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2.11.23 <26년> 단평
  2. 2011.05.18 5월 18일에 서서
  3. 2009.08.22 휴가, 광주, 친구, 추억 2
  4. 2008.05.26 080526

<26년> 단평

cinemania 2012. 11. 23. 13:41

강풀 작가의 <26>은 사연이 많은 소재를 장르적인 그릇에 담아서 그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는 원작에 비해서 호흡은 짧게 가져가야 하니 각색은 불가피하고, 실사화라는 표현적인 제한도 존재한다. 특별한 재해석 능력을 보여준다면 모를까, 원작의 의미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본전 찾기도 쉬운 작업은 아니다. <26>은 그런 제약들을 뛰어넘은 영화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긴 어렵다. 압축된 초반 서사는 성기고, 변주된 일부 캐릭터는 비효율적인 경우가 발견된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뜨거운 감정이 차고 넘친다. 어떤 식으로든 1980 5 18일에 대한 감정이입에서 자유롭기 힘든 탓이다. 어떤 식으로든 냉정하게 보기 힘들다. 보는 내내 울화가 치민다. 미치도록 죽이고 싶어진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기 힘들게 만드는 이 놈의 현실이 문제다. 영화 하나가 짊어진 사연이 뭐 이리 무겁고 언제까지 애달파야 하냔 말이냐.

 

(무비스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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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에 서서

도화지 2011. 5. 18. 19:44

5 18일이다. 문득 잊고 살다가도 그 날이 오면 되새길 수 밖에 없는 그런 날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 부모님을 따라 내려간 광주에서 초, , 고를 졸업했다. 덕분에 5.18에 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그건 일종의 한이었고, 넋두리였다. 하지만 그 넋두리에는 해소될 수 있는 굴뚝이 없었다. 5.18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어르신들 입은 좀처럼 흩어지지 못하는 연기 냄새로 매캐했다. 그 실체를 목격한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유치원, 여중, 남중, 여고, 남고, 전문대까지,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꽤나 커다란 학원에 속해 있었고 우리는 종종 350원짜리 육개장 컵라면과 150원짜리 자판기 음료수를 사먹기 위해서 대학교 매점을 드나들었다. 어느 날과 같이 대학교 매점을 드나 들다 벽에 붙은 작은 사진들을 본 건 5 18일이었다. 그 뒤로 일주일 정도는 그 매점에 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일그러진 얼굴들, 아니, 그러니까 그건 얼굴이 아니었다. 그냥 한때 얼굴이었던 것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뭉개진 핏덩이가 한때 감정을 담아내던 그것이었으리라는 추측만이 가능한, 그런 것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로 모자이크처럼 붙어서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을 나는 살 떨리게 바라보고 있었다. “, 글쎄. 사람을 탱크로 밀어버렸다니까!” 어느 할아버지가 하던 말씀이 어쩌면 허풍이 아닐 것이라는 신의가 솟아날 정도로, 놀라운 광경들이 내 눈 앞에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내가 5.18에 관해서 인식하기 시작한 건 그 이후부터였다. 직접적으로 겪어보지 못한 내게도 그것은 일종의 울분이며 한이 됐다.

 

어린 시절 매년 5월 즈음이면 광주 곳곳에서는 최루탄이 터졌다. 충장로나 금남로 시내에서 터진 최루탄 냄새가 조금 멀리 떨어진 우리 아파트까지 닿기도 했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서 불편하지 않은 지경이 돼서 후에 그런 광경들이 생활로부터 멀어진 이후에는 되레 생소하기도 하였다. 광주를 떠나서 서울로 다시 올라왔을 무렵에 5.18에 관한 국가적 인식은 조금 변한 듯 하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진실은 요원하기만 했다. 때때로 무지한 언변을 뱉어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건 그들을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이야기가 지금 여기서는 배추도사나 무도사가 들려준다던 그 전래동화들보다도 생소하다는 사실이었다. 기념일이 되지 못할 정도의 그런 역사가 있다는 것 정도, 그것이 5.18에 관한 팔 할의 인식이었다.

