의 권력을 지닌 희열이 황진이한테 쿨하게 잘해줬는데, 이 여자가 딴 남자를 사모하고 목 빠지게 기다리면 질투가 안 나겠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지만 남자는 살인한다. 여자들은 딱 끊고 말아버리지. 도마뱀처럼. 그런데 남자는 집요하단 말이야. 그런 면에서 희열은 굉장히 솔직한 인물인 거 같다. 단순한 선악 구도에선 악당이지만 탁 털어놓고 솔직하게 보면 제일 인간적이지. 상대적으로 놈이는 굉장히 유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이잖아. 지금 시대를 현재로 옮긴다면 희열은 현직 검사 정도, 되게 잘나가는! 근데 놈이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맨날 경찰서 들어갔다 나오고. 그런데 누굴 택하겠냐고, 요즘 여자애들이. 누굴 택하겠어요? (홍보사 이 모씨한테) (웃음)

(당황한) 홍보사 이모 양: 희..희열?
그래. 당연한 거야. 이 대답이! (웃음) 그런데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거지. 비현실적이지만 올바른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에 경종을 울려주는, 현실적이란 핑계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관들에 경종을 울리는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그 말을 하는 것 같아.

희열 같은 경우는 가장 솔직한 질투가 드러난 인물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사실 놈이가 비겁한 놈이지. 안 그래? 황진이 시집간다니까 꼰 지르고 모른 척 하고. 결국 황진이가 기생 된 건 놈이 탓이지. 결국 끝까지 지켜주지도 못하고, 현실도피적인 인물이지. 안 그래? (또 홍보사 직원한테) (웃음) 아, 근데 이러면 홍보 잘못하는 건가? (웃음)

가만히 보니까 남자 배우 복이 참 많다. 정재영 씨부터, 차승원, 설경구, 조재현, 유지태, 정준호 씨.
이범수 씨랑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웃음) 그냥 뭐 고맙지. <열혈남아>에서 윤제문 씨도 같이 했었고.

윤제문 씨는 연극도 많이 하시니까 연대감도 있었겠다.
그렇지. 나랑 동갑인데. 카리스마도 있고. 좋아요. 사람.

가만히 보니까 동갑 배우가 많다. 차승원 씨도 동갑이고.
70년생 너무 많아. 진짜. 정재영, 황정민 같은 내 동기들부터 시작해서. 친하진 않지만 감우성, 이병헌, 김수로, 김혜수 등 진짜 되게 많네! 아, 강성진도 있네. (웃음)

서울 예대 시절의 인맥들에게 도움을 많이 얻고 있는 거 같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으로.
사실 공식적인 자리를 떠나 개인적으론 직접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서로 매체를 통해서 소식 듣고 그런 편이지. 어쨌든 든든하지. 얼마 전 어떤 잡지 같은 경우에 정민이가 <검은 집>으로 표지 모델을 했고, 중간에 내 인터뷰 기사도 세 면 정도 나오고, 재영이도 <신기전> 때문에 나왔다. 동기 셋이 한번에 딱 나온 거지. 그리고 각자들 다 봤겠지. 근데 서로 “야, 너 나왔더라.” 이렇진 않죠, 우리가. (웃음) 그리고 설마 걔네 들이 “아, 이게 이제 치고 올라오네.” 이러겠어? (웃음) “승룡이 고생하더니 이제 조금씩 주목 받는구나.” 하고 좋아하겠지. 설마 “아, 큰일났네.” 이러진 않을 거 아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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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간의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음..사실 그런 건 전혀 없고. (웃음) 농담이고, 그렇지. 서로 각자 좋은 자극이 되겠지.

