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언론의 사회

culturist 2014. 4. 19. 01:08

지난 16, 언론에선 하루 종일 진도의 여객선 침몰 상황에 대한 소식을 알려왔다. 참담했다. 그리고 그 소식만큼이나 참담했던 건 한국 언론의 현주소였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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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오랜 역사는 폭력과 맞물려 왔다. 야만의 시대에서 문명의 시대로 진입한 현대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폭력의 상흔이 발견된다. <바더 마인호프>는 폭력적 역사에 대한 기록적 재현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연출된 스크린 너머의 풍경엔 인간이, 인간의 신념이, 인간의 신념이 잉태되는 시대가 있다. 신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리는 인간은 추구하는 신념에 따른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때때로 폭력을 발화시키며 시대를 덥힌다. 폭력을 등에 업은 신념이 시대를 가열시킨다. 기록된 폭력은 역사가 되고 인간과 함께 끊임없이 사유된다. 폭력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가치인가. 그리고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은 어떻게 기억될 수 있을까. <바더 마인호프>의 화두는 분명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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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맞고 사망한 부랑자 시신이 발견된 이튿날, 하원의원 스티븐 콜린스(벤 애플렉)의 여비서가 지하철역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이 덕분에 스티븐과 여비서의 섹스 스캔들이 불거지고 무기회사를 상대로 한 청문회에서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던 스티븐의 발언권이 상실될 처지에 놓인다. 하루 차이로 발생한 두 죽음은 그저 동떨어진 두 개의 점처럼 접점이 없는 개별적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취재하던 보스톤 글로브의 기자이자 스티븐의 친구인 칼 매카프리(러셀 크로우)는 두 사건을 연결하는 단서를 발견한다. 연결고리가 없는 두 사실을 관통하는 진실이 직감된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이하, <플레이>)는 거대한 음모를 추적하는 기자의 이야기다.

 

뛰어난 취재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기자 칼 매카프리와 혈기왕성한 신예 여기자 델리 프라이(레이첼 맥아담스)는 진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사건의 취재를 밟아나간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노크가 번번히 무산되거나 박대 당하는 와중에도 진실을 향해 접근해가는 취재과정이 호기롭게 묘사된다. 때때로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연출되며 스릴러적 긴장감을 더한다. <플레이>는 스릴러적 구조를 통해 긴장감을 끌어당기는 동시에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지적인 묘미를 더한다. 영화의 중추는 분명 거대한 집단의 이기에 대항하는 개인의 윤리적 저항을 곧잘 이야기하는 토니 길로이의 각본이다. 음모론에 갇힌 진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고 믿어지는 결말 직전, 영화는 진실의 맹점을 자각하고 왜곡된 진실의 남은 한 꺼풀마저 벗겨내며 논의를 한 차원 더 발전시킨다. 진실을 추구하는 건 정의를 위해서지만 정의에 대한 집념은 때로 진실을 향한 시야를 가린다. 기자는 자신이 작성한 기사를 송고하기 직전까지 진실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 정의라고 믿어지는 부분조차도 의심해야 한다. <플레이>는 거대한 자본의 알력과 권력의 위협에 대항해 사선을 넘어서까지 결백한 진실을 얻어내려는 기자의 직업윤리를 흥미롭게 그려낸다. 찌라시가 득세하고 가십이 넘쳐나는 시대에 완전한 진실을 향해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기자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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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의 진실

도화지 2009. 2. 26. 21:07

박 모씨는 미네르바가 아니다. <신동아>는 위풍당당했다. 이미 미네르바의 기고문과 인터뷰를 실었던 전력이 있는 <신동아>였다. 미네르바는 7인으로 구성된 금융계 인사들이라고 했다. 반전에 대한 기대 심리마저 형성됐다. <월간조선>이 대항마를 형성했다. 전선이 형성됐다. 하지만 이내 <신동아>는 꼬리를 내렸다. 오보를 사과 드립니다.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그렇다면 대체 미네르바를 자처한 K씨를 비롯해 7인의 금융계 인사는 대체 누구였나? <신동아>는 함구했다. 의문이 도졌다. 어쩌면 말을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이 사람이 우리 K씨다, 라고 왜 말을 못해! <신동아>의 연인도 아니고. 어쩌면 <신동아>는 미네르바가 체포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잖아. 가상의 미네르바가 수갑을 차고 소환됐다. , 이거 진짜 리얼이야. 소름 돋았어. 물론 감탄할 때는 아니고, <신동아>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사색이 될만한 사안이었다. 두 가지 시나리오가 탈고됐다. 뻥카였냐, 밑장빼기였냐. 전자라면 밑천을 탕진하는 셈이고, 후자라면 손모가지 날아갈 판이다. 하지만 여러모로 바보가 사기꾼보다 낫다. 쪽팔림은 한 순간에 불과할 뿐. 뻥 터져서 잠시 찌그러지면 된다. 여전히 <신동아>만이 K씨를 안다. <신동아>는 정말 속절없이 K씨를 믿었을까? 정말 K씨는 존재하나? 말이 말을 낳아도 <신동아>는 침묵한다. 진실은 <신동아>너머에 있다.

 

(프리미어 'FRANKLY SPE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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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얼굴

culturist 2009. 2. 13.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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