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loop'에 해당되는 글 112건

  1. 2009.02.04 취 재
  2. 2009.02.02 살아가자. 2
  3. 2009.01.30 내 탓이오.
  4. 2009.01.28 사랑한다는 말
  5. 2009.01.27 고해
  6. 2009.01.25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2
  7. 2009.01.24 이별 4
  8. 2009.01.09 마감
  9. 2008.12.30 송년 2
  10. 2008.12.23 전화

취 재

time loop 2009. 2. 4. 23:22

취재라는 명목으로 며칠째 전화기만 붙잡고 있다.

방송국에, 신문사에, 교수에, 변호사에, 경찰까지, 기자란 이름으로 전화를 걸어 응답을 요청하기를 수십번씩 반복한다. 전화교환원이라도 된 심정이지만 이래저래 사람들과 연결되고 물음과 막힘의 반복 속에서 어떤 테두리를 그려나간다. 모든 이들이 호의적인 건 아니지만 그 와중에도 상황이 한걸음씩 진전되는 걸 보면 나름 고무되는 바가 없는 건 아니다.

선배는 그랬다. 기자는 자기 생각을 말하는 직업이 아니야. 네가 보고 들은 걸 적고 써봐. 넌 분명 그걸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있어. 뜨끔했다. 난 항상 내 생각을 썼지. 누군가의 말을 주워담아 기록해본 기억이 별로 없거든.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 자신이 없었다. 선배는 내가 그럴 수 있다고 했지만 난 솔직히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지녀본 적이 없다. 아이템을 제시하면서도 가능성 앞에 머뭇거린 건 그런 자신감의 결핍 덕분이었다. 과연 어떻게, 내가? 이런 불안에 휩싸이면 쓸 수 있는 글도, 접근할 수 있는 주제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하지만 난 아직 아마추어다. 네 꿈이 기자냐, 평론가냐. 과거에 얻었던 이 질문이 여전히 뜨끔한 건 괜한 게 아니다.

기자란 타이틀을 달고 살아간다는 건 그 이름의 권위보다도 그 이름의 책임을 깨닫고 살아야 하는 일 같다. 그 알 권리라는 것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가 알고 싶어하는 일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가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채취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길 듣는 중이다. 내가 과연 좋은 글을 쓸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확신은 어렵다. 하지만 좋을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은 넘친다.

그 좋은 글이란, 분명 내가 아는 것을 넘어 나조차도 알아야 할 사실을 전달하는 글이어야 한다. 많이 듣고, 많이 보며 살아야 겠다. 선배 말처럼, 굴러봐야 안다. 그런 것 같다. 아직 난 애송이다. 어리고 어리다. 이런 내가 뭘 알겠나. 그러니 난 좀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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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자.

time loop 2009. 2. 2. 01:26

사랑은 완력이 아니다. 어느 한쪽의 마음이 더욱 강하든 말든 한쪽의 마음이 꺼진 양초처럼 사그라지면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들다. 그 뒤로 남는 건 미련으로 변해버린 사랑 앞에 슬퍼하는 자와, 변심한 자의 악역 연기가 있을 뿐. 사랑이 변한다는 말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마른 장작 타오르듯 불타오르던 감정도 식으면 한낱 잿더미에 불과한 것을. 단지 비극은 그 감정의 변화가 쌍방간에 민주적 합의로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마음 속에서 독재적으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사랑의 시작에 예정이 없었듯, 끝에도 예정은 없다. 쌓여있던 감정이 눈사태처럼 터져나올 수도 있고, 남모르게 새어나가던 감정이 불붙듯 타오를 수도 있는 법. 이별이란 건 일방적이되 충동적인 것이 아니다. 이미 기저에 모든 조건이 합당하게 갖춰진 상태에서 벌어지는 순리일지라. 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사랑이 아직 살아 숨쉰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가 괴로움을 호소한다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리라.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거나, 그딴 야심은 필요 없다. 현재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기억에 까지 얽매인 채 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전진할 수 없는 추억을 홀로 밀고 나가려 하다 그 추억마저 깔아뭉개고 너와 나를 이루던 모든 기억들을 핏덩어리로 뭉개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으리. 손을 놓는다. 아프지만 보낸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너와 나는 이제 오늘을 살아야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오늘을 살아야 한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나로서 살아가련다. 너를 어제로 떠내려 보내고 그렇게 걸어나가야지.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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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