혹시 본인을 자극하는 배우가 있나?
자극뿐만 아니라 담고 싶은, 또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없을 것 같은 배우가 송강호 선배지. 뭐 다들 많이 이야기하겠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거의 멘토(mentor)라고 생각한다. (신)하균이나 재영이나 정민이도 공히 말하는 게 강호 형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고. 왜냐면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제작자나 작가, 감독이 생각하지 못한 걸 배우가 만들어내니까 소름이 끼치는 거지.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편하게 연기했다 싶은 역할이 있나?
<소나기는 그쳤나요>에서 농부. 그런 수더분한 아저씨 있잖아. 난 그게 너무너무 편하다. 그건 우리 동기들도 비슷할 거다. 우린 헝그리 족이었거든. (정)재영이나 (황)정민이나. 예대 시절에 두 부류가 있었어. 집에 돈 좀 있는 애들, 그래서 그때부터 일찌감치 차 타고 다니는. 근데 정민이나 나는 항상 야상, 등산화, 군복 바지나 입고 다니고. (웃음) <나의 결혼 원정기>나 <너는 내 운명>같은 순박한 연기들이 그런 데서 나오는 거지. 나도 그런 모습들이 그래서 좀 편하고. 물론 그것뿐만 아니라 <사생결단>이나 <피도 눈물도 없이>같은 마초적인 연기도 되잖아. 근데 전자보단 후자가 난이도가 조금 낮은, 쉬운 연기인 것 같다. 평탄한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연기가 굉장히 어렵지. 그래서 난 그런 연기에 도전하고 싶고.

현재 영화판에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을 보면 연극 무대 출신인 경우가 많다. 방금 말한 송강호 씨도 그렇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극을 경험한다는 건 연기자에게 가장 좋은 경험이 아닐까 싶다.
일단 연극은 기본적으로 인간적이다. 먼저 그걸 깨닫게 하고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친다. 무엇보다 굉장히 엄한 곳이지.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임하는 자세도 틀리고. 연극은 한 대본을 보통 3개월씩 연습을 하잖아. 결국 시나리오를 통한 작품 분석, 인물 분석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지. 호흡이나 발음, 발성 같은 것도 아예 안 배운 사람들 보단 낫겠지. 발음이나 발성 때문에 지적 받는 배우들 많잖아. 솔직히.

확실히 연극 출신 배우들은 발성이 좋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독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땐 그걸 빼면 되지. 그러니까 <황진이>같은 경우엔 호통치는 연기가 많아서 발성을 이용할 때가 많았지만 <열한번째 엄마>같은 경우엔 발성을 전혀 안 썼거든. 하지만 분명 발성을 해야 될 때, 그 연습을 안 한 사람은 안 나는 거지. 그런 면에선 굉장히 유리한 거지. 그리고 질문 외적인 이야기지만 오디션을 봐서 그 사람을 얼마나 깊게 알겠어. 사실 연기는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기 때문에 연극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난 운이 좋아서 사진도 안내고 오디션도 안 봤지만 백날 프로필 넣고 오디션 봐도 안 되는 사람이 허다하거든. 영화는 그 바닥에서 검증된 배우들을 위주로 보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유)해진이는 참 대단한 사람이지. 해진이도 단역 오디션부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밟아간 경우는 굉장히 드물거든.

유해진 씨와도 같이 공연한 사이 아닌가.
같이 머리 빡빡 깎고 뉴욕 가서 <두타>했지. 고생 많이 했어. 같이 조치원 비데 조립공장가서 한달 동안 일한적도 있는데, 류사장, 유회장 막 이러면서. (웃음) 조치원 공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인 자기 딸 소개시켜준다고 눌러 앉으라고 막 그랬어. 진짜! (웃음) 왜냐면 일을 너무 잘하니까. 여담인데 한달 아르바이트로 갔다가 우리가 공장 시스템을 바꿔버렸어. (웃음) 너무 비효율적이더라고. 분업도 안되고. 그래서 우리가 되게 효율적으로 만들었지. 그리고 ‘오침(午寢)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효율적이다.’ 그래서 오침도 했잖아. (웃음) 어쨌든 해진이와는 같이 고생 많이 했지. 그 친구도 혈혈단신 연극하겠다고 청주에서 올라와서 맨날 후배들 자취방 돌아다니면서 자고, 세트 아르바이트도 굉장히 많이 하고.

