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는 연기처럼 피어나 세상을 어지럽힌다. 개인의 삶을 흔들고 때때로 세상을 무력하게 옥죈다. 그럼에도 아직 세상이 살만하다 말할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몰래 자라나는 선의 덕분이다. 쉽게 피어나고 흩어져 나가는 악의와 달리 선의는 조심스럽게 피어나 눈에 띄지 않게 자라난 뒤, 세상을 치장한다. <블라인드 사이드> 바로 그 선의에 관한 이야기다. 선의에서 비롯된 현실의 사연은 텍스트로 옮겨진 뒤, 이미지로 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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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3 19,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미군은 전폭기를 동원해 바그다드 상공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미군의 총공세로 바그다드는 초토화됐고 미군의 진격으로 도시는 점령됐다. 미국은대량살상무기 보유를 명목으로 이라크에 무력을 행사했고, 정부를 무력화시켰다. 부시는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지만 상황은 끝나지 않았으며 애초에 그것은 전쟁처럼 시작되지도 않았다. 미국이 주장했던 대량살상무기는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그 허구적 주장이 대량살상의 참상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그린 존>은 명확하게 그날을 재현하는 데서 출발한다.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을 연출하며 확고한 팬덤을 형성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다시 한번 맷 데이먼을 앞세워진짜미국의 치부를 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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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완벽주의자

지난 15년간 이석원은 뮤지션으로 살아왔다. ‘언니네 이발관의 리드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서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하지만 2009년은 이석원이란 이름 석자에서 뮤지션이란 존재가 아닌 또 다른 존재로서의 이력을 알린 한 해다. ‘시네마디지털서울(CinDi) 2009’의 트레일러를 연출했고, <보통의 존재>란 제목의 에세이를 출간했다. 동시에 지난해 발표한 언니네 이발관’ 5<가장 보통의 존재>3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동시에 한국대중음악상에서 3관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대중의 너른 지지마저 얻었다. 음악가로서의 깊이를 채우는 동시에 새로운 영역으로 존재를 확장해갔다.

이와 같은 이석원의 행보를 지켜본 누군가는 그를 아주 특별한 존재라 인식할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동떨어진 세계의 일처럼 여겨지는 기회를 차례로 성취해 나가는 이의 삶이란 특별하게 여겨져야 마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석원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이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아주 보통의 존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가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건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철저한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연을 앞둔 시점에서는 목을 보호하기 위해 며칠간 입도 열지 않는다는 예민함은 완벽한 무대를 연출하고 말겠다는 최선의 집념이다. 동시에 그 완벽한 무대는 관객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완벽한 무대를 이루지 않고서는 성이 차지 않는 특유의 기질로서 쟁취해야만 하는 그만의 이상향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이석원의,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은 분명 꿈의 팝송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 음악을 하면서 즐거운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이석원의 말은 의외의 사실이다. 그에게 음악이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스스로를 투과하는 창이었다. 단지 그것으로 족했다. 이석원에게 음악이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표현하고자 했던 수단에 가까웠다. 그리고 자신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고 믿을 수 있을 때 만족할 수 있는 가치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는 아주 보통의 완벽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

