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단평

cinemania 2012. 11. 23. 13:41

강풀 작가의 <26>은 사연이 많은 소재를 장르적인 그릇에 담아서 그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는 원작에 비해서 호흡은 짧게 가져가야 하니 각색은 불가피하고, 실사화라는 표현적인 제한도 존재한다. 특별한 재해석 능력을 보여준다면 모를까, 원작의 의미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본전 찾기도 쉬운 작업은 아니다. <26>은 그런 제약들을 뛰어넘은 영화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긴 어렵다. 압축된 초반 서사는 성기고, 변주된 일부 캐릭터는 비효율적인 경우가 발견된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뜨거운 감정이 차고 넘친다. 어떤 식으로든 1980 5 18일에 대한 감정이입에서 자유롭기 힘든 탓이다. 어떤 식으로든 냉정하게 보기 힘들다. 보는 내내 울화가 치민다. 미치도록 죽이고 싶어진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기 힘들게 만드는 이 놈의 현실이 문제다. 영화 하나가 짊어진 사연이 뭐 이리 무겁고 언제까지 애달파야 하냔 말이냐.

 

(무비스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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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뭐든 하나 던져주고 싶다. <혈투> 박훈정 감독

 

마치 내친 김에 달린다는 말처럼 박훈정은 시나리오 작가에서 연출자로 성큼 올라섰다. 김지운이 연출한 문제작 <악마를 보았다>와 현재 제작 중인 류승완의 차기작 <부당거래>의 원작자로서 유명세를 탄 박훈정의 <혈투>는 단순히 그 유명세의 상승곡선에 올라탄 기획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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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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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작가의 원작만화를 영화화한 <식객> 33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식객: 김치요리>(이하, <식객2>)는 그 성공에 힘입은 후속적 기획이다. 사실상 <식객2>는 허영만 작가의 원작 브랜드 네임밸류만을 차용할 뿐, 그 작품의 성격과는 무관한 시리즈가 됐다.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의 출연과 이름만 같을 뿐 성격적으로 다른 중심인물의 등장은 이미 <식객2>가 원작을 염두에 둔 기획이 아님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식객2>는 원작의 서사와 캐릭터 관계를 염두에 둔 전작의 후속편이란 형태 안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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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인터뷰

interview 2009. 6. 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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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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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멜로디가 선명한 음악과 절묘하게 연동되는 김혜자의 춤사위를 담은 오프닝 시퀀스는 단연 압도적이다. 절망과 안도가 체증처럼 내려앉은 얼굴에선 공유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극단적 너비가 고스란히 발견된다. 휘청거리듯 흐느적거리다 살풀이하듯 리듬을 타며 몸을 들썩이는 팔은 축 져진 듯 늘어지면서도 강약을 맞춘다. 형언할 수 없는 표정과 심정을 유추할 수 없게 중의적인 동작으로 절묘하게 음악과 어울리며 몸을 흔드는 김혜자의 모습은 당혹스럽지만 고요하다. 마치 작은 파문이 일어나기 전의 잔잔한 수면처럼 쨍하고 깨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이 위태롭게 감정을 동요시킨다. 강렬하면서도 모호한 오프닝 시퀀스는 정서적인 진동을 도모함으로써 뒤따를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긴장과 평온의 중의적 상태 가운데서 몰입을 도모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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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단평

cinemania 2009. 5. 21. 01:57

지금 벌써부터 <마더>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반전, 반전, 하게 되는데 그 반전이라는 용어의 쓰임새가 이 영화의 결말을 정의하기 좋은 형태인지 의심스럽다. <마더>의 결말이 놀라운 건 사실이나 그게 극적으로 지속되는 분위기의 예상치를 배반하는 형태의 반전이라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 이건 말 그대로 의심되는 문제의 객관식 보기 가운데 가장 정답에 먼 형태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만큼이나 놀라운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반전에 목매지 말 것. 물론 결말에 대해선 최대한 눈 감고, 귀 막아라. 모르고 볼수록 온전히 재미를 체감할 가능성이 크므로. 물론 입도 닥쳐주는 센스는 잊지 마시고. 너만 재미있게 본다고 장땡은 아니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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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운전으로 성실하게 생계를 꾸리고 가장의 역할을 하던 정철민(유해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건 가난이다.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가난이 성실한 서민을 살인자의 공범으로 몰락시킨다. 딸의 수술비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철민을 좌절하게 만들고 스스로 패가망신하는 길이라 믿던 도박판에 희망을 걸게 만드는 과정은 가히 안쓰럽다. 돈은 성실한 가장이자 아버지를 쉽게 무너뜨린다. <트럭>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우열의 논리로부터 발생하는 비극을 스릴러적 긴장감으로 치환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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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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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좋아하나?
심하게 좋아했다, 예전엔 더욱.

지금은 예전보단 덜 좋아하나 보다.
비오는 날 참 좋아하는데, 오늘은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 잘 모르겠네.

벌써 서른이 넘었다. 시작부터 나이 이야기하면 실례일까.
아니, 전혀. (웃음)

서른이 넘어서니 어떤가? 벌써 이렇게 됐구나란 감상에 젖을 법도 한데.
눈에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지. 일단 난 지금이 좋다. 왜냐면 내 십대와 이십대는 아무것도 몰라서 너무 방황하는 시기였으니까. 너무나도 갈팡질팡,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몰라서 너무나 힘든 시기였지. 사실 내 사춘기가 굉장히 길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서른 살까지 사춘기였으니까. (웃음) 정말 사람에 대해서도 몰랐고, 뭐가 진실인지도, 뭐가 선이고 악인지, 정말 혼돈스러웠다. 그런데 작년부터 서서히 뭔가 잡혀가는 거 같아. 이제 내 인생을 이런 방향으로 살아가겠구나, 나의 토대는 이거고 목표는 이거다, 이런 것들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 난 지금 내 나이가 좋아. 살 것 같다고 할까. 조금씩.

작년이라면 혹시 <여름이 가기 전에> 덕분에?
그건 아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할 때가 더 힘들었으니까.

의외네. 난 그 작품이 상당한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우울증에 걸리면 하고 싶어도 말이 잘 안 나온다. 난 말하고 싶은데 소리가 안 나오는 거지. <여름이 가기 전에>할 때 내가 너무 다운됐었다. 마음이 행복하지 못해서. 대사를 해야 하는데 이게 나오기가 너무 힘들었지.

6년은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친구> 이후, 김보경의 6년은 길어 보인다. 김보경이란 배우의 6년은, 마치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보는 것 같다.
지금도 돌고 있을 지도 모르지. 내 성격 탓인 거 같아. 그렇게 똑똑하지 못하거든. 다 아는 답이 보일 때도 있다. 그런데 난 답을 알면서도 결단을 쉽게 못 낸다. 마음이 여려서, 그런 덕분에 많이 돌게 됐고. 20대까진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젠 김보경이라는 아이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좀 더 똑똑하게 결단도 내리고 그래야 되는데, 지금도 좀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나 스스로도.