최근 <이장과 군수> 주인공도 맡았고, 그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뿌듯하겠다.
음..사실 이제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 시기지. 해진이가 나보단 부담이 훨씬 클 거다. 지금 그걸 고민해야 될 타이밍이니까. 지금까진 잘 왔잖아. 그런데 지금이 더 중요하잖아. 그래서 아마 해진이가 고민이 많겠지.

<황진이>는 첫 사극 연기였는데 어떻던가?
너무 좋았다. 난 사극 체질인가 봐. (웃음)

사극이랑 꽤 어울리는 캐릭터이긴 하다. 일단 턱수염만 봐도. (웃음) 분장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분장 도움을 많이 받았지. 보면 알겠지만 눈썹도 다 깎아주고, 수염도 많이 다듬고. 볼도 많이 깎았다. 볼 터치로. (웃음) 옛날부터 내가 탈춤 반이나 민속극 같은 걸 선호했었기 때문에 이번에 많이 도움이 된 거 같기도 하고.

남자 배우 복은 많지만 아직 여자 배우 복은 없는데.
송혜교 씨가 처음이지. 이러면 오정해 씨가 섭섭해할 텐데. (웃음)

그래도 오정해 씨는 극중 거리를 둔 상대였으니까.
나만 많이 좋아하고 그랬으니까. 근데 오정해씨는 되게 특수한 케이스잖아. 국악인이자 음식점 경영자. (웃음) 그리고 또 강의도 하시고, 라디오 DJ도 하시고. 사실 깊은 공감대를 갖기는 힘들었던 거 같다. 그래도 학번은 나와 같았고. 그냥 작품을 떠나서는 편했지

송혜교 씨와의 연기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
사실 (송)혜교랑은 호흡이 안 맞아야 잘 나올 것 같은 대립 구조잖아. 베드씬도 그렇고.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대사도 까먹고 그랬다. “명월이 인사 드리옵니다.” 그러는데, 대사가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웃음) 다 그렇게 한번 해보라고. 내가 “송도에 있는 모든 기생들이 권주가를 내게 올리는데..” 이대사를 해야 되는데, “아! 잠깐만요!” 그랬다. 대사가 생각이 안 나더라. 첫 촬영 전에 밥도 두세 번 먹긴 했는데 제대로 꾸며놓으니까 어지럽더라. 대사 다 까먹었어. (웃음) 어쨌든 호흡은 잘 맞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연기도 잘 나온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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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드씬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망설였다가 15세 관람가라는 걸 알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던데.
사실 베드씬이라기 보단 보료씬이지. (웃음) 음..솔직히 그런 연기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이미지 때문에 안 벗거나 이런 건 아니고. (웃음)

사실 이미 <고마운 사람>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준 걸로 아는데?
그거랑은 틀리지. 그건 그냥 샤워하는 거잖아. 난 적나라한 베드씬 같은 건 죽어도 못해. “연기인데 뭐 어때?”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난 못할 것 같아. 난 못해! (웃음) 만약 내가 그렇게 돈을 벌어다 주면 아내가 기분이 상할 것 같다.

아내에 대한 배려 때문에?
철저하게.

지독하게 가정적이다. (웃음)
난 거기서 오는 행복이 너무 많고 크기 때문에, 가정에 대한 욕심이 연기에 대한 욕심보다 더 크다. 난 무조건 가정이 먼저에요. 물론 가정이 먼저라고 해서 일도 안하고 가정에 처박혀 있자는 건 아니고! 그럼 백수지! (웃음) 어쨌든 가정이 행복하기 때문에 내 일이 잘 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난타>의 주방장이었는데,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해주기도 하나?
평소 집사람이 만든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어주는 우리 집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다. 집사람의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을 때 내가 행복할 정도로 제일 행복해하거든. 그런 행복을 자주 뺏고 싶진 않은데, 한 달에 한 두 번은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를 해주지. 특별 식으로. 그것도 와이프가 굉장히 행복해하거든. 나 추어탕 같은 건 나 되게 잘 끓이거든.