time loop 2009. 1. 30. 02:06

우리 결혼했어요를 즐겨보곤 했다. 난 항상 그걸 무시했다. 그게 좋아? 그건 완전 구라야. 이런 식이었지. 하지만 지금에 와서 후회가 된다. 나도 좀 볼걸 그랬어. 알렉스의 화분이 뭔지, 좀 볼걸. 그 아이가 그 프로를 즐겨봤던 건 그 프로 안에 그 아이를 위한 어떤 환상이 존재했다는 건데, 적어도 그걸 공유하려는 노력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걸 그랬다. 요즘은 꽃보다 남자를 본다던데 말야. 어쨌든 서로의 차이가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같은 허물을 달고 나온 쌍둥이조차도 차이가 있을지언정 생전 남남끼리 어떻게 다른 사람이 아닐 수 있을까. 단지 그 차이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관건인 거지. 그 차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가가 중요한 거지. 결국은 노력이더라. 생각해보면 난 그 노력을 얼마나 했나 싶다. 그저 내가 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고, 내가 보는 것을 보라고 했을 뿐이지. 그 아이가 보고 싶어하는 게 뭔지, 그 아이가 보는 방향이 어딘지, 짐작조차 못했다. 무조건 그것을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은 아니겠지만 역시나 그건 노력이다. 무언가를 함께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다. 그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얼마만큼 존중해주고 있느냐가 필요한 거다. 난 항상 그 아이의 고민에 첨삭지도를 하곤 했다. 지금 네 생각은 이러니까 이런 식으로 바꾸고, 그 상황은 어쩔 수 없잖아. 그냥 내버려둬. 그러고선 항상 스스로 만족해했고 그 아이는 피곤해했다. 그저 위로 한마디가 필요했을 거다. 그래. 그랬구나. 힘들었지. 이 짧은 한마디면 되는 일이었다. 잘났다. 정말. 너무나 잘난 덕분에 사람을 놓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탓이다. 좀더 잘할 수 있었건만. 그러게 말이다. 일주일 정도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내 수명의 한 달을 팔아도 될 것만 같다. 하지만 시간이란 정직한 법이지. 지금은 그저 나아가는 방향 속에서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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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

time loop 2009. 1. 28. 22:57

자다가도 문득 정신이 들면 전화기를 봤다. 혹시나, 하지만 역시나. 어쩌면 너한테 문자라도 올까 핸드폰 소리를 꺼두지도 못한 채 잠을 잤다. 침대에 바로 누우면 심장 뛰는 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네가 보고 싶다. 그립다. 하루 종일 전화해볼까 하다 참고 또 참았다. 좀 더 시간을 주자. 받지 못할 전화로 괴롭히지 말자. 다짐했다. 문득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널 만난 지 2년이 다 되가는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담배냄새를 싫어하면 담배를 끊겠다는 오랜 다짐은 너를 통해 실현됐다. 괴로운 마음에 담배가 당겼다. 가까스로 억눌렀다. 지금 담배를 입에 물면 널 정말 포기하는 꼴이 된다. 난 아직 이별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다. 사랑은 함께 해야 하지만 이별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절망스러운 말이다. 하지만 난 아직 이별하지 않았다. 그래, 이별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한 사람마저 이별해버리면 정말 끝이다. 난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믿고 있다. 마지막까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널 향해 역류해갈 것이다. 내 진심을 모두 태워서 내 마음의 재까지 널 향해 날리련다.