 

개념이 없다는 말에는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개념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개념을 가르쳤음에도 개념을 세우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것. 후자는 절망적이나 전자는 희망적이다. 난 여전히 5.18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강물과 같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덩어리진 역사들은 쉼 없이 뒤로 밀려나간다. 우리는 거듭 기억될만한 역사들을 건져서 오늘로 안치시킨다. 5.18도 그 중 하나여야 한다. 5 18일이 아픈 날이 아니라, 기념할만한 역사가 되길 원한다. 전라도의 빨갱이 폭도들이 설쳐대던 날이라는 부지깽이 같은 언어에 휘둘리지 않는 역사관이 자리잡길 원한다. 29만원 짜리 화수분 통장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살인마가 전직 예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원래 그런 것이라며 웃어넘길지, 자유를 갈망하며 총을 들고 폭력적인 군부의 진압에 맞서 죽어나간 이들의 생이 있었던 어제를 지나 그저 오늘을 사뿐히 즈려밟고 살아가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인지, 그리고 어떤 것조차 알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채 그저 살아간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들은 기억해야 한다. 5 18일이 또 한번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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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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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광주에 다녀왔다. 휴가라고 해봐야 어디 놀러 가는 취미도 없고, 차라리 오랜만에 친구들이 있는 광주나 다녀오자 싶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옛날보단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줄었다. 내 무심함의 탓이기도 했고, 말 그대로 세월 탓이기도 했다. 연락을 자주 못하는 만큼 멀어진 친구들도 생겼고,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된 탓에 책임질 일이 많아진 친구들은 쉽게 짬을 내지 못하고 제 생활에 얽매여 있었다. 그 와중에도 많은 친구를 만났고, 하나같이 반갑거나 놀라웠다. 결혼을 앞둔 녀석도 있고, 곧 아버지가 될 친구도 있었다. 종종 연락해와서 어느 정도 근황을 아는 녀석도 있었던 반면,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 만나는 친구도 있었다. 많이 컸다. 비로소 실감했다. 내가 참 많이 컸다. 우린 늙어가고 있구나. 비로소 체감했다. 어른이 된 친구들은 제 각각의 방식으로 제 삶을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갈피를 못 잡은 듯 불안해 보이는 녀석도 있었지만 적당한 확신을 손에 쥐고 앞으로 전진해가는 녀석도 있었다. 3 4, 엄밀히 말하면 3 3일이나 다름없는 일정 가운데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묵혀뒀던 옛 추억들이 세월을 먼지처럼 털고 언어로 재현되고 그때마다 우린 낄낄거리며 또 다른 기억을 파고 들었다.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가 즐거웠다. 오랜만에 내려간 광주는 많이 변했고, 친구들도 많이 변했지만 추억은 여전했다. 그것만으로도 즐겁더라. 다시 올라오기 싫을 만큼 행복했다. 그 기분에 취해서 담배를 다시 물게 됐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언젠가 폐암에 걸려 죽더라도 이 날만큼은 유쾌하게 기억하련다. 추억을 통해 또 다른 추억이 자란다. 친구란 그런 것 같다. 3년 만에 만나도 웃을 수 있는, 그리고 그렇게 만나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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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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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26

time loop 2008. 5. 26. 02:17
담배를 끊은지 1년하고도 3개월 정도 됐다.
참으로 오랜만에 담배 한 대 피고 싶어졌다.

세상이 하수상하면서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광화문과 청계천은 그리도 시끄럽다는데, 이리도 조용한 우리동네에 있으니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도 같았다.
그 때 광주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문득 처연해졌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얼마나 절실할까, 또 한번 문득 처연해졌다.

몸이 기진맥진해서 혼미해진 정신이 간만에 돌아왔다.
덕분에 일거리는 쌓이고 의욕은 아직 부족하며 심란한 정세까지 눈에 들어온다.
세상은, 그리고 나는 이리 돌아가고 있구나.
밥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기운을 차려야지.
내 방의 평온함조차 지독하게 고요하여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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