결혼은 인생에 많은 변화를 부른다. 류승룡 씨같은 경우는 상당히 안정적인 여유를 준 것 같다.
너무 좋다. 집은 어떤 것보다도 편한 안식처다. 온천보다도, 스위트 룸보다 더 좋은. (웃음) 비록 비좁고 조그만 집이지만, 난 우리 집이 제일 편하다. 왜냐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내와 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아들이 한번 웃어주면 너무 행복한 것 같다. <황진이> 오백만 터지는 것만큼이나. (웃음) 그러니까 일단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어쨌든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고민도 많아졌을 텐데. 그런 점에서 출연 기회가 많아져서 그만큼의 여유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별로 그렇진 않고. (웃음) 사실 그제 세금을 처음 내봤다. 종합소득세. 사실 그전까진 환급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엔 몇 백만 원을 그냥 냈다. 그래서 난 되게 당황했거든.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그래서 재영이한테 전화했더니 재영이는 비교도 안되게 많이 냈더라. 물론 걔가 많이 낼 줄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지. 난 아직 그 정도로 서민이다. (웃음) 어쨌든 세금 잘 내야지! 사실 돈이 생기자 마자 부모님 집 옮기는데 다 보탰다. 그래서 지금 돈이 하나도 없어. 마이너스 통장이야. (웃음)

어쨌든 이제 세금도 낼 만큼 수입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좋아진다는 의미도 될 듯 한데.
그 동안 연기를 하기 위해서 일을 많이 했지. 가락시장에서도 일했었다. 결혼하고도 10개월 동안 실내 인테리어 일했다. 솔직히 말하면 잡부지. (웃음) 어쨌든 연기를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지. 생계 유지를 위해서. 이제는 여유로워졌다기 보단 연기를 위한 일만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니까 그 동안은 연기로 생활비를 벌 수 없으니까 그걸 위해서 굉장히 많이 일을 했었거든. 근데 이젠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고, 그래서 와이프도 굉장히 행복해한다. <아는 여자>나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그랬고, 영화 없으면 난 일하러 나갔다. 연극이나 영화 하는 친구들이 일없으면 집에서 놀거나 맨날 술이나 마시는 이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놀다가 여자 만나서 바람 피다가 이혼하는 사람도 많고, 이런 게 너무 싫었거든. 불과 작년만해도 난 거의, 아, 작년은 바빴구나. (웃음) 재작년만 해도 과수원에서도 일하고, 공장가서 일하고 그랬다. 틈만 나면. 근데 거기서 배운 게 많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 중 재미있는 사람 많거든. 관찰을 많이 했지. 그런 게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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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농부 같은 역할이 편한 게 아닐까? (웃음)
그런가? 이제 골프장 같은 데를 가봐야 회장님 연기도 할 텐데. (웃음) 하긴 내가 뭐 검사해봐서 검사했나? (웃음)

하긴 뭐 <황진이>에서 사또 역할도 어울리던데.
그렇지. 사또 해봤나? 내가 뭐, (웃음)

혹시 연기라는 길을 택한 걸 후회해 본 적은 없었나?
후회한 적 한번도 없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거 같아. 86년부터 했는데.

그럼 반대로 이 길을 택해서 참 다행이다 싶었던 적은?
음..그게 요즘인데. 전도에 도움이 되더라고. (웃음) 어떤 식으로든. 내가 영화도 나오고 그러니까 이 사람도 우리 교회 다닌다는 식으로.

