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욕을 자청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욕을 해댈수록 주가가 상승하는 <SNL 코리아>의 헤로인 김슬기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장기는 욕이 아니다. 배우 김슬기의 연기가 제대로 먹혔다는 말이다.
<SNL 코리아>(이하: <SNL>)에 출연한지 1년이 넘었다.
첫 생방송 당시엔 너무 떨려서 헛구역질이 다 났다. 그때는 토요일 생방송을 위해서 일주일씩 준비했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크루’들이 대본 좀 빨리 보내달라고 건의했다.
지금은?
이젠 방송 전날에 리딩하면 왜 당일에 하지 않고 전날하냐고 농담이 나올 정도다. 다들 마음이 편해졌다.
생방송이라서 종종 웃음을 참는 모습도 여과 없이 보여지는데 그게 은근히 웃기다.
신동엽 선배님의 캐릭터가 그게 가능했기 때문에 우리도 조금씩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다. 만약 웃음이 터졌을 때 누군가가 정색했다면 아무도 시작하지 못했을 거다. 일종의 노련한 스킬이랄까.
오픈 스튜디오의 라이브쇼란 점에서 연극 무대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래서 적응하기 편했다. 연극 무대로 조금 먼저 데뷔했으니까.
데뷔한 계기는?
학교 선배님이었던 장진 감독님이 학교 동아리의 큰 공연을 장진 감독님이 연출자였다. 그때 감독님께서 내 연기를 좋게 봐주셨는지 몇 개월 뒤에 부르셔서 연극이랑 <SNL>을 함께 해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셨다.
<리턴 투 햄릿>에선 복수할 때 쓰는 칼 역할이었다는데, 이름이 칼은 아닌 것 같은데(웃음).
장진 감독님이 <매직타임>이란 연극을 <리턴 투 햄릿>이라는 연극으로 재구성했는데 중간에 마당극 형식이 변한다. 그때 햄릿을 증언하기 위해서 칼이 등장하는데 내가 커다란 칼 모양 탈을 쓰고 등장하는 식이었다.
뒤집어 쓰는 것과 인연이 있나 보다(웃음).
탈쓸 때만 예뻐 보인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웃음).
탈을 쓰고 등장하는 이미지로 인해서 지나치게 희화화될지 모른다는 경계심은 없었나?
다른 곳은 몰라도 <SNL>이기 때문에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한테 큰 머리와 뚱뚱한 옷, 짧은 다리가 너무 잘 어울리더라(웃음).
크루들의 사이가 좋아 보인다. 꽤나 즐거워 보인다.
대체로 화기애애하다. 사실 <무한도전>처럼 <SNL>도 장수하고 나 역시 대표 크루로 장수해서 오랫동안 이것만 하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하다는 거지.
평소에 욕해달라는 사람은 없나?
일상이다. 그런 얘길 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 정도니까. 나를 좋아해주는 분들은 대부분 내가 하는 욕도 좋아해주는 분들 같다. 싸인할 때조차 욕 좀 해달라는 분들이 많더라.
고민되는 부분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없다. 이런 캐릭터를 하는 것도 행복하고, 이런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의 나도 좋아하니까. 연기할 때는 그런 캐릭터를 끌어내기 쉽다. 하지만 일상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분들을 만날 때 조금 힘든 건 있다.
실제 본인의 성격은?
에너지를 금방 소모해서 충전과 방전이 반복된다. 그러니까 충전할 때의 나를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김슬기가 원래 저런가?’ 사실 조금 더 차분한 편이기도 하고.
TV 속의 김슬기와 TV 밖의 김슬기의 차이를 확인한 사람들의 반응이란?
내게 다양한 모습이 있음을 좋게 봐주는 분도 있는 반면 자기가 원했던 TV 속의 김슬기가 아니라서 실망하는 분들도 있다. 나를 보는 분들이 저마다 다른 만큼 반응도 다양한 것 같다.
자신의 다양성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나 보다.
사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 오히려 신기하다. 누구에게나 뒷면이 있지 않나. 착한 사람도 나쁜 생각을 할 수 있고, 차분한 사람도 흥분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다양한 면이 있는 사람 같다. 그래서 배우를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고.
긍정적인 편인가.
낙천적일지도.
<SNL>은 보수적인 사람들 입장에선 불편한 방송일지도 모른다.
나도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다.
어느 정도로?
수영장에 한번도 가본 적 없다.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기분이랄까(웃음). <SNL 코리아>에 출연하기 이전까진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성격으로 어떻게 <SNL>을 선택했을까?
처음엔 19금 프로그램이 아니라 15금 정도였다. 19금 프로그램이 된 이후로도 힘든 부분은 없었다. 시즌2 초반에 잠시 섹시 컨셉트를 연기했지만 특별히 힘들진 않았다. 노출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의 반응은?
경상도 분들이라 표현이 어색하다. ‘잘했다. 챙겨봤다. 못 봤다. 바쁘냐?’ 이게 다다(웃음).
고향이?
부산이다. 스무 살에 대학 진학 때문에 상경했다.
졸업했나.
휴학 중이다.
당연히 연기 전공인가?
연기학과 뮤지컬 전공이다.
뮤지컬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노래도 하고 싶고, 춤도 추고 싶고, 연기도 하고 싶었다. 내 욕심에 하나만 하기엔 뭔가 아쉽더라. 그런데 뮤지컬이란 장르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럼 뮤지컬 배우가 돼야겠다고 막연하게 접근했다. 사실 부산에선 뮤지컬을 볼 기회도 없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꾼 시점은?
고등학교 시절,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뮤지컬 배우를 꿈꿨다. 그 이전에 초등학생 시절부터 예술 분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지금 쓰는 싸인도 초등학교 때 만든 거다.
노래를 잘한다는 건 언제 알았나?
중학생 때 친구 따라서 가요제에 나갔는데 내가 상을 탔다. 그때부터 기회가 되면 가요제란 가요제는 다 나갔다.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가수만 하기엔 아쉽다고 생각했고 좀더 특별한 걸 찾다가 뮤지컬 배우를 찾았다, 뮤지컬 배우가 된다면 언제든 가수나 배우로 방향을 틀어도 될 거라 생각했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로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는 없을까?
그런 기대들이 많아서 너무 부담스럽다. <무서운 이야기 2>의 출연배우는 8명인데 저마다 다 주연이기 때문에 사실 내가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기대만큼 크진 않다. 일단 이번엔 김슬기가 영화도 하는구나 정도를 보여주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촬영 과정은 어땠나.
너무 춥고 힘들었다. 배우로서 경력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지만 영화를 찍는 시기가 하필 그 얼마 안된 시기 중 가장 바쁜 시기였다. 첫 영화이니 신경 써서 하고 싶었지만 2주간 잠도 못 자고 촬영하다 보니 체력도 딸리고 너무 추웠다. 개인적으론 그런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을 겪었다는 의의가 있었다.
6월부터 뮤지컬 <투모로우 모닝>으로 무대에 오른다. 비로소 그토록 바라던 첫 뮤지컬 무대다.
어렸을 땐 조정석 선배님이나 김무열 선배님처럼 무대에서 인정 받은 뒤에 방송으로 나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방송으로 데뷔하기란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운 좋게 방송으로 데뷔했고 오히려 언제쯤 뮤지컬에 도전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점점 부족함을 느끼면서 내가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기회가 와서 생각보다 빨리 도전하게 됐다. 배우로서 욕심이 있다 보니 놓치긴 싫더라.
언젠가 욕심나는 작품의 스케줄로 인해서 <SNL> 출연이 어려워질 수 있다. 고민해본 적 있나?