이 인터뷰는 두 번에 걸쳐 만남을 거듭한 이석원과의 두 번째 대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다. 첫 번째 인터뷰로부터 정확히 이틀 만에 이석원은 메일을 보냈다. 인터뷰를 다시 하자는 것이었다. 지난 인터뷰에 첨언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온전히 다시 하자는 제안이었다. ‘인터뷰가 중간에 끊긴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린다는 그는 인터뷰에 기록된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대와의 인터뷰가 분명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시종일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발음하는 이와의 대화를 한 차례 더 이어갈 수 있다는 건 분명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 인터뷰가 이석원의 마음을 온전히 대변하는 결과물로 완성됐다고 장담할 순 없겠지만 자신의 작품에 자신을 온전히 담아내고자 했던 이석원의 노력처럼 이 기록 역시 이석원이란 인물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는 진심 정도는 전해지길 바란다. 아주 보통의 완벽주의자를 위한 아주 보통의 인터뷰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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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 둔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를 옮긴다. 무비스트를 떠나 새롭게 둥지를 틀 곳은 아쉐뜨 미디어에서 발간하는 비욘드다. 비행기를 타본 적 없는 촌놈이라 잘 모르지만 대한항공 기내지다. 투썸플레이스와 같은 커피점에서도 볼 수 있다. 나도 몇 번 거기서 봤거든. 개인적으로 기획이 좋은 잡지라고 생각했고 자료로서 소장해도 좋을 만하다 느낄 만큼 유심히 읽었던 기억도 여러 번이다. 주제 넘게 원고 청탁을 몇 번 받아서 원고료를 챙겨먹은 적이 있긴 한데 녹을 먹게 될 줄 몰랐다. 모든 것이 11월 중에 순식간에 이뤄진 일이라 반 허공에 뜬 기분도 없지 않다. 초현실적이었다. 제안이 오고, 면접이 이뤄지고, 절차를 밟아, 통보를 받은 뒤, 회사를 떠나고 새로운 회사로 들어가게 됐다. 그렇게 됐다.

 

정확히 2 10개월 간 머물렀던 직장을 떠난다. 이미 애초에 내가 처음 앉아 있었던 그 사무실로부터 여러 번 이사한 뒤지만 어쨌든 그렇다. 다사다난했던 직장이었다. 그래도 다들 말하듯 다행이다. 대부분 말하는 바에 따르면, 가장 어려운 시기에 들어와서 가장 잘 됐을 때 나간다. 그래, 그건 사실이다.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중 많은 일을 만든 건 회사가 어려웠다는 사정이었다. 제대로 월급을 받기도 어려웠던 시절이 만만치 않게 이어지기도 했고, 한 때는 모든 걸 접을까 회의론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직원이 채 10명 남짓도 되지 않아 손을 호호 불만큼 한산함을 느끼기도 했으며 때론 사무실을 무겁게 짓누르는 침울한 분위기가 싫어서 좀처럼 사무실에 나가기 꺼려질 때도 없지 않았다. 어쨌든 다행이다. 내 덕분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버티는데 한몫을 거들었다는 생색이라도 낼 수 있게 됐다.

 

시원섭섭하다. 새로운 일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자라기도 했고, 뭔가 반복적인 권태 속에서 자라나는 의심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을 접한다는 건 그만큼의 긴장과 설렘을 유발하는 일이라 다양한 채널로서 내게 고무되는 일이다. 걱정조차도 새로운 경험적 자극이란 점에서 유효하다. 더욱이 날 믿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도 그만큼의 책임을 짊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무엇보다도 오프라인 잡지를 만드는 일원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 될 터이니 개인적으론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지금 이 정도 경력 즈음이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는데도 무리가 없는 시기란 점에서도 분명 좋은 시점이라 생각했다.

 

첫 직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떠나 보낸 적은 있었지만 내가 떠날 입장이 되리라 생각해 본적은 많지 않았다. 아니, 불과 정확히 1년 전 그럴만한 계기가 있었지만 어찌하다 무마된 뒤로 예상치 못했던 사안인 건 분명하다. 이별이라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딱히 많은 교감을 이룬 건 아니지만 매일 같이 그 자리에서 마주 보던 대상과의 익숙함을 잊는다는 건 여러 모로 섭섭한 일이다. 글쎄다. 내 빈자리에 쾌재를 부를 누군가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고생했다는 한 마디로 인사를 던지며 아쉬운 표정을 남기는 이들의 얼굴을 거듭 마주하다 보니 주제넘은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머쓱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지난 세월에 대해서 수긍할 수 있겠다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민폐 끼치며 살진 않았던 것 같다. 잘나지 못해서 아쉬웠던 적은 스스로 많았다. 다만 적어도 못난 꼴은 남기지 않았나 보다. 그게 다행이다.