사실은 데뷔도 빠른 편은 아니었다. <친구> 당시가 이십 대 중반이었으니까.
사실 데뷔는 그 전에 했었지, 95년도에 CF로 데뷔를 했고, 98년도에 영화를 했었으니까. 간간이 단역으로 TV드라마에도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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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대로 연기를 하게 된 건 <친구>가 처음 아닌가?
제대로 연기한 건 이번에 <기담>이 처음이다. (웃음)

어쨌든 <친구>로 얼굴을 많이 알렸지만 그 후로 많이 돌아온 건 <친구>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에 <친구>로 얼굴을 알린 후, 출연했던 작품들은 김보경이란 배우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본인에겐 의미 있는 작품들일지 모르지만.
영화가 흥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만약 잘 됐다면 다르게 말했을 수도 있을 거다. 난 영화가 잘되고 안 되는 건 정말 운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친구>란 영화가 잘됐지만 그 영화의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고,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다만 그 시대에 맞는 운 때가 있어서 흥행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정말 아닌 영화들도 있겠지만 굳이 그 영화들이 그만큼 사랑을 받는다는 건 모두 운명 같다. (웃음)

<기담>을 봤나? (이 인터뷰는 언론시사가 진행되지 않은 7월 16일에 진행됐다.)
다는 못 봤다.

독특한 소재 때문인지 몰라도 굉장히 궁금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렇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법도 한데.
<여름이 가기 전에>란 작품을 하고 <잘 지내나요, 청춘>이란 단막극을 했었다. 그 때, 너무 초연하게 연기한 덕에 연기가 다시 너무 좋아졌었다. 물론 내가 거기서 연기를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작품을 좋아했었지. 단막극이지만 그 작품을 찍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었고. 내가 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는 시기였고. 그 때, 나도 좀 대중적인 작품 해서 대중들과 같이 살아가는 연기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웃음) 근데 그때 <기담>이란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받았다. 근데 공포영화란 장르가 대중적인 묘미가 있잖아. 그게 그 당시 내 생각하고 맞았다. 일단은 대중적이란 점이 맞았지. 그리고 내가 공포물을 굉장히 좋아하거든.

아, 그런가?
그렇다. 난 공포영화를 세 분류로 나누는데, 하나는 좀비 영화, 하나는 스릴러, 또 하나는 종교다. 그런데 거기서 막 피나거나 자르는 이런 건 무섭진 않고 속만 안 좋아서 싫더라.

나도 그런 건 요즘 정서만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피하고 싶어지더라.
내가 95년도에 <트레인스포팅>이란 영화를 봤는데 그 작품은 충격이었다. ‘정말 저게 영화지!’ 이럴 정도로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28일 후>란 작품을 봤는데 난 같은 감독 작품인지 몰랐다. 감독 보고 영화 보는 편은 아니라서. (웃음) 그런데 <28일 후>도 충격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날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 그 영화가 좋았다. <셔터>도 되게 무서웠다. 정말 있을 법한 일이잖아. 사랑한 여자친구가 임신했다가 죽어서 귀신이 되고, 난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 당시에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셔터>보고 내가 ‘잘 해~! 아니면 나도 돌아올꺼야’ 했었다. (웃음) 어쨌든 <기담> 시나리오를 봤을 때, 내가 그 두 영화를 보면서 받았던 그런 느낌들이, 물론 똑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있었다. 단순히 이 영화가 여름방학 노려서 한철땡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이걸 해도 난 부끄럽지 않겠다는, 내가 제작을 했다 해도 돈 벌기 위해서 단순히 했다는 소리는 안 듣겠다 싶어서 난 <기담>이 좋았던 거지. 그리고 사랑이라는 그 감정 때문에 모든 공포가 일어난 거다. 사실 시나리오엔 음향 효과가 없잖아. 난 시나리오 보면서 무섭다기 보단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안 무서울까 봐 걱정했지. 그래도 공포영화인데, 너무 슬프고 아리고, 아프기만 할까 봐. 근데 어떻게 될진 모르지. (웃음) 그래도 무서울 것 같다. 예고편 보니까.

전형적인 공포영화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들도 비밀스러운 느낌이 나고, 진구 말에 의하면 공포영화를 가장한 뭔가가 있다고 하던데.
맞다. 진구씨가 <기담>은 차가운 공포영화가 아니라 따뜻한 공포 영화라 했는데 난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더욱 궁금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오면 어떡하지. (웃음)

뚜껑을 열어보면 알겠지. (웃음) 난 개인적으로 김보경이란 배우가 <친구> 이후로 이름을 남긴 건, 단지 <여름이 가기 전에> 뿐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본인에게 그 작품은 좋은 기억이 아닌가 보다.
난 내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결과보단 과정이라 생각한다. 돈을 벌고 난 후나 엄청나게 유명해진 후보단 그렇게 된 과정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사람마다 틀리지만 난 그런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고. 영화가 흥행하고, 그로 인해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다. 그 전에 영화가 잘 나오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근데 만약 그 과정이 너무 정떨어진다면 영화가 잘 나와도 사랑할 수 없다. 근데 <여름이 가기 전에>는 아까 말한 것처럼 그 과정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물론 나도 영화는 잘 봤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나 자신과의 괴로운 싸움을 했던 작품이라 힘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굉장히 의외다.
그래도 부산 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나한테 의미가 있다. 사실 <여름이 가기 전에>의 기억이 아파서 안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매니저들이 꼬시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영화인으로서 내가 안 갈 이유도 없어서 결국 갔다. 그러다가 영화제에서 <여름이 가기 전에>를 보게 된 제작사 대표님이 우연히 내가 걸어오는 걸 보곤 <기담>의 인영 역에 가깝겠다고 생각해서 제의하셨다고 하더라. 자신이 그려놓은 인영의 이미지랑 너무 맞아떨어졌다고 하시더라.

개인적으로 <여름이 가기 전에>가 배우로서 다시 멍석을 까는 지점이었다면, <하얀 거탑>은 굳히기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혹시 <하얀 거탑>도 안 좋은 추억이 있을까. (웃음)
아니다. 너무 마음이 편안하게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겁게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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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얀 거탑>의 강희재는 그 이전에 맡았던 역할들과 달랐다. 남자들 사이에 둘러싸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이전까진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날을 세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얀 거탑>의 강희재는 장준혁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인물이다. 좀 더 너그러워졌다고 할까.
난 사실 (배우로서) 별로 보여드린 게 없어서 그냥 내 안에 갖고 있던 캐릭터 중 하나를 강희재란 캐릭터와 이렇게 조합해서 연기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색다른 건 없었다. 다만 이런 걸 느꼈지. <하얀 거탑>할 때, 처음엔 여자 주인공이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되게 좋아했었다. (웃음) 나를 뭘 보고 주연을 맡기나 했었지. 그런데 대본이 6회까지 나왔는데 나는 별로 안 나오는 거다. 어쩌다 한두 씬 나오고, 별로 중요한 씬도 아니고, 맨날 술만 따르고. (웃음) (김)명민 오빠를 비롯해서 주위 사람들도 드라마에서 별로 안 보인다고 안타까워하시더라. 그래도 난 이런 배우들과 감독님하고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일본 원작 드라마 보라고 해서 DVD까지 봤는데, 케이코도 별로 나오진 않았지만 어딘가 강한 이미지가 남더라. 그래서 나도 강하게 하고 싶지만 강하게 하면 안 되는 인물이었고, 감독님이 원하는 연기 스타일도 그렇게 선 굵은 게 아니었지. 그래서 누르는 걸 좀 배웠던 거 같아. 전체적인 드라마 흐름을 위해 내가 있는 거니까 내가 튀면 안 된다, 난 자꾸 이렇게 묻혀가야 돼, 묻혀가면서 그냥 드라마와 전체적으로 같이 가는 거다. 이런 생각으로 연기했다.