<SNL>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종종 고민한다. 어떻게든 <SNL>의 스케줄을 끌고 갈 수 없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언제나 미궁 같은 고민이지만(웃음).
열정적인 폭발력과 훈훈한 외모로 무대를 누비던 조정석은 지금 대중 앞에 한 발 다가섰다. 나약할 리 없는 집념으로, 보다 섹시하고 강렬하게.
조정석을 만난다고 하자 생각보다 많은 여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에게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나? 그가 평소와 달리 수염을 길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풋풋한 청년의 얼굴을 지우는 대신 강렬한 남성의 인상을 그려넣었다. 도발적인 여인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남자의 야심. 그렇게 조정석을 위한 화보 밑그림이 완성됐다. 촬영 당일,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촬영 장소를 찾은 조정석은 마냥 사람 좋아 보이는 시원한 미소의 소유자였다. 잠시 후, 모든 준비가 끝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장난기 가득하던 청년의 얼굴에 강인한 인상이 들어찼다. 역시 배우는 배우다.
조정석은 뮤지컬계의 스타였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지만 아는 사람만 알았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밤하늘의 별처럼, 공연장을 찾지 않은 이들에게 조정석이란 이름은 그저 생소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반짝이고 있었다. 단지 가리킬 손가락이 필요했을 뿐이다. <건축학개론>의 납뜩이와 <더 킹 투하츠>의 은시경이 가리키는 대로 수많은 이들이 고개를 들어 비로소 별을 봤다. 5:5 가르마를 탄 납뜩이의 정곡을 찌르는 대사에 포복절도했던 관객들은 극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TV를 켰다. 핏이 딱 떨어지는 제복 혹은 수트를 입은 말끔한 외모와 강직한 성격의 훈남 은시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대부분 처음엔 몰랐다. 그리고 갸우뚱하다 뒤늦게 놀랐다. “인물 자체가 다르니까 “얘가 얘야?”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더라. 어떻게 두 캐릭터를 같이 연기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보여지는 시기가 비슷하니까 오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일찌감치 촬영을 마친 첫 영화가 그 뒤에 제작된 첫 번째 공중파 드라마와 맞물린 시기에 개봉했다. 영화와 드라마가 함께 주목받았다. 진정한 ‘골든 타임’이었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던가.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무대에서 조정석을 눈여겨본 이들이 있었다. 곧 뮤지컬 지망생들의 도전을 그린 드라마 <왓츠업>에 그가 캐스팅됐다. “드라마 촬영 일정상 공연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드라마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막상 편성이 보류되면서 1년 동안 지난한 촬영 스케줄이 이어졌고, 경력에 구멍이 생겼다. 주변에선 시간을 탕진하고 있다며 우려했지만 조정석은 시간을 투자하며 담담하게 때를 기다렸다. “지금이야말로 영화나 드라마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았다.” 결국 <건축학개론> 오디션으로 기회를 잡았고, 2011년에 방영된 <왓츠업>을 본 이제규 감독은 그를 <더 킹 투하츠>에 불러들였다. 믿음으로 얻은 수익이었다. 더 큰 이윤을 요구할 차례였다.
조정석을 쏘아 올린 신호탄이 된 납뜩이를, 조정석이 납득하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용주 감독의 주문처럼 관객을 웃길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집에서 TV로 보는 건 대수롭지 않지만 커다란 스크린으로 처음 영화를 보는데 내가 나올 때마다 미치겠더라. 중반부터 긴장이 풀렸다. 납뜩이가 제 역할을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사람들이 내가 나올 때마다 웃는 거다.” 납뜩이가 없는 <건축학개론>이란 얼마나 심심했을까. “어떡하지, 너?” 같은 납뜩이의 명대사가 조정석의 애드리브였단 사실은 그의 캐스팅이 진정한 신의 한 수였다고 믿게 만든다.
<건축학개론>과 <더 킹 투하츠> 이후로 조정석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코믹한 시대극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의 촬영을 마쳤다. <방가! 방가!>의 감독 육상효의 새로운 연출작으로 80년대 미군문화원을 점거한 대학생들의 에피소드를 그린 이 코미디물에서 그는 ‘민중가요계의 조용필’로 불리며 기타를 치고 노래했다. 조정석은 일찍이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 하지만 연기자가 되면 어떻겠냐는 교회 전도사의 권유로 한 달간 개인 레슨을 받고 시험을 친 서울예전에 합격했다. 일종의 계시였다. 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퇴했지만 그에겐 이미 또렷한 길이 열려 있었다. ‘가족 대부분이 부정적’이었지만 조정석은 ‘자신을 굳건하게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결과를 명예처럼 간직한다. “기본적으로 내가 한 작품들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지난 작품들을 모두 기억한다.”
무대에 데뷔한 2004년부터 2010년 초까지 조정석의 시간에는 빈틈이 없었다. “일복이 많아서 쉴 틈이 없었다. 작품 끝나면 바로 작품하고, 작품 하면서도 다른 작품을 했으니까.” 단 한 번, 연습도 공연도 없었던 2주를 통째로 쉬었던 걸 제외하면 6년간 최소한 이틀에 한 번꼴로 무대에 올랐다. 6개월간 일주일에 8회 공연 그러니까 200회 가깝게 공연된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모리츠 역으로 단독 캐스팅됐을 때도 6개월간 매일 일정한 시간마다 그 무대에 올라 모리츠가 되어 목숨을 끊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매일 죽는 남자’다. 조정석의 믿음이란 그런 성실함과 집념을 담보로 둔 것일지 모른다. “하고 싶으면 확실히 해야 된다. 칼을 한 번 꺼냈으면 제대로 휘둘러야 되니까.” 공연이 끝나고 자신이 느낀 문제나 새로운 욕심들을 기록해 둔 ‘배우일지’도 그 칼을 제대로 휘두르기 위한 칼집이다. 그는 단단한 욕심으로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건축학개론> 이전에도 영화에 출연할 기회는 두 번 정도 있었다. 오디션에 합격했던 <바람피기 좋은 날>과 조승우의 추천으로 캐스팅이 유력했던 <고고 70>이 바로 그것. 하지만 공연 중인 작품들과 스케줄이 맞지 않았다. “공연 같은 경우, 오래전부터 공연장 대관을 준비하고, 출연 계약도 일찍 한다. 그 정도 의리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바람피기 좋은 날>은 <헤드윅> 때문에, <고고 70>은 <이블 데드> 때문에 포기했다. 영화를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당장 해내야 할 일을 팽개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공연을 하면서 겪어온 순간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에게 무대란 고향이자 뿌리다. 공연에 입문한 초기 시절 또한 잊을 수 없다. “2005년에 <그리스> 할 때 공연 끝나고 선배들과 술 한잔하다가 택시비가 없으니까 막차 끊기기 전에 뛰쳐나와서 막차를 타거나 막차를 놓치면 찜질발에서 잤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잘 웃고 장난기도 많지만 눈물 흘리는 건 싫어한다.” 강하게 보이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스스로가 약해지는 게 싫을 뿐이다. 1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홀로 지쳐 쓰러져 울면서도 누군가의 앞에선 의연해야 했다. “어차피 앞으로 겪어야 할 경험을 조금 일찍 경험했다. 그래서라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었다.” 일흔이 넘는 어머니를 모시면서 기울어가는 가세를 지지해야 했던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일지 모른다. 2004년, 데뷔작 <호두까기 인형>에서 ‘사람도 아닌 1인 다역’을 연기하는 조정석의 무대를 처음 본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쏟았다. “처음으로 내 공연을 보셨는데 보고 나서 우시더라.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버는구나,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당황스러웠다.” 그 뒤로 아들의 출연작을 모두 챙겨본 어머니였다. 가끔 촬영이 없는 날 어머니와 함께 <더 킹 투하츠>를 볼 때면 TV 속 아들의 얼굴에 미소를 띄우시는 어머니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도,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생의 큰 목표’인 것도 어쩌면 그래서다. 하지만 ‘당장 누군가를 미친 듯이 사랑할 자신이 없는’ 지금은 ‘아직 아닌 거 같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아한 세계>의 감독 한재림이 연출하는 고려시대 사극 <관상>에서 조정석은 송강호, 김혜수, 이정재와 함께 촬영을 준비 중이다. <건축학개론>을 본 한재림 감독은 ‘괜찮은 배우가 있다’며 조정석을 추천했고 <더 킹 투하츠>를 본 송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선택받았다. 그것도 그가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이제 다시 출격이다. 출격.” 설렘이 가득한 미소로 내뱉는 단단한 각오. 그것 참, 결코 약해질 리 없는 관상 아닌가.