신앙은 아내한테 영향 받은 건가?
내가 전도를 한 건데. 요즘은 그분이 더 독실해졌다. (웃음)

외모에서 풍기는 강한 인상 때문에 거칠고 험한 역할의 섭외가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그렇지. 형사 아니면 깡패. 그런데 우리 나라 남자배우들이 거의 그래. 깡패 아니면 형사 아니면 검사. 설경구 선배도 그렇고, 송강호 선배도 그렇고. <열한번째 엄마>도 보면 아마 기절할거다. 아동 학대, 여성 폭력, 도박. 이걸로 이제 악역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고 싶은데~. (웃음) 그런데 환경이 불우한 사람들은 그런 환경이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태어나서 그렇게 자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난 그 배역에 너무 연민이 가더라. 그리고 저예산 영화지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참여했다. 많이 울었지. 함께 출연한 (김)혜수씨도 보고 많이 울었다.

혹시 본인이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출연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
난 진짜 웰메이드 휴먼 드라마 하고 싶다. 아름다운 영화 있잖아. 자극적인 영화 말고. <웰컴 투 동막골>에서 재영이가 같은 역할. 인간적이잖아. 아니면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 씨 같은. 매력적이잖아. 무엇보다 벗지 않아도 되니까. (웃음) 벗지 않아도 좋은 그런 역할들이 얼마든지 있어. (웃음) <아들>에서 차승원 씨 같은 역할도 되게 좋잖아. 사실 되게 욕심부렸었다. 너무 하고 싶었거든. 근데 그 놈의 인지도. 하아~.(웃음)

장진 감독과 대화 좀 했을 법한데?
장진 감독한테 하고 싶다고 했더니, “승원씨는 이거 2억에 하거든. 되게 싸게 하는 거야.” 그래서 “저 2천에 할게요.” (웃음) 또 그러니까 “야, 차승원 씨는 2억에 2백만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야. 근데 너는 2천 줘도 넌 2만?” (웃음) 그래서 “알았어요.”했지. 물론 반 농담으로 나눈 이야기다. 사실 난 유명해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근데 이렇게 하고 싶은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니까 인지도도 중요하더라. 왜냐면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난 하고 싶은데 투자자나 제작자는 인지도 없는 배우는 안 쓰려 하니까 이럴 때 너무 속상한 거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는 제작자나 투자자, 감독님한테 너무 감사하지. 왜냐면 내가 캐스팅될 때만해도 <박수칠 때 떠나라>밖에 개봉을 안 했었거든. <열혈남아> <천년학> <거룩한 계보> 이런 건 다 찍기 전이나 찍고 있었고. 장편 하나보고 이 역할을 결정했다는 건 그 분들이 혜안이 있다거나. (웃음)

연기가 자신을 흔든 계기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연기라, 일단은 내가 방황하던 시절, 뭐 솔직히 안 놀아본 사람 없잖아. 중3, 고1때. 난 중3만 마치고 학교에서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만 두려고 고등학교에 갔지. 그런데 교문에 들어가니까 선생님들이 막 달려오더니 발로 뻥 차고 머리를 막 깎는 거야. 완전 정신 못 차렸지. (웃음) 원래 풍생고 유명하거든. 근데 그때 교화로 연극부에 들게 했다. 그때 했던 게 <방황하는 별들>이란 뮤지컬의 복서였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마음잡았지. 그게 나 뿐만이겠어? 연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렇게 바뀔 수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삶이. 어쨌든 교화가 계기가 됐지. 그리고 연기를 하기 위해서 그때부터 다시 공부도 했고. 정말 연기하려고 내가 하기 싫은 영어와 수학을 했다니까! 진짜. (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 그리고 남편이 되고 싶다. 아들한텐 정말 존경 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고,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이고 싶다. 주색잡기를 좋아하면 정말 추하게 늙잖아. 추접하게. 비참하게. 그러고 싶진 않다. 정말 며느리한테도 사랑 받는 멋있는 시아버지나 자랑하고 싶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가정적이다. (웃음) 희열이란 캐릭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여기서 희열이 느껴지면 큰일나지! 그리고 사실 내가 코메디에 자질이 있다. 장진 감독도 그걸 아는데 나중에 히든 카드로 써먹으려고 아직 숨겨두고 있는 거야. (웃음)

이거 기사화 시켜도 될까?
아, 뭐, 상관없다. 혹시 알아? 누가 먼저 배역 줄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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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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