비중은 작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이미지를 은연중에 각인시킨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얀 거탑>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지닌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 다들 병원이라는 집합의 동선을 지니지만 희재의 바(bar)는 유일한 개인적 공간이다.
그래서 심심했다. (웃음) 난 드라마하면 연기자들하고 좀 친해질 줄 알았는데 나한텐 맨날 장준혁만 오니까. (웃음) 그나마 이정길 선배님과 친해졌다. 어쨌든 배우들하고는 볼일이 없어서 아쉬웠지. 어느 날 TV를 통해서 직접 봤더니 너무 답답해 보이는 거다. 자꾸 밖에 좀 나가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물론 끝끝내 밖에 나가진 못했지. (웃음)

하긴 계속 갇혀서 촬영하니까.
맞아. 그리고 비중이 작았지만 너무 잘 하고 싶었다. TV는 오랜만이고 제대로 된 드라마도 처음으로 하는 거니까. 내 나름대로 바뀔 수 있는 상황까지 계산을 하면서 준비를 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감독님한테 펼쳐 보이곤 했다. 그런데 내가 준비한 것과 또 다른 상황으로 바뀔 때가 많았지. 그래서 또 다른 여유, 연기에 있어서 여백을 남겨둬야 된다는 걸 배웠다.

영화와 다른 드라마만의 매력을 느꼈나?
사실 영화를 너무 오랜만에 해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새롭게. <하얀 거탑> 끝나고 <기담>을 했는데, <여름이 가기 전에>도 찍은 후 1년 뒤에 개봉을 했으니까. 내가 너무 작품을 띄엄띄엄 했었고, 그래서 처음 같은 느낌이었지. 영화찍은 지도 오래됐었고, 공백이 기니까 그런 걸 모르겠더라. (웃음) 물론 큰 차이점을 느낀 건 영화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이랑 배우랑 이야길 많이 나누고, 이 인물에 대해서 디테일한 오고감이 있는데 드라마는 그냥 그런 회의 없이 한다는 거.

원래 캐릭터에 대한 준비가 철저한 편인가 보다.
난 대본 받으면 내 인물의 보이지 않는 과거와 보이지 않는 미래 같은, 그 인물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걸 좋아한다. 연극을 해서 그런지도 모르고. 그런데 TV는 그런 시간이 안 되니까. 감독하고 그만큼의 친밀하지가 못하더라. <기담>같은 경우도 리딩을 한 달 넘게 했으니까, 충분히 인영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이런 게 충분히 얘기가 된 후에 영화는 들어갈 수가 있는 거지. 서로 더 알고 들어가는 거랄까. 근데 TV는 그렇게까지는 못하는 게 틀린 점이지.

순발력의 연기를 더 요구하는 상황도 있었을 텐데,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여름이 가기 전에>도 가벼운 생활적인 연기였는데, 그땐 확실하게 그게 그렇게 안 다가왔었다. 감독님이 직접 뭘 요구하지도, 어떤 연기 톤을 요구하시는 건지도, 뭘 하는 줄도 잘 몰랐다. 왜냐면 여태까지 했던 연기랑은 약간 틀린 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다르단 사실에 대해서 내가 인식을 잘 못했던 거 같다. 그냥 소연이란 캐릭터에 빠져서 연기를 하긴 했는데 뭔가를 했다는 느낌은 들지만 뭔가를 배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하얀 거탑>을 하면서 확실하게 연기의 구분을 알게 된 거 같다. 그리고 안판석 감독님이 굉장히 세련된 분위기란 것도 알겠고. 이분이 추구하시는 연기 톤은 관객들에게 앞으로 더욱 환영 받고 사랑 받을만한 것이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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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품 수만 치면 영화를 꽤 많이 한 편이다.
수만 그렇지. (웃음)

그럼에도 아직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인식시키지 못했는데, <하얀 거탑>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마련해준 작품인 것 같다. 나름대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다는 욕심도 있었을 법한데.
처음부터 역할의 분량이 작은 덕분에 큰 부담을 안 가지게 됐고, 오히려 여기서 잘 해서 ‘넓혀가자, 내 씬을 늘리자’ 생각했었다. 드라마는 그게 가능하니까. 이게 목표였지. 오히려 씬 많이 줬는데 못하는 것보다 적게 줬는데 잘해서 내 걸 늘려가는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것 말곤 이걸로 인해서 내가 엄청나게 사랑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

이렇게 사랑 받는 드라마가 될 줄도 몰랐겠지.
당연히 몰랐다. 지난 6년 동안 힘들어 봤기 때문에, 별로 인기란 것에 민감할 수도 없었지. 사랑해주는 건 고맙지만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내가 연기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지금 사랑해주셨다가 언제 외면할지 모르는 거니까. 인생의 굴곡이 있듯이. 사랑을 받는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거기에 휘둘릴 나이도 아닌 것 같고. 별로 그런 건 신경을 못 쓴 거 같다. 그렇지만 사랑 받으면 너무나 고맙지.

<기담>이란 작품은 어디에 매력을 느꼈나?
<친구>에 출연한 후, 그 캐릭터가 워낙 강했나 보더라. 그래서 나를 어딘가에 써먹어야 되는데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그 당시에 고민했나 보더라. (웃음) 너무 캐릭터가 강해서. 그런 이야기 듣고 난 웃긴다고 생각했다. 난 강한 연기 한번 했을 뿐인데, 왜 그것만으로 나에 대해서 다 파악한 것처럼 저럴까. 저게 내 모습의 다는 아닌데 싶었으니까.

어쩌면 공백으로 인해 그런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 게 한편으로 도움이 된 셈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하얀 거탑>의 날 보고 <친구>의 진숙인지 모르고 본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더라. <기담>의 인영이란 역할은 굉장히 부드럽고, 온화하다. 정말 사랑 받는 아내이고. 이런 캐릭터는 내가 처음이라 너무 하고 싶었고, 나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또 인영이랑 제가 꿈꾸는 사랑이 비슷했다. 마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란 영화 알까?

