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어머니에게도 소녀시대가 있었고, 철없는 시절에 함께 하면 무서울 것이 없었던 친구들과의 추억도 있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어린 나이에 할 수 없는 무언가를 거듭 겪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어떤 것들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시절에서만 가능했던 무엇들을 더 이상 체험할 수 없다는 상실을 체감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써니>는 우리의 지난 날, 80년대를 지나쳐 보낸 어떤 어른들을 위한 송가다. <써니>는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삶에 치이고 부대끼며 살아가던 여인 임나미(유호정)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지난 날을 돌아보고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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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살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이었다. 한낮에 단잠을 자고 있었을 게다. 어느 순간 어렴풋이 눈이 뜨였고, 순간 적막한 기분을 느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음을 직감한 어린 것은 내심 불안해진 탓에 퍼뜩 잠이 깨어 엄마를 불러댔다. 그리 넓지도 않았던 집 구석구석을 돌며 엄마를 불러댔지만 돌아오는 건 빈 공간만큼의 두려움이었고, 그 두려움을 밀어내려는 것마냥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내며 빽하고 울어내기 시작했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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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근육질 마초들이 동창회라도 열 기세로 한 자리에 모여 액션을 펼친다. <익스펜더블>은 단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촌스러운 기획물이다. 여전히 몸으로 뛰고 발로 구르는 액션물이 멸종한 것은 아니지만 아드레날린과 안드로겐으로 점철된 근육 마초의 시대는 분명 한 물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익스펜더블>의 유효성은 그 한 물 갔음에서 비롯된다. 한 물 간 역전의 용사들이 패기 대신 관록을 입고 새로운 시대에서 오래된 시절을 되새기게 만든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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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광주에 다녀왔다. 휴가라고 해봐야 어디 놀러 가는 취미도 없고, 차라리 오랜만에 친구들이 있는 광주나 다녀오자 싶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옛날보단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줄었다. 내 무심함의 탓이기도 했고, 말 그대로 세월 탓이기도 했다. 연락을 자주 못하는 만큼 멀어진 친구들도 생겼고,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된 탓에 책임질 일이 많아진 친구들은 쉽게 짬을 내지 못하고 제 생활에 얽매여 있었다. 그 와중에도 많은 친구를 만났고, 하나같이 반갑거나 놀라웠다. 결혼을 앞둔 녀석도 있고, 곧 아버지가 될 친구도 있었다. 종종 연락해와서 어느 정도 근황을 아는 녀석도 있었던 반면,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 만나는 친구도 있었다. 많이 컸다. 비로소 실감했다. 내가 참 많이 컸다. 우린 늙어가고 있구나. 비로소 체감했다. 어른이 된 친구들은 제 각각의 방식으로 제 삶을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갈피를 못 잡은 듯 불안해 보이는 녀석도 있었지만 적당한 확신을 손에 쥐고 앞으로 전진해가는 녀석도 있었다. 3 4, 엄밀히 말하면 3 3일이나 다름없는 일정 가운데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묵혀뒀던 옛 추억들이 세월을 먼지처럼 털고 언어로 재현되고 그때마다 우린 낄낄거리며 또 다른 기억을 파고 들었다.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가 즐거웠다. 오랜만에 내려간 광주는 많이 변했고, 친구들도 많이 변했지만 추억은 여전했다. 그것만으로도 즐겁더라. 다시 올라오기 싫을 만큼 행복했다. 그 기분에 취해서 담배를 다시 물게 됐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언젠가 폐암에 걸려 죽더라도 이 날만큼은 유쾌하게 기억하련다. 추억을 통해 또 다른 추억이 자란다. 친구란 그런 것 같다. 3년 만에 만나도 웃을 수 있는, 그리고 그렇게 만나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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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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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경, 마감을 핑계로 컴퓨터 앞에 붙어서 산만하게 노닥거리고 있을 즈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영화를 봤다고 했다. <왓치맨>을 봤다는데 재미없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질식할 것 같아 내게 구원을 요청했다. 난 물론 흥미롭게 봤다. 재미있었다. 녀석은 좋아했다. 원래 이 친구랑은 말이 잘 통했다. 항상 영화를 같이 보고 나면 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어쩌면 지금 내 삶에 끼친 영향력의 7할 정도는 이 친구 몫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음악을 들었고, 영화를 봤다. 이야기를 했고, 글쓰기에 대한 고무를 가능케 했다. 때때로 이 녀석이 날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며 비아냥거렸다. 반쯤은 농담이고 반쯤은 진담이다. 내가 지금 날 새는 것도 어쩌면 이 녀석 탓이라니까. 하지만 나쁜 의미는 없다.반쯤의 진담보단 농담 쪽으로 좀 더 저울추가 기운다. 여러모로 힘이 되는 녀석이었다. 내 지루한 이야기를 꽤나 재미있게 들어주는 상대라면 내게 있어선 정말 괜찮은 녀석인 거다.

 

간만에 수화기를 경계로 대화를 나눴다. 광주에 있는 녀석을 만나기란 어렵다. 하긴 내가 절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의 9할 정도는 광주에 있다. 이 녀석도 그 중 하나고. 어쨌든 영화를 보고 나서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대화를 했고, 자연스레 시간이 흘렀다. 대화를 통해 시간을 이겨야 할 사람이 있는 반면, 대화와 함께 시간을 흘려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아무래도 후자가 편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점점 후자의 입장에 있는 상대들과 멀어지고 있다. 사람을 잃는 느낌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중 대부분과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많지 않다.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인연은 쉽게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옛 친구들과 여전히 연대할 수 있는 것도 그 추억덕분이다. 그 친구들이 보고 싶은 것도 그 때문일 테고. 그저 짧은 통화만으로도 멀어졌던 수많은 기억들이 다시 눈 앞으로 돌아온다는 거. 그거 대단히 즐거운 일이거든.

 

사람이 그립다. 옛 이야기가 하고 싶다. 나이 먹어간다는 건 이런 건가. 문득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래된 친구의 전화만으로도 감상에 젖고 옛 기억들을 떠올리며 씁쓸해진다.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안다. 그저 한번쯤 다시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그 추억 위로 덮인 먼지들을 훅 불어내고 온전한 형체를 멀리서나마 한번쯤 되돌아보고 싶을 뿐이다. 다시 허물어질 언어라 할지라도 잔상은 거기서부터 다시 지속될 것이다. 그 당시보다 많은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그 시절보다 긴 추억을 만들어낸다는 게 어려운 나이이기도 하지 않나. 어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쉽게 만들 수 없는 시절로 들어선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모르지. 어쩌면 내가 지금 마감을 앞두고 이 문장들 사이로 도피한 것일지도. 어쨌든 다시 마감이나. 일단 지금은 외로움 타령보다도 먹고 살 궁리를 할 시간. 아, 이렇게 적고 나니 진짜 없어 보이네. 나도 그럼 허세라도, 뉴욕 헤럴드 트리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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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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