 

네가 보고 싶다. 그저 이 말 한마디 해주고 싶은 것뿐인데……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지만 난 지금 널 들을 수조차 없게 됐다.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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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

time loop 2009. 1. 27. 22:46

그 아이는 고해를 좋아했다. 난 차마 부를 수가 없는 노래였다. 최소한 노래방에서만큼은 미성인 나에겐 너무나도 그런지한 노래다. 도무지 올라가지 않는 걸. 가뭄 난 논바닥마냥 쩍쩍 갈라지고 쇳소리로 불이 튈 것 같아서 부를 수 없는 노래였다. 그래도 그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라 한번 연습해보자, 방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불러본 적이 있다. 덕분에 목이 갔다. 잠잘 때도 목이 칼칼해 고생했다. 목이 쉬면 회복이 빠른 게 다행이었다. , 이건 안 되는 일이구나. 포기했다. 지금은 다시 그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 목에서 핏덩이가 나오고 끝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해도 그 아이를 위해서 수천 번이고 수만 번이고 불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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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고 싶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달려 너에게 돌아가고 싶다. 너에게 했던 과오들을 되돌리고 싶다. 지금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침식되는 우리 시간을 어떻게든 다져보고 싶다. 단단해진 줄 알았던 마음이 허물어진다. 시간이 허물어지고, 추억이 무너지고, 관계가 희미해진다. 함께 웃었던 시간도 많았건만 어째서 서로를 할퀴고, 흔들고, 멍들게 했던 순간들이 기억을 지배하고 관계를 밀어내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여전히 난 너와 함께 하고 싶다. 다시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외롭게 만들지 모를 일이건만 차라리 그게 낫다. 너 없는 나보다, 나 없는 너보다 차라리 그게 낫다고 말하고 싶다. 너와 나보다도 우리가 더 낫지 않을까. 묻고 싶다. 잡고 싶다. 다시 한번 널 향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머리를 내민다. 네가 날 밀어내게 만든 내가 염치없게도 널 다시 한번 끌어안고 싶다. 그게 내 마음이라는 거, 어떻게 이해시킬 수 없을까. 널 다시 내 앞으로 돌아서게 만들 수 없을까. 깊은 한숨에 어떤 대안이 없을까. 너와 나를 위한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너와 나의 스토리는 여전히 네버엔딩이라고, 우리가 쌓아 올릴 추억은 여전히 길고도 길다고, 어떻게 다시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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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time loop 2009. 1. 24. 10:30

마음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널 위해서야. 하지만 실상 상대방은 구속당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건 상대를 위한 일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위한 일이지.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때로 자꾸만 어긋나고 벌어지는 일이라면 차라리 참는 게 낫다. 그걸 몰랐던 건 아닐 거다. 막상 인식하지 못했을 따름이지. 감정이라는 건 언제나 충동적이다. 하지만 벌어진 상처는 통증을 유발한다.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생채기를 내는 실험은 무의미하다. 그 상처엔 어떤 의미도 없다. 난 굳이 그걸 하고야 말았던 것 같다.

 

세 번 정도 반복된 이별의 끝은 결국 다시 이별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렇지만 지나고 나면 후회가 물밀듯이 쳐들어와 날 쥐고 흔든다. 아침까지만 해도 예감할 수 없는 말이 저녁 즈음에 내 입에서 새어 나오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돌이킬 수 없는 말이라는 거 알면서도 하고 있었다.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었다. 때론 즉각적인 반응보다도 좀 더 시간을 갖고 감정을 삭힌 뒤 내뱉는 말이 현명할 수 있음에도, 난 그걸 모른 체했다.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변명에 불과하다.

 

우린 너무 다른 것 같아요. 그 아이가 말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서로 다른 것 같다는 말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단지 그 차이가 감내하기 힘들어졌다는 선언일 따름이다. 서로의 차이를 좁히기가 어렵다는, 이제 그것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말이다. 대부분의 이별은 서로의 차이를 알게 돼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절망에서 비롯된다. 난 그걸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상대의 손을 잡지 않은 채 혼자 건너고 있었다. 뒤쳐진 상대는 점점 멀어지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따라잡을까, 아니면 포기할까. 그 때 앞서가는 상대는 뒤돌아와 그 상대의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 상대가 뒤돌아선 뒤에야 뒤를 돌아봤지만 생각보다 멀었다.