물론이다. 꽤 오래된 영화인데.
내 이상적인 사랑은 딱 그거거든. 그런데 그런 사랑은 없단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정신차리라고, 그런 사랑은 없다고 얘기하지. (웃음) 물론 나도 만나진 못했지만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런 사랑이 <기담>에선 아름답게 표현된 건 아니지만 너무나도 잔인하고 슬프게 그 시나리오에 있었다. 그런 사랑을 인영이 하고 있었다. 대리만족이라 해야 할까. 난 현실에서 하기 힘든 사랑을 처음으로 알았다. 처음으로! (웃음) 연기자가 이래서 좋다는 걸 난 처음 알았다. 그 전엔 다른 연기자들이 연기 왜 하냐는 질문받으면 ‘여러 가지 일을 하잖아요’, 이런 대답이 난 재미없었거든. 그런데 내가 이번에 <기담>을 끝내고 나니 그걸 느꼈다. 내가 진짜 꿈꾸던 사랑이 아름답게 표현된 건 아니지만 아주 지독하고 잔인하게 느끼면서 했다. 그런 대리만족이 느껴지더라.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 두 사람 때문에 너무 아팠고 너무 부러웠지. 촬영하면서 많이 울었어. 너무 부러워서. (웃음)

이야기만 들으면 공포가 아니라 멜로같다.
맞다! 멜로! 그런데 그 멜로가 너무나도 잔혹하게 써진 거지. (웃음) 그런데 영화가 내 말처럼 잘 나왔어야 되는데! (웃음)

누군가의 아내 역할을 한 것도 처음이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항상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자신을 좋아하는 이의 사랑을 내치거나 그런 쪽이었는데.
그래서 좋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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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회한을 풀어버리는 기분이었을 것 같은데.
난 전혀 그런 거 없을 줄 알았는데, 있더라. 실제로 촬영하면서도 너무 사랑 받으면서 촬영해서, 촬영 기간도 난 너무 행복했었다. 촬영이 끝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촬영이 끝나가서 조마조마했다. 크랭크업되기 전에도 ‘감독님, 이제 어떡해요, 내일이면 끝인데~’ 막 이랬다. (웃음) 다들 이런 마음이었을 거다.

촬영이 크랭크업 예정보다 지연됐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겠다. (웃음)
내가 여태껏 연기 했던 것보다 다른 연기를 할 수 있었고, 드디어 내 안에 있는 걸 꺼내는 작업을 처음으로 했던 거 같다. 그래서 <기담>은 영화배우로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그 집중하는 방법을 배웠다. 예전에는 이걸 어떻게 할까, 걱정 먼저 한 다음에 빠져들었는데, <기담>은 그냥 먼저 빠져들게 된 거다. 그래서 촬영 중에 고민하고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오로지 내 감정에 맡겼지. <기담>연기들은. 물론 너무 다양한 감정이 교차돼서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그냥 인간 김보경이 살아갈 인생 속에서도 어떤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선이 굵은 역할을 많이 했다. 단도직입적이기도 했고. 그런데 <기담>은 가녀리지만 입체적인 느낌이 드는 캐릭터 같다. 신비로운 느낌도 있고.
일단은 좀 헷갈렸지. 왜냐면 말한 것처럼 이 인물이 신비롭다는 느낌을 깔고 갔어야 했으니까. 부담도 됐었다. 어떤 식으로 신비감을 줘야 할지,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환상이란 설정을 처음부터 까는 인물이라면 연기라도 날리면서 효과의 도움을 받기라도 할 텐데.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내가 내 감정에 맡기고 갈 수 밖에 없었을 거 같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지,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내 감정과 감성대로 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내 느낌을 잡는 게 어렵기도 했다.

김태우 씨와 부부 연기를 해서 호흡을 많이 맞췄을 텐데, 어땠나?
처음에 만났을 땐, 막연히 사람 좋게 생겼네. 바른 생활을 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리딩을 하면서, 똑똑한 배우구나. 부럽다고 생각했고 촬영이 들어갔을 때, 진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제 촬영 끝나고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김태우란 배우가 있어서 우리가 영화를 좀 편안하게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 또한 행복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이렇게 편안하게 연기한 거 같다. 물론 선배 띄워주기나 같이 한 배우의 의리상 좋은 말 하는 건 아니고! (웃음) 김태우 씨가 배우들과 깊이 있고 편안하게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많이 도와줬다는 걸 느꼈다. 나도 나중에 선배가 되고 후배가 생기면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난 그만큼 친절하지 못할 거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최근 호흡을 맞춘 남자배우는 다 안정감 있는 캐릭터다. 김명민 씨, 이현우 씨, 김태우 씨. 다들 그런 느낌이다.
사실 이현우씨는 본인 스스로가 그런다. 자신은 가수라고. 겸손한 편이지. 지금도 우린 패밀리다. (웃음)

그 친분 덕분에 라디오 방송도 하게 된 건가 보다.
라디오 개편할 때 온(on)하러 오라고 해서 갔다가 PD가 제안해서 한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했었다. 현우 오빠 같은 경우는 인생에 있어서 참 똑똑한 거 같다. 여유롭게 즐길 줄 아는, 잘못 보면 욕심이 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걸 아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영화 하나 망하면 죽을 거 같고, 망했다고 하고 그런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영화가 흥행이 되고 망하든 그 과정이 행복했고 소중한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진짜로 인생에 있어서 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연기자로서는 모르겠다. 난 진짜로 연기가 하고 싶어서 정석으로 해온 사람이고, 이현우씨는 가수하다가 기회가 되니까 연기를 한 거라서 솔직히 연기자로서 뭐라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카메라에 익숙한 사람이라 편안하게 연기하는 것 같다.

어쩌면 김명민 씨가 뒤늦게 인정받고 있는 것에 대한 감상이 있을 것 같다.
김명민 씨는 사랑과 찬사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본다. 사실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명민 씨 부인이 내 친한 언니라서. 그리고 한 동네에 살았었고, 같은 소속사에 있었고, 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힘들어하신 것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었고, 연기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었다. 참을 만큼 참으신 분이다. 연기자로서 난 좋아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웃음) 정말 그만큼 사랑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공교롭지만 <리턴>이 <기담>과 한주 차이로 개봉하는데, 어쩌면 경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생각해본 적 없는데, 진짜! (웃음) 둘 다 잘 되면 좋지. 그런데 솔직히 <기담>이 조금만 더 잘 되면 좋겠네. (웃음) 지금 잘 되셨으니까, 이제 나도 솔직히~~. (웃음)

어쨌든 이제 결혼을 염두에 둘 나이가 됐다. 이상형은 없나?
난 이상형이 없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난 그냥 모르겠다. 그냥 운명적인 만남? (웃음)

지금으로서는 뻔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만약 결혼과 영화 중 하나를 택한다면?
영화지! 그럼. 결혼은 아직 아예 생각도 없어!

그러다 나중에 후회하는 사람 많다던데. (웃음)
그래도 아직은, 나중에.

어쨌든 공백기가 있었고, 이야기만 들어도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원래 생각이 많아 보이기도 하고.
내가 한없이 긍정적이면서 한없이 부정적인 거 같다. 엄청 울고, 엄청 웃고, 딱 극과 극이다. 솔직히 그 몇 년 동안 많이 힘들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란 생각을 할 정도로. (웃음) 분명히 돌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난 이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 나도 태어난 이유가 있을 텐데. 이유를 못 찾겠더라. 그러다가 장기기증 신청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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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텐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내가 지금의 상태론 한 여섯 명까진 살릴 수 있더라. 그 때, 내 삶에 있어서 희망을 얻었다.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이유를 알겠더라. 삶에 있어서. 그래서 지금보다 더 운동해야 되고 술도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좋은 걸 줘야 되니까.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감정이 저 끝까지 가게 되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이제 더 이상 갈 때가 없으니까 무서워질 것도 없어지고, 기가 막힐 때도 있으니까. 정말 하느님, 정말 저 여기서 더 내려가는 건 진짜 저보고 죽으라는 거죠. 웃으면서 이랬던 적도 한번 있었다. 되게 심각하게. 내가 너무 힘들어서 자꾸 부정적으로 바뀌고 고민하면 해결되는 것도 없고, 내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기 때문에 그럴 바엔 바보같아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꾸 그렇게 하면 행복해지는 것 같더라. 한번은 내가 기적을 봤다. 기독교 집안이라 매일 기도하는데 난 나이 들면서 안 했었거든. 그런데 한번은 아침부터 너무 속상한 일이 있어서 기도를 했다. 최소한 이 기도가 끝나고 나면 그냥 행복하게 해달라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정말 넓은 마음 갖게 해달라고, 이 기도 끝나면 그렇게 되게 해주셔야 한다고. 처음으로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한 거 같다. 정말 내 마음이 부자가 되게, 내 마음이 아름다워지게, 꼭 그렇게 해주셔야 된다고. 그리고 기도가 끝나자마자 내 마음이 너무나 아름다워졌다. 난 그게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 항상 좋은 책 읽고, 좋은 말씀 듣고, 좋은 글귀 보고, 좋은 생각하고, 이러면 살아갈만하다. 자꾸 남들과 비교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면 자신한테 좋을 게 없더라.