자신의 9번째 작품을 완성하려는 감독은 깊은 고민에 놓였다. 그의 초기작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서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근래에 그가 만든 작품들은 졸작이라는 오명 속을 헤맨다. 그에게 팬이라고 접근하는 이들도 그의 초기작을 칭송하면서 그의 근작에 대해서는 말문을 닫는다. 시나리오조차 탈고하지 못한 그는 영화 제작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조차 중간에 달아날 정도로 심각한 강박을 느끼고 있다.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장 귀도 콘티니(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자신의 새로운 영화를 갈망하지만 좀처럼 창작적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9살 유년 시절과 어른으로서 자라버린 현재 사이를 방황하며 자신의 주변에 자리한 여인들과 조우한다.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대표작 <8과 1/2>을 모티브로 삼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나인>을 다시 동명 그대로 스크린에 투영한 롭 마샬의 <나인>은 <8과 1/2>과 <나인>의 사이에 놓인 작품이다. 그러니까 <8과 1/2>과 <나인>이 각각 1/2처럼 더해진 결과물이랄까. 페데리코 펠리니가 완성한 자전적 고뇌가 다시 영화적으로 재현되는 동시에 뮤지컬 무대를 위해 마련된 퍼포먼스는 스크린에서 재현된다. 사실상 <나인>은 그 제목 자체만 보더라도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보다도 뮤지컬 <나인>의 영화화라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만 다시 영화적 형태로 재현되는 영화 <나인>의 형상은 원작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나인>이 페데리코 펠리니를 염두에 둔 결과물이 아니라 할지라도 두 작품에 대한 비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나인>은 단순히 그 캐스팅의 면면만으로도 이미 범상치 않은 외모를 지녔다. 귀도 역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비롯해 마리온 꼬띠아르, 페넬로페 크루즈, 니콜 키드먼, 케이트 허드슨, 주디 덴치, 소피아 로렌, (‘블랙 아이드 피스’의) 퍼기까지, <나인>은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스펙터클을 전시해버린다. 마치 조명이 점멸하듯 귀도의 곁에 등장하고 퇴장하는 여배우들은 그 자태만으로 <나인>의 매혹을 이룬다. 그 여배우들이 저마다의 음성과 몸짓으로 스크린을 수놓는 몇 장면은 <나인>을 기억하게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 된다. 배우들의 매력 그 자체를 캐릭터에 반영하고 여과 없이 스크린에 전시하는 <나인>은 그 이미지를 화려한 포장지처럼 두른 작품이다. 그 외형적인 화려함만으로도 <나인>은 분명 간과할 수 없는 풍요로운 볼거리임에 틀림없다.
뮤지컬 <나인>은 <8과 1/2>의 서사를 기본적인 골조로 삼되 뮤지컬 형식 자체를 통해 원작과 다른 차별화를 이루는데 성공했다. 영화 <나인>은 뮤지컬의 형태를 다시 스크린에 이양한다는 점에서 분명 원작의 궤도를 벗어난 차별성을 지닌 작품이다. 하지만 무대적인 연출 형식을 통해 스크린 원작과 온전히 다른 차원의 영역적 특성을 획득한 뮤지컬 <나인>과 달리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나인>은 영화적 형식으로 회귀했다는 점에서 원작의 형태가 환기될 가능성이 다분해졌다. <8과 1/2>의 서사가 축이 되는 뮤지컬의 영화화에서 <나인>은 그 서사적 형태를 연출하는 방식에서 온전히 <8과 1/2>의 자장 안에 놓여 있으며 뮤지컬 <나인>의 가무마저 차용한다.
<8과 1/2>과 뮤지컬 <나인>을 끌어안은 영화 <나인>은 두 영역을 탁월하게 봉합하지도, 어느 한 영역을 확실히 선택하지도 못한 채 배회한다. 시네마와 뮤지컬의 불편한 동거를 보는 것 같다. 뮤지컬 영화로서의 포만감은 부족하고, 원작에 대한 영화적 해석은 빈곤하다. <시카고>를 연출한 롭 마샬이라는 타이틀과 이를 수식하는 배우들의 이름은 그 자체로 반짝이는 외형을 이루지만 견실한 영화적 내면으로 잠입해 들어가지 못한다. 배우 고유의 개성만으로도 캐릭터들은 반짝거리지만 캐릭터 자체로서 태양처럼 발광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로부터 비춰진 매력을 달처럼 반사시켜 빛을 발한다. 덕분에 <나인>은 때때로 캐릭터가 아닌 여배우들이 출연하는 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 결국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인상적인 장면들은 순간적 전율로서 찰나를 지배할 뿐, 영화적 흐름을 만드는데 실패한다. 지속력이 약한 대신 압도적 순간이 틈틈이 나열된다. 결국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 시퀀스가 차례를 기다리듯 나열되고 이에 대한 기다림도 선망된다. 작품에 대한 지속적인 몰입이 쉽게 무산된다.
그럼에도 <나인>은 단지 그 인상적인 몇 장면의 우월함을 통해 온전히 가치가 폄하될 수 없는 영화다. 세트장에 들어선 귀도를 따라 빛을 떨어뜨리며 음영의 대비를 선명히 이루는 오프닝 시퀀스 이후의 광경은 무대적 연출 기법을 스크린에 반영하는 <나인>의 진가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기라성 같은 여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는 단지 그것만으로 <나인>을 ‘it movie’로 만든다. 특히 마리온 꼬띠아르는 <나인>에서 재발견에 가까운 성과를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Be Italian’을 열창하며 정열적인 퍼포먼스를 선사하는 퍼기의 무대는 단지 그 신만을 떼어놓고 반복해서 되새김질하고 싶을 정도로 <나인>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로 만든다. 결국 <나인>은 감독의 재능보다도 이를 압도하는 뮤즈들의 향연으로서 보다 높은 가치를 전하는 무대인 셈이다.
결혼을 하루 앞둔 신부가 예기치 않은 죽음에 터진다. 우발적인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 예비신부 히로코(우에노 주리)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시체를 유기하기로 결심한다. 히로코는 평생 꼴찌로 살아왔다는 열등감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이상형과의 결혼식을 포기할 수 없다. 결국 시체를 트렁크에 담아 집을 나선 히로코는 그 와중에 길에서 빠친코 전단지를 돌리던 코미네(코이데 케이스케)의 차를 탈취해 산에 오르지만 자살을 희망하는 여자 고바야시(키무라 요시노)의 엉뚱한 동행을 받아들인다.
