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의, 식, 주가 붕괴되면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관마저 상실된다.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1953년 서울도 마찬가지다. 도시엔 빈곤의 기운이 가득하다. 애나 어른이나 막론하고 먹고 사는 방법을 궁리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곳은 아이의 울음을 달래줄 정도의 여유도 없다. 기본적인 욕망조차 결핍된 도시에서 비정함이 새어 나온다. 그곳에서 소년은 울어봤자 별수 없다. 그래서 ‘소년은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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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의 동명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리들리 스콧의 <바디 오브 라이즈>는 실체가 분명치 않은 거짓이 어떻게 세상을 장악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은 거짓에 압도당해 쓸모를 잃고 그 빈자리마저 거짓으로 메워진다. 형체가 없는 거짓이 진실의 육체를 장악할 때 선악의 경계도 희미해진다. 중동과 미국의 전쟁은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각축장으로 변질되어 끝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포스트 911의 시대에서 악의 축으로 구분된 이라크는 미군의 로켓세례를 얻었지만 그 반작용은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를 발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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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훈련

time loop 2008. 8. 28. 23:13

2박3일간 동원훈련을 다녀왔다.
아이러니하지만 그 곳이 나름 빡센 일정을 잠시 접고 잠깐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도피처가 됐다.
하지만 그 무료함에 몸을 배배 꼬다 이상하게 생긴 스크류바가 되기 직전에 가까스로 탈출한 것 같다.
아무래도 빡센 자유가 한가한 무자유보단 낫다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그 폐쇄적인 환경의 본질이 무엇인가였다는 생각.
끊임없이 자고 또 잤음에도 정신교육 시간은 길고도 험했다.
자다 지쳐서 눈이 말똥말똥해져서 실수로 뜬 눈을 한 채 교육을 받았다.
기억나는 건 이 구절이다. 전쟁이 나면,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그래. 우린 전쟁을 대비해야 해. 수비는 최고의 공격이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를 위해서 우린 최고의 살수를 몸에 익히고 그것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득당한다.

아, 물론 전쟁 따위는 결코 중요치 않아!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단지 인간이란 게 이딴 식으로 아이러니하게 생겨먹었다는 거지. 어쩌면 이 지구상 최대의 비극은 스스로 엄청나게 똑똑한 존재라고 믿는 인간이 선량한 사마리아인들과 같은 자연을 무참히 지배하고 군림한다는 게 아닐까 싶다.
인간은 언제나 생존을 위해서 무언가를 파괴하고 학살한다. 그것이 동족이라 할지라도 본능을 넘어선 이기로 무언가를 통치하려 든다. 모르겠다. 그 아이러니를 우린 너무 쉽게 수긍하고 있는 게 아닌지.

존 레논과 요코가 꿈꾸던 평화의 침대는 안드로메다 어딘가를 유영하는 외계 언어처럼 생경한 거다. 어쩌겠나. 인간이 이렇게 삭막한 걸.

음, 닥치고 동원 핑계로 마감하지 못한 글들이나 열심히 써제껴야 겠다. 일은 해도해도 줄지 않고 나날이 쌓인다.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리고 영화가 누려지는 것도 아닌데, 몸은 고달프다. 생각해보니 인간이 삭막하다 말하기 전에 지독하게 삭막한 제 일상부터나 어떻게 잘 마감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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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라는 말까지 녹아내렸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뜨니 중천에 뜬 해가 이마에 땀방울을 만들어냈음을 알고 구부정하게 등을 뗐다.
박태환이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44년만의 쾌거니, 대한민국 만세니, 일단 닥치고 박태환 선수 수고했어요. 남은 경기 일정도 최선을 다해서 많은 노력만큼이나 좋은 성과 거두길.
지구 한편에서는 축제분위기로 떠들썩한데 어느 한편에서는 죽음 앞에 대면한 사람들의 비명과 흐느낌으로 아비규환이 됐다 한다. 쑥대밭이 따로 없다. 죽은 이는 차라리 말이 없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과 고통이 절절하게 남아서 떠돌 뿐.
베이징 올림픽 슬로건이 One World. One Dream이란다. 하나의 세상이라, 그것이 가능할까. 가능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실상이 이렇다. 이 순간에도 세상은 각자의 초침을 돌리고 있다. 어떤 이는 새로운 희망을 탐닉하지만 어떤 이는 지독한 좌절을 맞이한다. 해가 뜨는 반대편에서는 해가 진다. 하나의 세상이란 것이 말처럼 쉽다면 올림픽 따윈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합과 평화라는 슬로건은 그 반대편에 선 무언가를 경계하는 좌표인 것을, 우린 얼마나 직시하고 있을까. 눈 앞의 유희를 탐닉하고 있을 때, 저 너머에선 그것이 본래 두려워하던 비극이 비웃듯 도사리고 있다.

날씨가 덥다. 세상이 타오르듯 밤이 되도 땅은 식을 줄 모른다. 아이구, 더워. 하긴 나조차도 날 숨막히게 하는 더위가 먼 나라의 비극보다 가깝다. 하나의 세상이란 정녕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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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개막됐다. 장예모가 연출한 천이백억 짜리 개막식 공연이 화제다. 역시 중국은 쪽수면 장땡, 이란 반응부터 장예모의 블록버스터 클리셰라는 말까지, 물론 호화롭고 웅장했을 것이다. 물론 난 안 봤다.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인지 몰랐다. 맙소사. 그저 오늘 갑자기 잡힌 인터뷰 준비로 2시간 밖에 잠을 못 잤고 날씨가 미친듯이 더웠을 뿐이다. 알았으면 봤겠지. 혀를 차든 우와, 하든 간에 단 한번뿐인 볼거리는 일단 봐두는 게 상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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