혹시 본인에게 귀감이 되는 배우가 있나?
난 배종옥 씨 되게 좋아한다. 연기도 너무 좋고. 전도연 씨도 좋고. 난 계속 꾸준히 연기하시는 분들이 좋다. 정말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서 꾸준히 고민하고 연기하시는 걸 보면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라. 그런 분들이 정말 연기자지. 그래서 그 분들 보면 되게 기분 좋다. 정말 배우 같다.

대학교 시절에 연극도 했다고 들었는데, 연극 무대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나?
그런 생각도 있다. 사실은 올해에 새로 소속사와 계약하면서 연극도 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드라마랑 영화에 캐스팅되면서 바빠졌다. 아무래도 일단은 먼저 들어오는 게 있을 때 하려고 해야 하니까. (웃음) 어쨌든 좀 더 역량을 쌓아서 연극을 할 거다. 모노드라마 같은 거. 꿈이에요. 꿈.

청바지 사업도 한다던데?
작년 말부터 조금씩 생각하다가 올 초부터 준비했다. 사실 연기라는 걸 내 직업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직업은 내게 밥도 먹여줘야 되고, 옷도 사 입게 해줘야 되고, 용돈도 줘야 되고, 어떤 지위도 줘야 되고, 항상 일을 해야지 직업이잖아. 안 하면 백수지. 근데 난 연기가 내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6년간 그 생각만큼 못 받쳐줬기 때문에 내가 너무나도 힘들었더라. 그 시간 동안에 연기는 나한테 직업이 아니고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선물처럼 온 것만으로 만족을 해야지, 이걸 통해서 뭘 얻고 뭘 얻겠단 건 욕심인 것 같더라. 무엇보다 못 얻었을 때, 그 아픔을 내가 견뎌낼 자신이 없더라. 그래서 직업으로서 뭔가 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거다.

만약 연기를 안 했다면 뭘 하고 있었을까?
아니. 난 연기를 하고 있었을 거 같아! (웃음) 다른 걸 하면서도 연기는 했을 것 같아.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의 스물아홉은 어땠나?
지옥이었다. 너무 지옥이었어. 너무나도. 연기의 기회적인 면에서도 힘들었고, 사랑에도 굉장히 초짜였기 때문에. 좀 늦었었거든. (웃음)

사춘기였으니까. (웃음)
그래서 사랑 때문에도 너무 힘들었고, 지옥이었다. 사실 돌아보고 싶지 않아! (웃음)

지금은 스스로 자신이 인생에 있어서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나?
음, 아마도 봄?

30대의 봄이라. (웃음)
난 봄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건 써주세요. 김보경은 봄이다! 여름은 아직, 사춘기 이제 막 지났는데. (웃음)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질문이었다.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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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진구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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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많이 피는 것 같다.
담배를 피면 긴장이 좀 덜 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보통 일할 땐 하루에 한 갑 반 정도 피는데 그냥 집에서 쉬는 날엔 이틀에 한 갑 정도 핀다. 아무래도 일하는 시간에 많이 피는 편이지. 대신 술을 끊었다.

술도 많이 마시는 편인가 보다.
거의 매일 마셨다. 그런데 요즘은 웬만하면 안 마시려고 하지.

난 담배를 끊었는데. (웃음) 의외로 긴장하는 편인가 보다. 사실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은데. 긴장되니 인터뷰보다 사진을 먼저 찍자는 이야기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사진에 긴장하는 편이다. 인터뷰는 그냥 있는 대로 얘기하면 되는 거고, 그러다가 얘기가 잘 되면 재미있게 덧붙이면 되는 거라서 부담은 전혀 없다. 오히려 말하는 건 즐겨 하는 편이니까. 그런데 사진은 가끔 가다 막힐 때가 있더라. 가끔 가다 안 맞는 사진작가랑 만나게 되면 그렇다. 보통 찍으면서 ‘오케이! 좋습니다. 하나 더! 오케이! 하나 둘, 하나 둘!’ 이런 식으로 술술 진행되면 나도 덩달아 업 되는데, 첫 장 딱 찍고서, ‘음, 이거 아닌데~’ 이러면 더 안 나오는 거다. 솔직히 기분이 살짝 상하는 탓도 있고. (웃음)

그럼 우리 사진 기자는 편했을 것 같은데.
아, 최고! 근데 너무 빨리 끝낸 거 같은데. (웃음)

일단 믿어보시라. (웃음) 종종 스크린으로 웃는 얼굴 뒤에 쓸쓸한 무표정이 교차하는 걸 발견한다.
음, 그건 만든다고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만약 연기로 그런 게 나왔다면 자신감 만땅이겠지! (웃음) 근데 연기가 아니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게 나오는 거 같다. 그리고 날 캐스팅하신 감독님들은 그런 면을 좋아해주신 것 같고. 어쩌면 나한텐 유일한 장점이지 싶다.

제2의 이병헌이다, 리틀 이병헌이다. 이런 말 듣게 되는 것도 그런 표정 덕분이 아닐까? 이런 말 듣게 되면 어떤가?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전혀 나쁘지 않다. 이걸 빨리 빼내야겠단 생각도 없고. 만약에 오늘 아침에 그런 기사가 그렇게 났다고 해도, 전혀 기분이 상할 것 같진 않다. 이병헌 선배는 알다시피 워낙 연기 잘 하는 배우잖아. 사실 데뷔 초기에는 롤모델로 삼았을 정도로 너무 존경하는 선배님이다. 그러니 제2의 이병헌이다, 이런 말은 내게 칭찬이었다. 결국 제2의 이병헌은 방해가 되는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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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지금도 그가 롤모델인가?
물론 지금은 연기자로서 롤모델이 없다. 한편으론 이젠 선배님을 언젠간 올라서야지, 라는 생각이 있긴 한데. 물론 그건 존경의 의미다.