산으로 가는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시종일관 엉뚱한 인물들의 등장을 통해 이야기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범위로 틀어댄다. 뮤지컬적 특성이 강하게 반영된 도입부 시퀀스를 비롯해 때때로 스릴러나 호러적인 연출이 가미되는 등 다양한 장르적 형태가 순열적으로 전시되는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기본적으로 코미디를 목적으로 둔 산만한 소동극이다. 새로운 삶을 꿈꾸던 여자가 우발적인 사건으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많은 사건을 겪은 뒤 비로소 성장을 맞이한다는 성장담이기도 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두 여자의 버디무비이자 캐릭터 무비이기도 하다.
두서없이 진전되는 산만한 전개와 과장된 감정을 표출하고 상황을 연출하는 캐릭터들은 고의적으로 의도된 코미디의 양식에 가깝다. 시종일관 비현실적인 태도로 일관되는 상황은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이 현실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품었다는 사실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한 방편처럼 보일 정도다. 무엇보다도 백치미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우에노 주리의 캐릭터 소화능력은 영화적 과장마저 자연스러운 설정으로 이해시키는 윤활유에 가깝다. 사실상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우에노 주리의 매력에 기대고 있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낙관에 대한 강박이 지나친 영화다. 소재적으로 <달콤, 살벌한 여인>을, 캐릭터적으로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을 떠올리게 만드는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앞선 두 영화와 마찬가지로 허구적 사연에 현실적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그러나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형식적 열거에 치우친 나머지 본질적인 감정의 밀도를 채우는데 실패한 영화처럼 보인다. 감정이 탈색된 백치미적 사연의 끝에 자리한 성찰적 태도마저도 또 하나의 형식적 나열처럼 보일 뿐, 그에 앞서 전개된 사연의 총합이 이루는 결과적 에너지로서 작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엉뚱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매 시퀀스마다 순간적인 에너지를 발생시키지만 저마다 파편화된 형태로 굴러가는 시퀀스들은 결과적으로 응집된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고 곧장 휘발되듯 소모된다. 결국 여정의 나열 끝에 걸리는 캐릭터의 성찰은 딱히 인상적인 감상을 남기지 못하고 어색하게 자리할 뿐이다. 좀처럼 와 닿지 못하는 낙관의 비현실성이 마음에 걸린다. 우에노 주리를 비롯해 과장된 상황에 몰입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결국 그 과장된 상황의 연속적 나열이 부여하는 소동극이 나름의 재미를 부여하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통해 농익어야 할 성찰은 헐겁다. 백치미적인 웃음을 나열하는 것도 좋지만 낙관적 성찰마저 백치미적이라 너무 가볍다.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누구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치열한 경쟁과 끝없는 노력을 통해 실력을 키우고 무대에서 이를 입증한 이만이 명성을 얻고 성공이란 단어를 거머쥔다. 80년대 동명작품을 리메이크한 <페임>은 성공을 꿈꾸는 청춘남녀의 스토리를 담보로 춤과 음악적 묘미를 발산하는 뮤지컬 영화다. 무엇보다도 80년대의 <페임>과 2009년의 <페임>은 대중문화의 시대적 변화를 통해 큰 차별점을 둔다.
알란 파커의 80년대 원작에서 들려진 타이틀 넘버 ‘페임(fame)’을 변주한 동명타이틀곡만으로도 새로운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페임>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대중문화적 패러다임을 적극 반영한 작품이다. 엠비언트 뮤직이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힙합 등 현대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비롯해 현대무용까지 포괄한 대중문화의 변이를 대거 활용한 <페임>은 80년대 원작과 전혀 다른 포장지를 활용함으로써 리메이크물로서의 차별화를 이룬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페임>은 뉴욕의 유명 예술고 입학 오디션에 무수한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하기까지의 진급과정을 서사적 줄기로 밀어간다. 오디션과 매학년 시기, 그리고 졸업까지, 이 모든 과정을 서사적 챕터로 구분한 <페임>은 학생들의 성장과 관계적 진전을 주요한 사건으로 다룬다. 그만큼 청춘의 감수성을 밑천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인물 관계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묘미가 마련된다.
다양한 학생들의 단계적 성장을 지켜보는 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까닭에 집중력 있는 성장담을 그려내지 못한다는 건 <페임>이 성장드라마로서 약점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분절된 챕터로 구성된 입학과 진급, 졸업까지의 과정이 드라마의 진전을 방해하고,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이 서사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준다는 건 일면 아쉬운 측면이다. 그럼에도 <페임>은 분명 뮤지컬 영화로서 즐길만한 순간들이 자리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빠른 컷으로 시선을 잡아 끄는 초반부 오디션 장면부터 즉흥적인 연주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식당 시퀀스, 그 밖에도 무도회를 비롯한 다양한 가무의 향연이 곳곳에 배치되어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든다. 특히 피날레를 장식하는 졸업공연은 분명한 볼거리다.
혈기왕성한 도전과 낭만이 깃든 예술고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생기발랄한 청춘의 일상을 그려나가며 에너지를 확보한다. 무엇보다도 <페임>의 덕목은 성취만큼이나 좌절의 과정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단지 성장하는 학생의 사연에 집중하기보다도 어린 학생들의 재능을 다스리고 바른 길로 이끄는 교사들의 진실된 표정과 솔직한 조언을 인상적으로 묘사한다. 프로 댄서가 되길 원하는 제자의 실력이 부족함을 냉정하게 조언함과 동시에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주는 교사의 얼굴은 경쟁의 본질이란 단지 누군가를 이겨내는 것이 아닌 자신에 대한 끝없는 극복임을 일깨운다. 단지 타인보다 위에 서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에 새로운 대안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바로 경쟁의 본질임을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도 <페임>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공유할 수 없는 엄격한 교육문화와 자발적이고 여유로운 경쟁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타인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경쟁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결국 그 체제에서의 낙오는 좌절보단 새로운 도전을 낳는다. 줄세우기를 통해 성공하는 자와 낙오하는 자 사이에 선명한 금을 그어버리는 사회에서는 결코 꿈꿀 수 없는 낭만이 실로 부럽다.
뮤지컬 배우로서 경력을 쌓아왔다. 우선 뮤지컬이 좋았다. 노래 부르는 걸 되게 좋아했었거든. 그런데 연기랑 노래를 같이 가져갈 수 있는 게 뮤지컬이니까.
노래를 좋아했다면 가수를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도 잠깐 했었다. 실제로 제의도 들어왔었고. 군대 가기 전, 스무살 즈음이었나. 그런데 만약 그러려면 계약을 해야 되고 5년 동안 1년에 앨범 한 장씩 내야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 “그러면 난 연기는 못하나요?” 그랬더니 안 된다고, 가수에 전념해야 한다고 하길래 안 한다고 했던 적이 있었지.
요즘 주말극에 출연하고 있는데 드라마 연기는 어떤가? 나름대로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김치 치즈 스마일>(이하, <김치>)로 처음 방송할 당시에 감독님과 PD님들이 ‘원투쓰리’(스튜디오 카메라)를 처음하는 데도 정말 빨리 적응한다고 하더라. 그 전에 ‘드라마시티’도 해봤지만 거기선 세트촬영도 다 ENG카메라로 찍었으니까. 하지만 처음엔 연기 자체가 어색했다. 계속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기도 했고.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나 보다.