 

그 아이와 4번째 이별을 했다. 3번째까지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물론 어젯밤엔 잠이 잘 안 왔다. 생각이 많아지니 잠을 자기가 힘들다. 그리움과 함께 자조가 스며든다. 하지만 어떤 자포자기가 밀려온다. 그 아이에게 더 시간을 달라는 말을 하기엔 내가 너무 무기력해졌다. 아직도 그 아이에게 줄 사랑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접어야겠다. 그 아이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난 조급해했고, 의심하지 않는다면서 줄곧 의심해왔다. 제자리를 찾아가려 노력하는 상대를 배려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줄 것처럼 얘기해놓고 주지 않는다 툴툴거렸다. 혼자 기대하곤 혼자 무너졌다. 그렇게 쓰러지곤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힘들었나 보다. 난 너무 빨랐고, 우린 벌어졌다. 그리고 헤어졌다. 안녕이라는 말조차 무색하게 멀어졌다. 누군가의 현재에서 영원을 기약했지만 결국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바스러질 운명이 됐다. 참 애석한 일이다.

 

이별이라는 거 실감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이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견뎌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인지 아직 확신이 들진 않지만 지금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알겠다. 차마 염치가 없어서 말하진 못했지만 그 아이가 나름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나와 함께 나눌 시간이 없다는 게 종종 후회되길 바란다. 이기적이지만 그렇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거, 실로 무의미한 듯하면서도 간절해지는 일인가보다. 그렇게 신년의 소원을 빌게 됐다. 이런 소원을 빌게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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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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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time loop 2009. 1. 9. 05:39

마감을 끝냈다. 이로써 몇 번째지? 5번째인가, 6번째인가. 헷갈리네. 여하간 드디어 끝났다. 이번 마감은 제일 질겼다. 덕분에 간만에 날을 샜다. 요즘 애써 노력해서 아침형 인간이 됐는데! 간만에 또 낮밤이 바뀔 지경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마감 중에 가장 치열했다. 덕분에 어제 오늘 봐야 할, 보고 싶은 영화를 놓쳤다. 그 와중에 회식이 있었다. 가야 하는 자리였다. 빠져야 할 사정이 있었지만 필히 가야만 하는 자리였다. 한편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초침의 움직임조차 민감해질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밑바닥을 드러내는 걸, 편할 리 없었다. 물론 술 한잔 입에 대지 않았다. 밥만 먹고 왔다. 그냥 사람만 만나고 왔다. 그 와중에 선배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해 치열하게 말꼬리를 잡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하아, 또 한번의 뻘짓. 칼로리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겨도 명예롭지 않다. 뒤늦은 후회만 항상 남는다. 하지만 어쩌겠나. 여전히 그 주장에 납득하지 못하는 걸. 병이다. 이건. 지금은 새벽 5시 반, 세상은 아직 어둡다. 하지만 곧 아침이 올 테다. 그리고 난 잠이 들겠지. 그 전에 리뷰 하나를 쓰고 잘 것인가 말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오늘은 외출을 해야겠다. 영화도 한편 봐야지. 하루 종일 앉아만 있었더니 좀이 쑤셔. 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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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time loop 2008. 12. 30. 05:29

한 해가 간다. 언제나 그렇듯 지난 날엔 많은 이가 있었고, 많은 일이 있었으며 많은 날이 있었다. 그 모든 사연 사이사이에 갖가지 감정들이 이끼처럼 끼어 물든다. 하지만 어차피 지난 일, 잊지는 말되 지나쳐 보내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과 재회를 거듭했고, 슬럼프에 시달리듯 하면서도 어찌어찌 글을 쓰고 있다. 뒤늦게 나마 잃어버린 친구를 떠올리게 됐고, 그나마 때때로 안부를 물었다. 어떤 친구 하나는 세상을 등졌고, 어떤 이들은 가장이 되어 새로운 삶을 꾸려나간다.