<비열한 거리>의 종수가 진구란 배우를 사람들에게 많이 인식시킨 거 같다.
사실 <비열한 거리>가 진구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대표작이 될만한 작품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냥 마지막에 주인공을 죽인다는 그 포인트 하나만 잘 잡아서 연기를 잘 하는 조 단역으로 일단 어필하자는 생각으로 했을 뿐인데.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게 많아서 이전 작품들에 비해 공부도 많이 했고, 현장에서 감독님의 디렉팅을 처음으로 받아본 작품이다. 그 전에는 감독님들이 굉장히 어려웠고 무서워했기 때문에 감히 ‘감독님, 저는 이 장면 이렇게 생각하는데, 감독님은 어떠세요?’ 이런 말을 못했다. 감독님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지.

그런데 어떻게 디렉팅을 받은 건가?
유하 감독님께서 오히려 먼저 나한테 오셔서, ‘진구야,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게 어떠냐?’ 그러시더라. 물론 아마 답답해서 그러셨을 거다. 워낙 못하니까. (웃음) 그러다가 나도 점점 말문이 트이기 시작해서 나중엔 ‘저는 이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했는데 어떠십니까?’ 이렇게 되묻기도 했다. 그리고 ‘그래, 그럼 그게 맞는 거 같다. 그렇게 가자!’, 이렇게 서로 의견을 잘 조합하다 보니 아마 내 연기가 튀지도 않고 영화 속에 잘 묻어난 거 같다. 그리고 그걸 보고 사람들은 연기를 잘 했다고 하더라. 사실 감독님께서 정말 날 살려주신 거지.

그런데 <달콤한 인생><비열한 거리><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연속으로 건달 이미지를 맡았는데 풍기는 느낌은 제 각각이더라.
그것도 다 감독님들께서 잘 잡아주셔서 그런 거다. 정말.

그래도 본인이 각각의 캐릭터를 찾아가는 방식은 있을 것 아닌가?
영화마다 틀리지. 작품마다. 그리고 상대 배우마다 틀리고. 상대 배우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많이 틀려지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배우들을 잘 만난 운도 있는 것 같고. 확실히.

<기담>은 어땠나?
<기담>도 전적으로 감독님들의 디렉팅에 의해서 나온 연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잡아간 건 한 30%정도라면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이 20%였고, 감독님께서 가르쳐 주시거나 숙제처럼 준 그런 것들이 50%, 절반 이상?

사실 먹물 묻은 캐릭터는 처음이다.
먹물 묻었다는 게 어떤 의미지?

의대 실습생이잖아.
아, 좀 지적인 거? 사실 전혀 지적이지 않은데! (웃음)

음, 아직 <기담>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 잘 모르지만-이 인터뷰는 <기담>의 기자시사 전에 진행됐다.- 쨌든 외면적으론 그렇잖나. 생각해보면 공포라는 장르도 처음이고, 시대극 자체도 처음이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실 지금까지 했던 거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일단 의대 실습생이라니까 ‘아, 쟤 공부 좀 했나 보다.’ 이렇게 막연히 느끼나 보다. 그리고 시대극이지만 특별히 어미가 두드러진 조선 시대 식의 대사를 한 것도 아니다. 시대극을 하며 배우로서 준비한 게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런 준비는 거의 분장팀하고 의상팀, 미술팀만 많이 했던 거 같고, 배우들은 그냥 연기만 했던 거 같다. 유약하고 섬세한 의대실습생이 시체실에서 당번을 서다가 시체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시대가 2007년으로 옮겨졌다고 해도 난 분명 <기담>하고 똑같이 연기를 할 것 같다. 복장이나 환경만 틀릴 뿐이지. 그래서 별로 다를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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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이라는 점에 대해 특별히 인지할 필요는 없었다는 말인가?
어차피 사랑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니까. 때리면 아픈 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사랑에 빠지는 연기도 처음이다.
음, 그렇지! 그 동안 TV 단막극에서조차 사랑이 없었으니까. 가족간의 사랑이나 그런 것 밖에 없었지. 처음이네. 사실 듣고 보니 이제 알았다.

그런데 첫사랑이 좀 특이하다. 상대가 시체라니. (웃음) 감정을 끌어내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쉽지 않더라. 그런데 시체가 하도 예뻐서. (웃음) 시체에 하얀 천을 덮어놓은 씬에서도 진짜 배우가 들어갔다. 솔직히 실제 사람이 들어갈 필요 없이 마네킹을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늘 내 앞에 눕혀놓았다. 아무래도 감독님이 내 연기를 끌어내는데 도움을 주려고 한 것 같다. 그리고 대본 중에 ‘마치 여고생 시체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라는 지문도 있어서 그에 충실 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살아있는 사람 같은, 그것도 예쁜 시체를 봐서인지 그렇게 어렵진 않았던 거 같다. (웃음)

시체이니 말도 없고, 표정도 없었을 텐데. 그런 상대를 앞에 두고 연기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대사도 표정도 없는 시체가 내 연기 상대이다 보니 혼자서 연기를 끌어가야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연기적 고민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었다.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으니까 내 씬은 혼자 끌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상대 연기자가 없다 보니 연기에 대한 고민을 직접적으로 나눌 사람도 없었다. 그게 어려웠던 거 같다. 한편으론 외로웠던 것도 같고. 아무래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조금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사실 숙소에서 혼자 술도 많이 먹었다. (웃음)

촬영이 디테일하게 이뤄졌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일정이 지연되는 상황도 많았고, 그런 부분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은 없었나?
촬영이 지연되고 일정이 늦어진 건 어쩔 수가 없었던 일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촬영 분의 대부분이 안성병원세트였는데, 그 세트에 문제가 약간 있었다. 미술 감독님께서 미장센에 신경을 많이 쓰셔서 상당히 디테일하게 만들었는데, 막상 영화 촬영에 용이하지 못했다. 조명을 달아야 하는데 조명 설치가 어려운 복도가 있었고, 응급 침대를 이동하는 데도 벽에 걸려서 커브가 안 되는 곳도 있었고. 그래서 세트 공사를 다시 해야 했다. 물론 나를 비롯한 배우들보단 스텝들이 불편한 문제였다.

듣는 바에 의하면 한 씬을 세 버전으로 찍기도 했다는데.
똑같은 장면인데 카메라를 이렇게 들어가보고, 저렇게 들어가보면서 여러 각도에서 찍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장면은 2컷 찍는데 24시간 넘게 걸릴 때도 있었다. 솔직히 기다림에 대한 고통도 약간 있었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위한 배려였으니 참고 견디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아버지께서 오래 전부터 영화계에서 활동하신 진영호 촬영감독님이라고 들었다. 영화배우가 된 건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다. 그것이 직접적인 유전이던 간접적인 영향이든.
여러 가지가 있다. 아버지의 피 때문인지,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서 뭔가를 보여주고 박수 받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배우나 가수, 하다 못해 백댄서라도 좋으니까 남들 앞에서 뭔가를 보여 주고 싶은 게 내 꿈이었고 장래희망이었다. 결정적으로 군대에서 ‘나가서 뭘 하면 남들보다 나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차차 하게 됐다. 그러면서 하나씩 잘라가게 됐지. ‘가수? 그렇게 잘 할 거 같진 않아.’ 이런 식으로 하나씩 잘라가다 보니까 결국에 배우가 하나 남더라. 물론 배우를 만만하게 봐서가 아니라 나랑 가장 잘 맞을 거라고 혼자 생각을 했던 거지. 아버지께서 처음엔 반대가 심하셨다. 현장을 많이 겪어보신 분이시니까. 너 같은 애는 배우로서 성공 못한다고 적극적으로 반대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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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선 상당히 회의적이셨나 보다.
그래서 <올인>을 몰래 했다. 근데 <올인> 촬영 감독님께서 아버지의 아주 아래 후배였던 거다. 결국엔 그래서 걸렸는데 나름대로 그 촬영 감독님께서 전화 통화로 아버지께서 내가 열심히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한시름 놓으셨던 거지. 그런데 <올인>이 방영되기 전에 사람들의 반응이 나오지 않은 당시에도 나한테 항상 ‘다른 길도 생각해봐라. 만약 네가 방송 나왔는데 사람들이 널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고, 아니면 네가 한계를 느낄 수도 있으니까 다른 길도 생각해보거라.’라고 말씀하셨다.