사실 내가 연극이나 뮤지컬에선 우는 연기를 잘 하는 편이다. 그런데 예전에 ‘드라마시티’로 처음 방송 카메라 앞에 섰을 때였다. 타이트 바스트샷(T.B.S)을 잡고 한 페이지가 조금 넘어가는 대사를 혼자 쭉 치면서 울어야 되는 씬이 있었다. 앵글 다 잡아놓고, 조명도 다 설치됐고, 이제 나만 준비하면 다 되는 건데 끝까지 울지 못하겠더라. ‘티어스틱(tear stick)’도 발라보고 안약도 넣어봤지만 안 되는 거다. 그때 감독님께서 내가 눌린 거 같다고 하시더라. 이 사람들에게 눌렸다는 표현을 하시더라고.
그 뒤로 카메라 앞에서 눈물 연기를 할 기회가 없었나?
그 이후에 <김치>에서는 다행히도 우는 씬이 없었고, 시트콤에선 울 일이 별로 없잖아. (웃음) 그 뒤로 <라이프 특별조사팀> 거의 마지막 회 즈음에 야간 촬영인데 우는 씬이 있었다. 진짜 소주를 몇 잔 마시고 갔었다. 내 캐릭터가 아빠라고 부르던 좋아하는 아저씨의 유품을 만지면서 대사도 없이 그냥 우는 씬이었는데 그때는 바로 눈물이 나더라. 술기운 탓이었나 모르겠는데. (웃음) 그래서 딱 두 번 만에 오케이 싸인을 받고, 그 씬 끝나자마자 드라마씨티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말했다. “저 드디어 울었어요.” (웃음) 잘 했다고 하시더라. 처음엔 이렇게나 적응을 못했다.
나름대로 기울인 노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우선 촬영장을 많이 다녔었다. 나는 탤런트나 영화배우들이 대단하게 보였다. 촬영장에서 보면 배우가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나. 저 상태에서 어떻게 연기하나 싶더라. 막상 직접 해보니까 처음엔 역시나 어색하더라.
의외다. 무대에서 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 연기해왔으니 오히려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느낌의 차이가 있다. 관객은 직접 돈 내고 온만큼 열심히 보려는 의지가 있지만 스태프들은 그 느낌이 아니니까. 그 기가 그 기가 아니다. 다르더라. 그래서 내가 눌리더라고.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카메라 렌즈나 조명도 생소하고.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함께 출연했던 최다니엘 씨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연기할 때 엄기준 씨의 포스가 장난 아니다라고 하던데.
그냥 좋자고 해주는 말 아닐까. (웃음)
하지만 오랫동안 무대에서 연기를 해온 만큼 무대 장악력이 씬 장악력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무대에서 연기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얻었다고 자신할만한 자산이 있나?
자신감까진 모르겠지만 우선 씬이 하나 있으면 이 씬에서 전달해야 될 목적이 뭔지 디테일 하게 파악된다. 씬이나 작품 분석력이 생겼다고 할까. 물론 드라마했다고 그런 걸 모른다는 건 아니다. (웃음) 그냥 좀 더 디테일하다는 거지. 어차피 드라마는 장면을 따고, 따고, 이런 경우가 많지만 고정해놓고 쭉 가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땐 집중의 끝을 놓치지 않고 가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 유리한 거 같다. 무대에서는 거진 그런 식으로 가니까, 드라마는 집중이 안 되면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가기도 하지만 무대에선 무조건 끝까지 집중력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훈련은 충분했던 것 같다.
무대에서 나름 유명세를 얻었지만 최근 방송에 출연한 짧은 기간에 얻은 유명세가 오히려 먼저 인식되는 거 같다.
아마 지금 10년 넘게 연극이나 뮤지컬을 했던 나를 아는 사람이 이만큼이면, (작은 원을 그리면서) 2년도 채 안된 사이에 드라마 몇 편으로 나를 알게 된 사람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그런 인지도도 어느 정도 신경 써야겠지. 다만 아직은 방송을 시작한지 2년 밖에 안 됐으니까 좀 더 방송 연기에 적응해야 될 거 같다. 아직은 이쪽에서 보면 신인이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오래가겠지.
10년 넘게 무대를 지켰는데 그게 개인적인 고집에서 비롯된 결과일까, 아니면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건가.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부분도 있고. 내가 96년도에 뮤지컬을 같이 했던 이인철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시다. 같이 술도 자주 마셨는데 내가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선생님께서 모노드라마를 하고 계셨다. 그래서 그 공연을 보고 같이 소주 한잔을 하는데 그 때, 계속 연기하고 싶으면 무대에서 10년만 버티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 10년 버티는 게 힘들거든. 그런데 어떻게든 나는 버티게 됐다. 언젠가 TV를 보면서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되는 탤런트를 봤다. 누군진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 분을 보면서,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대에서 10년을 버티면 ‘저 정도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고. 어쨌든 궁극적으로는 나도 10년이 지나면 영화든 드라마든 다른 걸 해보고 싶었으니까.
예전에 <그리스>에서 김무열 씨와 더블 캐스팅으로 공연한 적이 있다. 올해 김무열 씨를 만났었는데 엄기준 씨가 춤을 못 춘다고 하더라.
<그리스>의 역대 ’대니’ 중에서 춤 못 추는 대니가 세 명 있는데, 이거 얘기해도 되려나? (웃음) 오만석, 이선균, 엄기준이라고. (웃음) 순위까진 말씀 드리지 않겠다.
그런데 김무열 씨는 그 당시 당신이 대니를 재해석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하더라. 춤추고 멋진 척만 하는 대니를 쉴새 없이 입담을 구사해서 웃기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렸다나.
내가 역대 대니 중에서 가장 쌈마이였다더라. 가장 웃기는 대니였다나. (웃음) 사실 그때는 일부로 그런 것도 있었다. 왜냐면 공연이 길어지면 배우들이 많아서 솔직히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거든. 우리끼리 하면서도 재미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지. 그래서 난 공연 때마다 애드립을 조금씩 바꿨다. 애들 보고 긴장하라고. 그러니까 나름대로 우리도 좀 재미있게 하자는 의미랄까. 물론 정석대로 지켜야 할 약속이란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짜인 대로만 가면 스스로가 일단 지치니까, 내가 즐거워야 관객도 즐거워할 거 아닌가.
아무래도 자신이 그 집단을 이끌 정도의 재량이 되니까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고.
솔직히 그 때 <그리스>멤버들 가운데 내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래서 연출도 나를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고, (웃음) 그냥 내 멋대로 했었지. 그래서 애들은 형 오면 즐겁다고 했는데 나는 나중에 대표한테 한 대 맞고. 너 이제 그만 좀 맘대로 해라, 하면서. (웃음)
무대 위에서는 그렇게 익살맞은 모습도 많이 보여주는데 평소 성격도 활달한 편인가?
평소에 잘 못하는 걸 무대에서 하는 거 같다. 사실 난 그렇게 밝거나 유머스럽지 않다. 그래서 그걸 무대에서 대리 만족하려는 것도 있는 거 같다. 평상시에는 얘가 저기 언제 있었냐고 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 연습할 때도 말도 거의 없고 가만히 보고 있는 편이고.
방송을 통해 얼굴이 노출되면서 배우에서 연예인으로 영역이 확대된 느낌이다.
연예인이라는 말이 맞겠지. 나한테는 그게 좀 안 좋다고 할까. 배우로 남고 싶은데 연예인이 되면서 상품이 돼버리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가끔 들긴 한다.
예전엔 심은진 씨와 스캔들도 났다. 신변잡기까지 관심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부담되는 일이겠지.