 

회사를 떠나던 날, 자리를 정리했다. 내 다음 사람에게 물려줘야 할 자리에서 최대한 내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컴퓨터 휴지통마저 정리했다. 책상에 내려앉은 먼지도 닦아낼 수 있는 만큼 닦아냈다. 누구라도 내 빈자리를 채우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뒤에 올 사람을 위해 지난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흔적 따위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떠나는 사람은 그대로 사라지면 된다. 남은 건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그게 한편으로 후련하다. 무비스트에서 머물렀던 동안, 난 너무나도 많은 부분에 참견했고, 그만큼 스트레스를 키우다 끝내 포기하거나 싸워대다 이래저래 심산이 무너지곤 했다. 한편으로 그 모든 문제들로부터 달아나는 기분도 들지만 이젠 상관없다. 내가 좋아하던 이들과 그런 공적인 사안으로서 얼굴을 붉히고 화해해야 한다는 건 여러모로 괴롭고 고된 일이다. 새로운 직장에선 어지간하면 말을 아끼련다. 보다 체계가 철저한 곳이라면 좋겠다. 그래야만 내가 편해질 것 같다.

 

내일 당장 새로운 직장으로 나간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이러다 다시 예전 직장으로 버스를 타고 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릴지도 모르겠다. 내일 출근하면 바로 마감에 투입된다. 다음주까진 정신이 없겠지. 긴장된다. 그 긴장감이 좋다. 그 긴장감 덕분에 설렘도 동반되는 기분이다. 어쨌든 회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묘했다. 샤워를 하다 조금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나도 모르겠다. 마음이 따뜻했다. 잘 가라는 인사도, 잘 됐다는 축하도, 아쉽다는 찡그림도, 하나같이 애틋한 것이라 뒤늦게 견디기 어려웠다. 난 아직도 어리고 한참 모자란 인간이다. 하지만 덕분에 지난 2 10개월 동안 사람 구실하고 살았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또 다른 계기를 얻었다. 그러니 난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겠다. 누구를 위해서 산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누군가를 통해 이뤄진 내 삶을 난 좀 더 소중하게 아끼겠다. 그러니 난 잘 살 것이다. 고마웠다. 당신들이 날 잊더라도 난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 not forge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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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사무엘상 17 48-51절은 이스라엘 민족과 블라셋 민족의 전쟁이 벌어진 엘라 계곡에서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전전긍긍하게 만든 블라셋의 거인전사 골리앗을 물매(새총)로 물리쳤다는 이스라엘의 청년영웅 다윗을 그린다. 성서를 통해 전승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그 이후로 현세까지 수많은 이야기꾼들에게 영감을 주며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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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과거부터 인간들은 달을 통해 미래를 읽고, 현재를 파악했다. 영원을 누릴 듯 이글거리는 태양과 달리 순간을 견디지 못할 듯 위태롭게 이지러지다 차오름을 반복하는 달은 그만큼 신비롭되 불길한 것이었다. 1969,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디딘 이후로도 그곳은 여전히 낯선 영역이다. 환형의 굴레를 끊임없이 돌고 도는 달을 향한 인류적 호기심이 신비에서 실리로 변모했을 뿐, 그 구체는 여전히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큼 미지수의 창작적 자원량을 보유한 미지의 영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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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의 신화, 아니메의 전설, 오타쿠의 복음. 신도적인 팬덤에 둘러 쌓여 끊임없이 복기되고 해석되는 묵시록 <에반게리온>은 그 이름에 얽힌 수많은 언어만으로도 반열에 오를만한 작품이다. 단순히 작품의 개별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신드롬으로서 이미 하나의 거대한 세계임을 증명했다. <에반게리온>의 매력은 그 세계관의 너비를 짐작할 수 없는 비정형성에 있다. 메카닉 애니메이션의 형태 안에 잠재된 성장담, 그리고 오타쿠 문화의 총아적 이미지까지, 그 모든 요소가 그것을 해석하고 독해하는 이들의 세계관 안에서 거듭 확장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의미를 재생산시킨다는 점에서 <에반게리온>은 진화하는 유기체나 다름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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