본인도 그런 말에 고민 좀 하지 않았을까? 한편으론 경력자의 조언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난 전혀 그런 생각 안 했다. 사람들이 안 좋아하면 좋아할 때까지 하면 되고, 내가 연기를 못 했으면 다음에 잘 하면 되는 거니까. 아버지는 촬영을 했던 스텝이고, 난 배우이기 때문에 영화를 사랑하는 마인드는 같지만 아무래도 분야적인 시각이 틀리다.

그럼 이제 배우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조언해주시는 건 없나?
물론 지금은 예전같이 반대는 하지 않지. 그렇다고 연기에 대해서 터치하시는 것도 없다. 다만 내가 점점 비중이 커진 역할을 맡으니까 거만해지거나 뻔뻔해지지 말라고 이야기해주신다. 인사성이나 스텝들한테 어떻게 하라는 인간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시지. 내가 잠시 놓칠 수 있는 인간적인 것들이나 내적인 걸 많이 잡아주신다. 스텝들은 이런 배우 좋아한다는, 그런 거. 그리고 나도 아직 현장에서 막내니까 막내 스텝들 챙기라는 말도, 그리고 그런 말씀은 나도 충분히 맞는다고 공감하니까 새겨 듣는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나 보다. 살가운 사이 같은데.
전혀. 사실 세상에서 2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버지라면, 제일 싫어하는 사람도 아버지다.
어렸을 때 사연이 좀 있어서.

음, 아픈 부분은 건드리지 않겠다. 아버지께서 유하 감독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나가라>의 촬영감독이라고 알고 있다. 세대를 이어서 유하 감독하고 인연을 맺은 셈인데, 어쩌면 <말죽거리 잔혹사> 때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사실 그 때, <말죽거리 잔혹사> 오디션에 갔었다. <올 인>이 ‘빵!’ 터지고 나서. (웃음) 그때는 정말 멋모를 때였지. 배우로서 데뷔를 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머릿속에 똥만 가득 찼을 때. (웃음) 사실 거만은 몰랐다. 어떻게 하는 게 거만한 건지 몰랐으니까. 그러나 캐스팅이란 게 굉장히 쉽구나, 라고 착각했던 거 같다. 사실 <말죽거리 잔혹사>는 김인권 선배가 했던 찍새 역할로 갔는데, 감독님과 PD님이 보시더니 이정진 씨가 맡았던 우식이 시키자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또 그렇게 캐스팅된 건 줄 알았지. <올인>때도 그렇게 됐으니까. 그런데 투자자들한테 신뢰가 없으니까 결국엔 떨어졌다. 그러다가 <낭만자객>을 하게 됐고, <논스톱>도 했고. <낭만자객>을 하면서 조금씩 배우게 됐지. 나한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첫 현장 체험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기담>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뭔가?
난 공포영화를 안 좋아한다. 너무 사람 놀래 키려 하는 게 장난치는 거 같아서. 오히려 그럼 오기로라도 더 안 놀래고 겁 안 먹거든.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는 것도 있다. 공포영화를 잘 만드시는 감독님들이나 배우 분들에겐 죄송한 이야기지만 난 그래서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기담> 시나리오에서 그런 냄새가 났다면 난 결단코 누가 시켜도 안 했을 거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아니면 주인공 원 톱을 시켜줘도. 그런데 난 공포보단 멜로를 느꼈다. 그리고 이동규 선배나 김태우 선배, 김보경 선배랑 같이 할 수 있는 작품이라서 또 끌렸다. 주인공의 부담이 많이 덜어지니까. 확실히 뭔가 배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결국 정말 많이 배웠다. 감독님 두 분도 이제 입봉하시는 분들이라지만 내가 봤을 땐, 손꼽히는 프로라고 생각한다. 그 분들한테도 굉장히 많은 걸 배웠고. 육체적으로 참는 건 <비열한 거리>를 하면서 배웠지만, 정신적으로 참는 건 <기담>을 통해서 배웠다. 그리고 장르의 모호함, 겉으로 보면 공포지만 그 안에 뭔가 숨겨진 탄탄한 드라마 때문에도 하게 됐다.

공포 영화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재미있게 본 공포 영화도 있지 않나?
아주 어렸을 때 본 것들은 재미있었다. 최근에는 <쏘우>가 기억에 남는데 스릴러적인 측면이 좋았다. 잔인한 슬래셔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요즘 스릴러 영화에는 잘리거나 내장 나오는 건 꼭 나오는 것 같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또 머리 풀어헤치고 이런 귀신 나오는 것도 너무 싫다. 좀 지겹다.

그럼 특별히 좋아하거나 애착이 가는 장르가 있나?
공포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르는 모두 좋아한다! 생각해보니 공포를 싫어하는 건 아니고, 안 좋아하는 거네. 다시 번복한다. 안 좋아하는 거다. 싫어하는 건 아니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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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은 공포영화지만 예상 밖의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진구 씨의 역할이 그런 예상 밖의 무언가를 끌어내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비열한 거리>에서처럼.
이제 그게 역이지. 원래는 안 그런데 그걸 기대했다가 또 뒤통수 맞게 되는. (웃음)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처음에 주문하셨던 게, ‘지금까지 진구가 맡았던 역할들은 뭔가를 감추다가 나중에 뻥 터트리는 건데, <기담>에서는 끝까지 감춰라’ 였다. 겁이 많고, 소심하고, 유약하기 때문에 가슴에 있는 분노도 밖으로 못 나오고, 슬픔도 밖으로 나와서는 안됐다.

그럼 상당히 절제된 연기를 많이 했을 것 같은데.
평생 비밀을 안아야 하는 캐릭터다. 나의 내레이션을 통해서 영화가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이라는 소리인데.
그렇게 큰 건 줄 전혀 몰랐다. (웃음) 시나리오 받을 때도.

시나리오도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난 그냥 대충의 이해는 했었다. ‘아, 이거 반전이 있구나. 재미있다.’ 이정도 생각으로 어려울 거란 예상은 못했지. 그리고 감독님들과 이야기할 때도 신뢰가 생겨서 믿고 갔지. 그런데 막상 찍어보니까 어렵더라. 얕봤던 거지.