(웃음) 나는 그래서 오히려 이런 생각도 해봤다. 주연 말고, 조연으로 쭉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왜냐면 그렇게 되면 크게 상품화되지도 않고 별로 이슈거리가 안될 것 같아서, 그리고 연기는 연기대로 할 수 있고. 게다가 조연은 따먹을만한 배역이 생각보다 많다. 오히려 주연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고.
주연 욕심도 없진 않을 텐데. 없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지. 그런데 우선 요즘 주연배우를 하려면 일단 기본적으로 잘 생겨야 된다. 나는 사실 잘 생긴 배우 쪽은 아니잖아. 나이도 벌써 서른 중반이고. 뭐, 조연으로 가는 게 차라리 금방 기회를 얻기 쉽지 않을까. 나는 그냥 둘 다 좋다. 조연이든, 주연이든.
아까 춤 못 추는 3대 대니로 꼽힌다는 오만석 씨나 이선균 씨는 요즘 영화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혹시 시나리오 제의를 받아본 적은 없나?
없다. 요즘은 워낙 시장도 워낙 안 좋고.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도 없진 않을 텐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안 불러준다. (웃음) 예전에 오디션 본 적은 많다. 유해진 선배 나왔던 <트럭>이나 천호진 선배 나왔던 <GP506>이나, 꽤 많았지. 그런데 잘 안 됐고. (웃음)
하지만 여전히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로 꼽히고 있다.
(조)승우가 지금 군대간 사이에 빨리 1위가 돼야 하는데! (웃음)
얼마 전에 공연했던 <밑바닥에서>의 흥행성적이 괜찮은 편이었다고 들었다.
다행히도.
본인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수로 선배님을 무시할 순 없지. 아마 내년에도 수로 형과 연극 한 편을 같이하게 될 거 같다. 작품은 이미 정해놨고 개관 날짜만 잡히면 된다. 수로 형한테 말했더니, “봄쯤 하자, 봄쯤.” (목소리를 따라 하면서) 이러더라. (웃음)
원래 김수로 씨는 고전연극에 정통한 배우다. 하지만 그 동안 코믹한 캐릭터로 지나치게 소모된 감이 없진 않다. 아무래도 방송이나 영화가 인지도를 얻기에 좋은 매체이긴 하지만 그만큼 쉽게 이미지가 고착화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렵진 않나?
두려움은 없지만 내 고집을 언제까지 가져갈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히 어느 순간 무너질 때가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무너지더라도, 그래도 엄기준은 연기를 잘했으니까 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1년에 한 편씩이라도 연극을 하려는 이유도 그걸 위해서다. 결론은 저 놈은 뭘 시켜도 잘 하니까, 못하진 않으니까, 그런 소리가 듣고 싶은 거다.
10년을 넘게 무대에서 활동해오면서 혹시 자신의 길을 의심해본 적은 없나? 앞만 보고 온 거 같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다만 딱 한번 딜레마가 온 적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여태껏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열심히 걸어왔는데 한번 정체된 느낌을 얻게 된 순간이 있었다. 2003년 정도였나, 앞으로 갈 길은 놓여있는 거 같긴 한데 계속 올라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그렇게 계속 제자리 걸음 하고 있는 거 같았다. 같이 연극하는 누나한테 그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극복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냥 네가 꾸준히 열심히 하면 어느 순간 뭔가가 좀 나올 거라고만 얘기해 주시더라.
지금은 어떤가? 무대에서 벗어나 드라마를 하는 만큼 도전적인 기분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한 편으로 환경이 변한 만큼 또 다른 매너리즘이 오기 쉬운 상황이 아닐까.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 마음껏 바꿀 수 있는 것도 배우의 능력이 아닐까.
5월부터 뮤지컬 <삼총사>를 공연할 예정이다. 박건형 씨와 ‘달타냥’ 역할에 더블 캐스팅 됐는데 ‘삼총사’에서 달타냥은 아토스와 함께 인상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특별히 아토스나 달타냥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진 않다. 브루투스나 아라미스까지 네 캐릭터에게 동등하게 포커싱이 맞춰져 있다. 각자 자기만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기 떄문에 특별히 주인공이 누구라고 말하긴 어렵지. 그런 면에서 보면 원작보다 달타냥과 아토스의 비중이 없어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랄까.
지금 출연 중인 주말연속극 촬영과 함께 리허설도 병행하고 있겠다.
덕분에 종종 리허설에 빠질 수 밖에 없어서 건형 씨한테 미안해 죽겠습니다. (웃음)
스케줄이 겹치면 아무래도 힘들 텐데, 사실 이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않나.
<김치>때도 <미친 키스>와 <실연남녀>를 같이 했으니까.
그렇게 스케줄을 병행하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올 텐데. 그래서 링거 맞아가면서 했다. (웃음) 그 때까지만 해도 링거주사라는 걸 한번도 안 맞아봤는데 어느 날 아침에 <김치> 첫 씬을 찍으려는데 갑자기 핑 돌더니 나도 모르게 주저앉게 되고 식은 땀이 나더라. 혜영이 누나와 같이 촬영할 때라서 혜영이 누나한테 얘기했더니 자기가 잘 아는 데가 있다고, 좋은 주사를 놔주는 곳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거기 가서 주사 한대 맞고, 그 이후로 <김치>끝날 때까지 한 달에 한 대씩 맞아가면서 활동했다. 그런데 무슨 20만원이나 해. 한 시간 반 만에. 너무 비싸. (웃음)
여러 역할을 병행하면 캐릭터 간의 혼선이 생기는 경우는 없나?
오히려 되게 재미있다. 혼선이 생길 까봐 조심하게 되니까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있는 거 같다. 혹시나 내가 ‘싸친’을 연기하고 있는데 ‘승현’이 나오진 않겠지, 라는 생각.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고.
특별히 연기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다양한 종류의 여러 역할을 맡아보고 싶지만 정말 해보고 싶은 역할은 완전히 싸이코 같은 극단적인 역할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연기자로서 꿈꾸는 지점이나 목적이라 말할 수 있는 건 나이 일흔을 먹고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거다. 그러려면 중간에 매장당하면 안되겠지. (웃음)
미니홈피에서 ‘Tesla’의 ‘Love song’이 나오던데 좋아하는 노래인가 보다.
95년도에 밴드를 결성해서 콘서트도 하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 때 항상 들었던 게 락발라드였다. 아무래도 내가 부를 수 있는 쪽으로 노래를 듣게 되니까. 그 때 한참 좋아해던 노래가 ‘Love Song’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그 노래를 듣게 돼서 갑자기 생각나길래 나중에 싸이에서 찾아서 그 노래를 깔아놨다.
그 노래를 불러줄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이제 결혼도 생각해야 할 나이인데.
아니. 나는 좀 더 이 쪽 바닥에서 쐐기를 박고 결혼하려고. 그리고 우리 어머니께서 정말 감사하게도 결혼하라는 압박도 안 주신다. 넌 아직 철이 없으니까 좀 더 철들고 나서 결혼하라고, 안 그러면 며느리가 정말 힘들 거라고. (웃음)
<빨래>는 평범하듯 비범한 뮤지컬이다.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유머와 경쾌한 넘버가 인상적인 뮤지컬이지만 궁극적으론 가난한 사랑노래라 마음 한 부분이 애잔해진다. 사회의 밑바닥을 이루는 빈민층들은 저마다의 꿈을 접고 접어 달동네 한 켠 작은 방에서 또아리를 틀 듯 비좁게 살아간다. <빨래>는 그들의 삶을 단순하듯 진솔하게 묘사하며 유쾌하듯 구슬픈 멜로디로 노래한다.