 

기이하게도 하루하루의 흐름은 언제나 지속적인데 우리는 그것을 한 달로 엮어 매년을 열두 달로 지정해 끝과 시작을 나눈다. 계절과 절기의 변화 양상에 따른 묶음이라지만 실상 일년 동안 기후가 변하지 않는 곳도 많다. 어쩌면 그건 새롭게 갱신되고 싶은 인간의 욕심 때문이 아닐까. 그저 매일매일의 반복 속에서 살아간다면 사람은 새롭게 태어날 희망을 갖지도 얻지도 못한다. 올해의 실패를 등진 내년의 희망이 필요하다. 나 또한 그러하다. 올 한해는 많은 일이 있었지만 여전히 난 많은 것이 불안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내년에도 난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이뤄나가리. 손에 쥐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세상에 으르렁거리기 보단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비좁은 마음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기 보단 넓은 눈을 통해 많은 것을 포용하고 발견하자. 사랑과, 우정도, 우애도, 모두 다 손에 쥐고 걸어가자. 뛰지 말고 걸어가자. 그렇게 살아보자. 내 삶의 부조리를 타인이 아닌 나로부터 고민하자. 내가 바뀌어야 세상도 변한다. 괴물이 되지 말자. 사람이 되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행하는 모든 폭력에 눈뜨고 맞서 현명해질 수 있길.

 

안녕, 2008. 넋두리는 이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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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time loop 2008. 12. 23. 02:00

고등학교 시절 동창 녀석들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 1시 즈음이었다. 술 한잔 기울이나 보다. 외국 나갔던 친구 녀석 하나가 오랜만에 들어왔다.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 한다친구 녀석들이 돌아가며 한번씩 전화를 받았다. 반가웠다. 실로. 당장 달려가고 싶으나 쉬운 일이 아니다. 광주는 멀다. 할 일도 많다. 난 광주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난 지금 서울에 산다. 서울엔 정말 친한 친구가 몇 없다. 좀처럼 없다. 사람을 만나기란 힘든 일이다. 이렇게 연말이 되면 마음의 공백이 크다. 누군가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술잔을 기울이기가 힘들다. 대부분 만나서 정치 얘기를 하게 되고, 심각해진다. 가볍지 못하다. 안다. 내 탓이다. 그만큼 내가 거리감을 느낀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나의 인간관계가 이리도 얄팍했나. 한편으로 생각해본다. 여하간 난 지금 새벽녘까지 홀로 깨어있다. 뭔 짓일까, 싶다. 이상하게 억울하다. 잠시 들떴던 마음이 초라해졌다.

 

나이 들어간다는 건 어쩌면 외로워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온전히 내 경우엔 그렇다. 혼자가 되는 일에 익숙해진다. 혼자만의 공간에 갇혀 사는 일이 익숙해진다. 어느 순간 그 무덤덤한 심리적 관성이 제 정신을 차릴 때 즈음, 덧없이 외롭다. 외로움을 느낀다. 연애를 해도 때때로 외롭고, 사람을 만나도 때때로 외롭고, 길을 걸어도 때때로 외롭다. 결핍이 강해진다. 내가 기대고 싶은 사람에게 절실한 신호를 보냈지만 그것이 외면당했다고 느껴지면 더더욱 쓸쓸하다. 구멍이 난다. 내가 아닌 것처럼 산다. 나를 흉내 내며 산다. 도무지 편하지 않다. 연말이라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왁자지껄할 때면 혼자라는 인식이 더욱 짙어진다. 요즘 들어 부쩍 외로움에 민감하다. 사람이 없다는 걸 느낀다. 점점 멀어져 간다. 사람들이 그립다. 또 나이는 하나 늘어가는데 그만큼 사람은 궁해진다. 사는 게 점점 삭막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연말이라 그래. 하긴 그럴지도 모르지. 괜한 걱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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