지금까지 스스로를 누르는 연기를 많이 했다. <아이스케키>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숨긴 채, 그것이 분노인지 연민인지 모를 속마음을 지녔었고, <비열한 거리>에서도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역할 탓도 있지만 배우의 기질 탓 때문도 아닐까 생각했다.
원래 그런가 보다. 평소에도 내가. 사실 난 아까도 말했었지만 연기할 때 그걸 의도하고 연기한 적은 한번도 없으니까. 사실 <비열한 거리>에서도 종수는 본심을 감췄다기 보단 정말 병두(조인성)를 좋아해서 목숨까지 걸겠다는 충직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나중에 병두가 ‘친구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넌 건드리지마’ 했을 때, ‘우리 식구보다 그 새끼가 정말 중요합니까’라고 하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건드리지마’ 이랬던 거다. 죽어도 자기 식구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안 한 거지. 그래서 종수는 ‘어?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네, 알았어.’ 결국 그렇게 배신하게 된 거지. 쉽게 말하면 단순한 거다. 대단히 단순해서 믿음이 바뀐 것뿐이고 난 그렇게 연기했지. 근데 그게 원래 그런 속내를 감추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 거지.

다르게 보면 우직하단 인상에 가깝다. <달콤한 인생>에서도 그랬고.
상황 상황에 맞게 자꾸 변해야 했으니까. 여기선 드러내야 맞는 거고, 저기선 감춰야만 맞는 거라는 걸. 그건 사실 감독님들이 진짜 나를 캐릭터에 잘 붙여놔서 그렇지. (웃음)

그런 면에서 <기담>의 캐릭터가 궁금한데.
내가 생각할 땐 가장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싶은데, 안 드러냈으니까. 솔직히 영화를 아직 못 봐서 어떻게 됐을지 잘은 모르겠고. (웃음)

예고편을 너무 잘 만들어서 기대되나? (웃음) 어쨌든 이번이 6번째 영화다.
아, 그런가? (손가락으로 세보더니) 아, 그렇네! (웃음) 6개 맞네. 와~ 많이 찍었다. (웃음)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6번째 영화까지 왔는데, 처음과 지금은 뭔가 달라졌을 것 같다. 3자 입장에서 보기엔 마치 계단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다.
분명 계단은 밟고 있겠지. 전에 대한 반성과, 복습과 예습을 철저히 하려 하니까. (웃음) 그리고 장르가 거의 다 틀렸기 때문에, 이제 첫 계단일 수도 있다. 나한테 맞는 옷을 못 찾았을 수도 있고. 욕심이라면, 맞는 옷 따윈 필요 없이 어떤 옷이든 잘 맞추고는 싶다. 모든 장르를 해보고 이 장르의 내 약점은 이거다, 이 장르의 강점은 이거다, 이런 걸 많이 분석해보고 싶다. 그럼 아마 다음 공포나 다음 조폭 영화에선 <기담>이나 <비열한 거리>보단 더 업그레이드된 무언가가 생기겠지. 아직은 경험하는 단계? 아직까진 데뷔다. 아직도 난 신인.

함께 출연한 김태우나 김보경, 이동규는 모두 경험 많은 선배이자 인정받는 연기자다. 나름대로 배울 점도 많았겠다.
뭐, 세분이 연기 잘 하시는 건 다들 아니까 거기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런데 카메라 밖에서, 연기자가 아닌 모습에서 세 분 다 배울 점이 아주 많다. 일단, 이동규 선배 같은 경우는 되게 진지하다. 스텝들의 고민까지 들어주시고. 또 그래 줄 수 있을 듯한 큰 형 같은 느낌이다. 오히려 김태우 선배가 막내 삼촌이나 작은 형 같다. 나한테만 일부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굉장히 어려워할 선배인데 내게 먼저 와서 장난쳐 주고, 방금 전처럼(인터뷰 현장에 있던 김태우 씨가 도중 종종 장난을 걸어 왔음.). 덕분에 난 현장에서 기 죽어서 연기하지 않아도 됐다. 김보경 선배도 되게 장난 많이 쳤다. 김태우 선배랑 편 먹고. (웃음) 그런데 짓궂을 정도로 장난쳐도 나한텐 고마운 거니까. 김태우 선배의 가정적인 모습도 좋고. 롤 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로. 연기는 롤 모델이 없지만 인간적으로 생활하는 건 선배님들을 롤 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로 많이 배웠다.

그런데 항상 남자배우들과 엮이더라. 여자 배우와도 엮일 만 한데. 제대로 된 사랑 연기도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나?
아직 부족하다. 아직 큰 자신은 없는데, 언젠가는 해야지. 정통 멜로보단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나 그런 쪽부터 밟고 싶다. 물론 정통 멜로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거면 얼마든지 하고 싶지만. 장르는 안 가린다. 어떤 장르를 하고 싶다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거지. 정말 크고 백 씬 중에 팔십 씬 나오는 역할도 내가 못할 거면 안 하고. 단역이거나 한 씬밖에 안 나와도 간당간당 내 그릇에 넘칠 듯 말 듯 채울 수 있겠다, 싶을 정도면 욕심내서 하고. 무리하진 않고 싶다.

<논스톱> 시절 생각하면 코믹도 나름 어울리던데.
아니다. 솔직히 난 어색하던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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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제 필모그래피가 쌓인 만큼 알아보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을 거다. 그럴 때 기분은 어떤가?
좋지! 굉장히. 처음부터 남들한테 박수 받고 싶고, 호응을 얻고 싶어서 생각했던 일이니까. 물론 결국엔 돈 벌기 위한 직업으로 배우를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관객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연기하는 거잖아. 그니까 그런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 좋아해주고 그러면 좋지. 굉장히 신난다. 그리고 그럴 때 ‘나 아직 안 죽는구나. 다음 작품 또 들어오겠구나’ 하는 희망도 생기고. (웃음)

연기자 진구와 일반인 진구 사이엔 어느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것 같나? 본인 생각에.
거의 차이가 없다. 연기할 때도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 같고, 실제 생활에도 그렇다. 굉장한 이중 인격까지는 아니어도 양면성이 있지. 밝고 어두움이 확실히 있어. 극과 극의.

앞으로 <기담> 이후에 정해진 차기 계획 있나?
홍보팀에서 ‘<트럭>에 출연 예정 중입니다.’ 정도만 말하라던데? (웃음)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권형진 감독님 작품이고 유해진 선배님과 함께 한다.

촬영은 시작했나?
프리 프로덕션은 들어갔고. 본격적인 1회 차 촬영은 내일 모레, 목요일(6월 19일)부터.

첫 주인공으로서 <기담>에 대해 어필한다면, 앞에 있는 나까지 포함해서.
생각해온 건 아니고, 아까 인터뷰 중에 문득 생각이 났는데, 이번엔 이 카피로 밀고 싶다! (웃음) 차가운 공포영화가 아닌 따뜻한 공포영화다. 보통 여름에 피서용으로 에어컨 나오는 극장가서 시원한 공포영화나 보자, 이런 분들 많은데 그런 시원한 공포영화는 아니다. 방에 에어컨 세게 틀어놓고 나중에 추울 때, 두꺼운 이불을 덮으면 따뜻함과 시원함이 공존하는 오묘한 상황이 된다. (웃음) 그런 느낌을 관객 분들께서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만약 <기담>이 내 생각에 맞는 느낌으로 나왔다면 분명히 그럴 수 있고 흥행도 잘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럼 다음주에 나도 확인해보겠다.
나도 아직 못 봐서 장담은 못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 잘못만은 아닙니다!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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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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