청운의 꿈을 품고 강릉에서 상경했던 나영과 돈을 벌기 위해 몽골에서 입국해 불법체류 중인 솔롱고는 서울 생활 5년 차 만에 기어들어간 달동네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 마주친다. 강릉에서 올라온 나영에게도, 몽골에서 들어온 솔롱고에게도, 서울은 그저 이방인의 땅처럼 무심하고 차가울 뿐이다. <빨래>는 그들이 만나 사랑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로맨틱한 뮤지컬이다. 하지만 그것을 온전한 낭만에 기대어 설명하지 않으며 그 결심을 단순히 젊은 날의 치기처럼 가볍게 묘사하지 않는다. <빨래>는 대사를 통해 곧잘 ‘힘내라’는 격려를 던지곤 하는데 이로부터 이 뮤지컬의 힘이 전해지는 느낌이다. 지극히 상투적인 인사처럼 느껴질 만한 이 세 음절의 언어는 가난과 불행 속에서도 꿋꿋이 삶을 지탱하는 이들간의 격려로서 당위를 얻고, 결국 객석의 관객에게마저도 힘을 보탠다.
두 주인공인 나영과 솔롱고 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욕쟁이 주인할매. 이 뮤지컬에서 웃음과 눈물이라는 감정적인 너비를 보장하는 캐릭터이자 결정적인 추임새로서 박혀있는 그녀는 두 주인공보다도 <빨래>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헌도를 책임지는 인물이다. 특히 <빨래>는 주인공보다도 조연들의 연기가 더욱 두드러지는 뮤지컬이기도 한데 욕쟁이 주인할매를 연기하는 이정은과 함께 구씨를 비롯해 남자 조연 캐릭터 대부분을 소화하는 정문성, 이영기 두 배우의 연기 또한 꽤나 반갑고 정겹다. 특히 이 세 배우는 대학로 원더스페이스에서 공연하던 원년 멤버로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는 점을 눈 여겨 볼만하다.
원년 라인업 당시에도 나영 역을 맡았던 주연 여배우의 성량이 약간 부족했던 점이 아쉬웠던 것처럼 새로운 캐스팅에서도 마찬가지의 결핍을 느끼게 된다. 기본적인 음색은 곱지만 고음 처리가 종종 불안하다. 무엇보다 이번 라인업의 변화는 임창정이라는 스타급 배우와 홍광호라는 뮤지컬 스타의 가세인데 전자의 공연을 봤으므로 후자 쪽의 평은 어렵겠다. 다만 가수 출신이며 연기자인 임창정은 나름 나쁘지 않다. 특히 도올을 패러디한 서점 싸인 씬의 재치와 팬서비스 차원의 실제 관객동원 싸인은 아이디어가 괜찮다. 스타 마케팅을 잘 활용한 결과물이다. 다만 배우의 연기와 무관하게 이처럼 군무적인 형태의 연출이 행해질 때 시선이 어느 개인에게 집중된다는 건 심리적으로 피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 아닐까. 대부분이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무대 배우 가운데 독보적인 네임밸류를 지닌 배우가 존재한다는 건 묘하게 전체적인 호흡을 망각하게 만드는 자질이 된다. 좋은 작품의 이름값을 더욱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타의 기용은 효과적이나 관객의 시야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은 한편으로 고민할만한 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빨래>는 원더스페이스 공연 당시 좁은 무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세트가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좀 더 무대가 넓어져 그런 묘미를 관찰할만한 구석이 경감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 기능성을 계승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노래가 꽤나 괜찮다. 뮤지컬이 귀에 감기는 넘버를 만든다는 건 분명 성공적인 일이며 <빨래>는 그 방면에서 괜찮은 성과를 거둔다.
<빨래>는 분명 좋은 뮤지컬이다. 적절한 너비와 깊이를 갖추고 있다. 엄청난 미사여구를 동원할만한 업적의 반열까진 아니라도 대중적 공감대를 아우르는 주제의식과 소재를 착취하지 않고 진심이 담긴 배려가 인상적인, 누군가에게 권할 만큼 좋은 작품으로 손색없다. 기능적으로 탁월하며 정서적으로 원숙하다. 단지 구색을 맞춘 희망이 아니라 진짜 희망을 갈구하는 이들의 꿈이 강렬하게 와 닿는다. 이 가난한 사랑노래를 응원하고 싶은 건 그 때문이다. 그 사랑엔 낙관보다도 비관이 어울리지만 응원하고 싶은 진심을 부른다. 돈으로 사랑을 사고, 재물이 행복을 대변하는, 낭만이 사라진 시대에서 낭만을 꿈꾸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한다. 이 막막한 도시에서 살붙이고 살 수 있는 사람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된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 모두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힘내자. 근심 걱정일랑 매일같이 빨고 새롭게 살아가자. 자기 냄새를 풍기며 살아가자. 사람답게 사랑하자.
좋은 작품은 때로 장르적 경계를 넘어서 영향력을 행사하곤 한다. 뮤지컬에서 영화로 변주된 <오페라의 유령>이나 <마이 페어 레이디>와 같은 작품은 너무도 유명하고 활자에서 영상으로 치환되는 유명 소설의 예는 방대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심지어 ‘비틀즈(Beatles)의 음악과 삶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나 퀸(Queen)의 노래에서 모티브를 얻은 뮤지컬 ‘We will rock you’처럼 그 영향력은 형태의 판이함조차 무난하게 극복한다.
텍스트와 이미지, 무대와 스크린, 음악과 연기, 그 간극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제반 조건은 컨텐츠의 육체를 입고 변형되는 소스의 기본 자질이다. 특히 오늘처럼 하이브리드와 크로스오버의 유통이 활성화된 시대에서 훌륭한 작품은 장르의 형식을 초월해 다양한 양식으로 거듭 재생산될 가능성이 크다. 스웨디쉬 팝(Swedish Pop)의 전설적인 그룹 ‘아바(ABBA)’의 노래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유명 뮤지컬 ‘맘마미아!’ 역시 훌륭한 컨텐츠의 변형 유통 생산과정을 거친 모범전례라 할만하다. 1999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된 이후로 16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공연된 뮤지컬 ‘맘마미아!(Mamma Mia!)’가 이제야 비로소 무대 공연이 아닌 스크린 상영의 단계로 옷을 갈아입었다. 게다가 2004년 국내에서 초연된 이후로 7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전례가 있는 만큼 <맘마미아!>의 영화화 소식은 결코 국내 관객에게도 무심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스의 한 섬에서 오래된 호텔을 경영하는 도나(메릴 스트립)의 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아버지로 추측되는 어머니의 옛 연인 세 명에게 결혼을 앞두고 편지를 보내 그들을 초대한다. 결국 중년의 세 남자가 섬을 방문함으로써 그들과 그녀들 사이에 묘한 사건들이 펼쳐진다는 <맘마미아!>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 뮤지컬만큼이나 발랄한 넘버들로 채워진 유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리스 섬을 둘러싼 지중해의 푸른 바닷물만큼이나 싱그러운 뮤지컬 넘버들이 유명세만큼이나 연기되고 노래되는 배우들의 목청으로 재탄생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 역시 눈과 귀가 즐거운 호사임에도 틀림없다. 게다가 캐스팅 자체가 이 영화의 야심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미 근래 <프레리 홈 컴패니언>을 비롯한 과거 여러 작품에서 발군의 노래 실력을 뽐낸바 있는 메릴 스트립을 비롯해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줄리 월터스와 같은 배우들이 관록 있는 보컬을 선사하고 소피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비롯한 젊은 배우들이 청량한 화음을 더한다.
연출의 평이함은 이 뮤지컬의 유명세에 따른 기대감을 다소 중화시킨다. 넘치는 야심에 비해 특별함을 과시해야 할 몇몇 장면들이 지극히 안일해 보인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던 현란한 율동을 영화적으로 재연해보고자 한 야심들은 스크린의 평면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인지 다소 비약적인 상황만을 제시할 뿐 정리되지 못한 산만함을 드러낸다. 평면적인 스크린에 무대의 입체적 양식을 구사하지 못하고 강요하는 꼴이다. 특히 급작스러운 전개와 함께 펼쳐지는 초반부엔 극중 몰입이 쉽지 않은 느낌이다. 특히 배우의 개인적 동선이 군무로 확장될 때 종종 세련된 무대 매너가 연출되지 못하고 스크린을 채운 배우들의 수적 우위만이 확인된다.
그 모든 악재를 무시하고 싶은 건 끝내주는 뮤지컬 넘버들 덕분이다. 걸출한 배우들의 목소리로 레코딩된 사운드 트랙은 오리지널 뮤지컬 넘버와 비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상당한 물건이다. 장면 연출에 대한 아쉬움이 상쇄되는 건 그 음악들이 발군의 엔터테인먼트적 충족감을 주는 덕분이다. 특히 메릴 스트립은 가히 독보적이다. 물론 때때로 말괄량이처럼 구는 그녀의 모습은 어색함을 유발하지만 그런 극히 일부의 상황을 배제한 대부분의 장면들은 장면의 평이함에 깊은 감흥을 불어넣는다. 특히 샘 카마이클(피어스 브로스넌)을 바라보며 ‘The winner takes it all’을 부르는 후반부는 잊을 수 없는 관록의 깊이를 발산한다. 생기발랄한 에너지가 충만하게 뒤엉키던 초반부의 어지러움은 덕분에 후반부로 접어들며 안정을 찾는다. 훌륭한 배우들과 그들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좋은 노래들 덕분에 <맘마미아!>는 뮤지컬의 명성을 따라잡지 못해도 사랑스러운 영화로 거듭난다. 특히 결말부 엔딩 크레딧과 함께 펼쳐지는 특별한(?) 공연은 흥겹다. <맘마미아!>는 지중해의 푸른 바닷물처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해맑은 감격을 줄만한 영화다. 그리고 상영관을 빠져나가는 관객을 미소 짓게 한다면 충분한 값어치는 있다.
일단 ‘젤리클 고양이’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뮤지컬 <캣츠>를 아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물론 T.S.엘리엇의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를 읽었기 때문이야! 라고 반박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겠죠. 하지만 이미 원작보다 유명해져 버린 뮤지컬을 먼저 염두에 둔다는 게 그리 어리석은 일은 아니겠죠?
사실 (인터미션 20분을 제한) 2시간 20분의 공연을 관람하고 나온다고 해도 저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아요. 젤리클 고양이를 아냐고 객석에 물음을 던지던 고양이들은 공연 내내 젤리클 고양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번도 대답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젤리클 고양이가 어떤 고양이인지에 대한 고민 따위는 금새 사라질 겁니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고양이란 동물에 대한 호감 정도는 생길 수 있을 거에요. 중요한 건 사실 젤리클 고양이가 뭘까, 라는 고민 따윈 중요하지도 않다는 거죠. 공연을 보고 나서 저 물음표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어쩌면 젤리클 고양이에 대해서 되묻는다는 건 내 이름의 연원을 캐묻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일 거에요. 젤리클 고양이는 말 그대로 ‘젤리클 고양이’일 뿐이라고요. 바로 당신이 2시간 20분 동안 주목하는 무대 위의 고양이들 말이죠.
젤리클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고양이의 모든 것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물론 그들은 고양이가 아니에요. 엄연히 사람이죠. 그걸 당신이 알고 있다는 점이 <캣츠>의 묘미입니다. 고양이 분장을 하고, 꼬리를 달고, 고양이의 네발처럼 무릎과 팔로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고양이처럼 눈을 비비거나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죠. 그 모습은 실로 고양이처럼 앙증맞거나 도도하고 우아해서 놀라울 지경이에요. 그들은 철저하게 고양이처럼 굽니다. 게다가 그들은 종종 무대에서 뛰쳐내려와 객석 사이를 활보하곤 합니다. 공연이 시작할 때쯤, 무대 위로 슬금슬금 모여들던 고양이들에 집중하다 어느 순간 옆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고양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될지 몰라요. 그들은 무대 뒤에서 튀어나오거나 무대 위에서 객석으로 뛰어내려와 당신을 바라보며 노래하기도 하죠. 만약 당신이 운좋은 관객이라면 자신을 선택한 고양이와 객석을 거닐게 되는 영광(!)도 누릴 수 있을 거에요. 물론 본인에게 모든 관객의 시선이 모이는 것쯤은 감안해야죠. 하지만 그 눈길에 어떤 부러움이 섞여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건 결코 나쁜 경험이 아니겠죠? 무엇보다도 최고의 팬서비스는 <캣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오리지널 넘버, ‘Memory’의 한 소절을 한국어로 부르기도 한다는 점이죠. 가히 감동적이에요.
현대무용에 기초한 군무와 독무는 절제된 세련미와 함께 화려한 동선을 자랑합니다. 호사스러운 볼거리임에 틀림없죠. <캣츠>는 연극적인 이야기 흐름보다는 화려한 안무와 흥겹거나 구슬픈 음악을 통해 뮤지컬의 묘미를 철저하게 증명하는 작품이에요. 사실 중심인물의 교체와 함께 단막적인 형식으로 치고 빠지는 <캣츠>의 내러티브 구조는 관객에게 친절한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동시에 몰입도가 상승하는 관객이라면 이 뮤지컬에 집중하기 힘들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요. 하지만 <캣츠>는 결코 허술한 뮤지컬이 아니에요. 앞에서 언급한 것과 연관이 있지만 <캣츠>의 이야기 구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나열되는 건 이유가 있어요. <캣츠>가 T.S.엘리엇의 시집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시집을 하나의 뮤지컬 형태로 완성함에 있어서 <캣츠>는 그 개별적 장르의 특성을 이야기 구조에 반영하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그것이 무대 위를 가득 채운 스물아홉 마리 고양이들의 사연을 다채롭게 전달할 수 있는 현명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무대 위를 누비는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개성이 넘쳐요. 당신이 평소에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그 취향을 다시 한번 재고해보고 싶을 거에요. 게다가 그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인간과 다를 바가 없어요. 그들은 각각 무대 앞에 서서 관객들을 향해 자신들의 사연을 노래하곤 하죠. 그들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저마다 제 성격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 와중에 갈등과 충돌도 발생하지만 사랑과 우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펼치는 대장정의 궁극적인 주제는 고양이를 존중해달라는 정중한 부탁이에요. 이렇게 매력적인 고양이가 존중 받을만하지 않나요? 라고 스스럼없이 묻는 그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낭만고양이임에 틀림없어요.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온화하며, 사나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앙증맞은, 그런 고양이라고요. 뮤지컬 <캣츠>는 당신에게 지혜로운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안내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 고양이 울음소리가 재수없다, 라는 편견을 지닌 당신이라면 한번쯤 그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어요. 적어도 이 젤리클 고양이들은 고양이가 얼마나 매력적인 동물인지 당신에게 새삼스럽게 각인시켜줄 만한 지혜로운 고양이임에 틀림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